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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장부에 일본 국화를 심을 줄 알았던 정신에서 국제화를 배웠으면…”
4월의 둘째 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경남 통영부터 시작되는 벚꽃놀이가 서서히 북으로 올라온다. 사실 우리나라 벚꽃은 통영이 제일 먼저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해 벚꽃 군항제가 워낙 규모도 크고 잘 알려져 있어 벚꽃 하면 진해를 떠올리게 된다.
벚꽃은 번식력이 좋아 통영, 진해 일대에만 피어 있던 벚꽃들이 지금은 창원 지역까지 연결돼 있다. 진해와 창원 일대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화신(花信)의 일번지다. 1964년 도쿄올림픽 대표선수 시절이다. 바로 이맘때 주말 외출을 나갔다가 그 도로를 따라 양 옆으로 펼쳐져 있는 나무 모습에 취한 적이 있다.
진해 일대 벚꽃잔치가 끝나고 나면 전북 전주에서 군산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번영로, 옛날에 전군도로라고 불리던 42㎞ 도로 양변의 벚나무 터널이 장관이다. 야경은 더 볼만하다. 4월 중순으로 들어서면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여의도 벚꽃축제가 열린다.
벚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 전남 일대와 제주도다. 그러나 이는 학술적인 것이고, 벚꽃은 일본의 국화다. 진해 일대의 벚나무도 일본인들이 가꾸기 시작해 번창하게 됐다. 전북에서 새로운 관광 명소로 등장한 번영로는 일제 강점기 우리 농민들이 배를 주려가며 지어 놓은 쌀가마를 일본으로 실어날랐던 바로 그 길이었다. 쓰라린 역사가 서린 길 위에 일본의 국화가 흐드러지게 핀다는 사실은 영 마음에 걸리는 점이다. 우리나라 지형에 맞고, 벚나무보다 더 화려한 다른 꽃나무는 없을까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우리의 독도를 일본의 섬이라고 주장하는 아베 정권을 떠올리며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세계화나 미래화에 대한 통찰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많은 미국인들은 봄철을 맞으면 워싱턴을 찾는다고 한다. 워싱턴은 포토맥 강변에 있는 미국의 수도다. 미국인들은 링컨센터나 자연사박물관을 보기 위해 워싱턴을 찾는 것은 아니다. 포토맥 강변에 환상적으로 피어나는 벚꽃을 구경하러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싸들고 연인들이, 가족들이, 관광객들이,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러 간 유학생들까지 워싱턴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워싱턴에는 대략 3400그루의 벚꽃이 눈부신 자태를 자랑한다.
이런 워싱턴의 벚꽃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 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인들이 봄만 되면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감상하는 바로 그 벚나무는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다.
100여년 전인 1910년대에 돈을 벌기 시작한 당시 일본 기업체와 이른바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일본의 이미지를 서양의 신흥 국가인 미국에 전할 방법으로 자신들의 국화인 벚꽃을 떠올렸다. 당시 수도로 자리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워싱턴 시내를 빛내준다는 뜻으로 교묘하게 벚꽃을 보냈다는 것이다. 벚꽃 묘목을 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는 일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적당히 땅을 파고 묘목을 길러내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후일을 계산하며 그 일을 묵묵히 해냈다.
워싱턴의 벚꽃이 활짝 필 때쯤 일본인들은 힘을 길러서 1941년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하와이의 태평양 함대가 처참하게 침몰되자 워싱턴 사람들은 포토맥 강변의 일본 벚나무를 찍어버리자는 의견도 내놨다. 그러나 벚나무가 이미 30년 이상 아주 튼튼하게 자랐기 때문에 손을 못 썼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라는 말을 잘 쓰지만 1910년대에 이미 자기 국화를 미국의 수도 심장부에 심을 줄 알았던 일본인들의 그 멀리 보는 시야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먼 훗날, 이 민족의 젊은이들이 아무쪼록 많은 것을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배워서 아름답고 외로운 독도를 더 이상 시빗거리가 되지 않게 하는 지킴이로 튼튼하게 성장해 주길 바랄 뿐이다.
방열(대한농구협회장·전 건동대 총장)
100여년 전인 1910년대에 돈을 벌기 시작한 당시 일본 기업체와 이른바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일본의 이미지를 서양의 신흥 국가인 미국에 전할 방법으로 자신들의 국화인 벚꽃을 떠올렸다. 당시 수도로 자리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워싱턴 시내를 빛내준다는 뜻으로 교묘하게 벚꽃을 보냈다는 것이다. 벚꽃 묘목을 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는 일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적당히 땅을 파고 묘목을 길러내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후일을 계산하며 그 일을 묵묵히 해냈다.
워싱턴의 벚꽃이 활짝 필 때쯤 일본인들은 힘을 길러서 1941년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하와이의 태평양 함대가 처참하게 침몰되자 워싱턴 사람들은 포토맥 강변의 일본 벚나무를 찍어버리자는 의견도 내놨다. 그러나 벚나무가 이미 30년 이상 아주 튼튼하게 자랐기 때문에 손을 못 썼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라는 말을 잘 쓰지만 1910년대에 이미 자기 국화를 미국의 수도 심장부에 심을 줄 알았던 일본인들의 그 멀리 보는 시야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먼 훗날, 이 민족의 젊은이들이 아무쪼록 많은 것을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배워서 아름답고 외로운 독도를 더 이상 시빗거리가 되지 않게 하는 지킴이로 튼튼하게 성장해 주길 바랄 뿐이다.
방열(대한농구협회장·전 건동대 총장)
100여년 전인 1910년대에 돈을 벌기 시작한 당시 일본 기업체와 이른바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일본의 이미지를 서양의 신흥 국가인 미국에 전할 방법으로 자신들의 국화인 벚꽃을 떠올렸다. 당시 수도로 자리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워싱턴 시내를 빛내준다는 뜻으로 교묘하게 벚꽃을 보냈다는 것이다. 벚꽃 묘목을 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는 일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적당히 땅을 파고 묘목을 길러내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후일을 계산하며 그 일을 묵묵히 해냈다.
워싱턴의 벚꽃이 활짝 필 때쯤 일본인들은 힘을 길러서 1941년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하와이의 태평양 함대가 처참하게 침몰되자 워싱턴 사람들은 포토맥 강변의 일본 벚나무를 찍어버리자는 의견도 내놨다. 그러나 벚나무가 이미 30년 이상 아주 튼튼하게 자랐기 때문에 손을 못 썼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라는 말을 잘 쓰지만 1910년대에 이미 자기 국화를 미국의 수도 심장부에 심을 줄 알았던 일본인들의 그 멀리 보는 시야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먼 훗날, 이 민족의 젊은이들이 아무쪼록 많은 것을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배워서 아름답고 외로운 독도를 더 이상 시빗거리가 되지 않게 하는 지킴이로 튼튼하게 성장해 주길 바랄 뿐이다.
방열(대한농구협회장·전 건동대 총장)
워싱턴의 벚꽃이 활짝 필 때쯤 일본인들은 힘을 길러서 1941년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하와이의 태평양 함대가 처참하게 침몰되자 워싱턴 사람들은 포토맥 강변의 일본 벚나무를 찍어버리자는 의견도 내놨다. 그러나 벚나무가 이미 30년 이상 아주 튼튼하게 자랐기 때문에 손을 못 썼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라는 말을 잘 쓰지만 1910년대에 이미 자기 국화를 미국의 수도 심장부에 심을 줄 알았던 일본인들의 그 멀리 보는 시야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먼 훗날, 이 민족의 젊은이들이 아무쪼록 많은 것을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배워서 아름답고 외로운 독도를 더 이상 시빗거리가 되지 않게 하는 지킴이로 튼튼하게 성장해 주길 바랄 뿐이다.
방열(대한농구협회장·전 건동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