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에서 경찰이 쏜 총을 맞고 사망한 10대 흑인 청소년에 대한 야간 추모집회가 폭력 시위로 번지면서 인근의 한인상점들을 상대로 한 대규모 약탈 행위로 이어지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한인상점 약탈 사건이 자칫 인종갈등 분쟁으로 이어지면서 자칫 1970~80년대 브루클린 한·흑 분규사태로 재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사건 발단=사건은 9일 오후 11시40분께 브루클린 이스트 플랫부시에서 갱단원으로 알려진 키마니 그레이(16)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경찰에 쫓기던 그레이는 갑자기 뒤를 돌아 총격을 시도해 경찰의 집중사격을 받아 쓰러졌다. 이에 그레이의 가족과 친지, 이웃주민 등 약 250명은 11일 오후 7시께 사고현장인 처치 애비뉴와 55가 인근에서 추모 집회를 거행했고, 1시간 30분쯤 후부턴 약 100여명의 인파가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처치 애비뉴를 따라 행진을 펼쳤다.
하지만 시위대가 행진을 하던 길목에는 한인 청과상과 수퍼마켓 7곳을 포함해 세탁소, 운동화, 가발, 잡화가게 등 한인 상점 20여개가 몰려 있었고, 결국 흥분한 약 50명의 군중이 폭도로 돌변해 한인상점으로 난입, 점원을 폭행하고 각종 물품을 훔쳐 달아나는 약탈행위가 이어졌다.
■한인상점 집중 약탈당해=이날 폭도들에게 약탈을 당한 업소는 심야영업을 하는 ‘유 팜 마켓’과 ‘처치 팜 마켓’, ‘조's 처치 애비뉴 마켓’, ‘애플 푸드 마켓’ 등 5~6개 한인상점과 미국계 드럭스토어 ‘라이트 에이드’(Rite Aid) 등으로 한인 상점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신재학 전 뉴욕한인식품협회 이사장이 운영하는 유팜마켓의 경우 흑인 10여명이 상점바깥에 진열된 꽃과 과일 등을 마구 집어가는 과정에서 부인 신영미씨가 떠밀려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
박모 사장이 운영하는 ‘처치 팜 마켓’은 수 십명이 가게로 뛰어 들어와 히스패닉계 매니저를 폭행한 뒤 계산대에서 현금 1,000여 달러를 훔쳐가고, 진열된 상품을 마구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당시 현장에는 추모집회를 감시하던 경찰들이 다수 있었지만 약탈이 워낙 순식간에 발생해 관련자 1명을 체포하는데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으로 약탈된 한인상점들의 전체 피해액은 업소당 최소 1,000달러에서 최대 1만달러까지 집계되고 있다.폭도들은 상점 약탈 외에도 거리에 주차돼 있던 약 50여대 차량 유리창이 파손시키기도 했다.
■한·흑분규 재연되나=문제는 11일 시작된 야간 추모집회가 오는 17일까지 매일 개최될 예정이어서 지역 한인상인들이 추가 피해를 염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한인 상점은 11일 밤 발생한 약탈사태가 재연될 것을 우려해 아예 야간영업을 포기키로 했는가 하면 경찰에 치안 경계를 신신당부하고 있는 상태다.
본보와 만난 한인 업주는 “추모식이 열리는 장소가 바로 상점 앞이라 불안하기 그지없다”며 “경찰들이 주변에 깔려있지만 막상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마냥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상인은 “이번 약탈 행위가 한인상점에만 집중된 점을 보면 자칫 지난 1970~80년대의 한·흑 분규 때 생각이 난다”면서 “한인상인들이 이번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한흑 분규 재연도 가능할 수 있다”며 말했다.
한편 경찰은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현재 약탈에 참여한 약 50명의 용의자를 색출하고 있다. 경찰력을 늘려 상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전했다.<천지훈·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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