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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대표팀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좋은 성적을 기대했던 많은 야구팬이 실망했는데요. 더 마음이 아픈 건 한국과 타이완의 경기에서 타이완 야구팬들이 보여준 몰상식한 태도였습니다. 타이완팬들이 ‘봉타고려(棒打高麗)’라고 적힌 인쇄물을 흔들기 시작하던데요. 봉타고려는 ‘방망이로 한국을 때려잡자’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인쇄물 안엔 타이완 선수가 탱크를 탄 채 배추 얼굴을 한 한국선수를 깔아뭉개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요. 세계야구의 축제인 WBC에서 타이완 야구팬들이 어째서 그런 비이성적인 응원을 하는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솔직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A. 흔히 ‘군복만 입으면 사람이 바뀐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제아무리 반듯한 사람이라도 군복만 입으면 ‘영’ 다른 사람이 된다는 뜻인데요. 물론 군을 비하하는 소리는 아니고, 사람은 그가 입은 옷에 따라 그 옷에 맞는 성향을 띤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타이완인들이 그렇더군요. WBC 취재 차 타이완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의 친철에 몇 번이나 탄복했습니다. 한국을 무척 좋은 나라라고 말하더군요. 한류도 대단해서 타이완인들 대부분이 한국 연예인 이름을 줄줄 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구장만 오면 ‘영’ 다른 사람들이 되는 듯하더군요. 과거에도 그런 장면을 자주 봤지만, 타이완인들은 야구장만 오면, 그것도 상대가 한국이면 애국심으로 뭉치는 것도 모자라 강렬한 적개심을 드러내기 일쑤입니다. 이번 WBC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봉타고려’는 그나마 양반이고 ‘한국놈들을 죽이자’는 응원 문구도 걸려 있었습니다. 일부러 북한 김정은의 초상화를 든 타이완 관중도 있더군요. 타이완인들의 ‘반한(反韓)’ 감정은 유명합니다. 타이완인들은 자신들보다 경제력이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아시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걸 보고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1992년 한국이 사전예고도 없이 첩보영화를 찍듯 순식간에 타이완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일을 두고 여전히 배신감을 느끼는 듯한데요. 개인적으론 이 모든 반한 현상엔 타이완의 수준 낮은 언론들이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번에 ‘봉타고려’란 인쇄물을 나눠준 것도 타이완의 한 신문사였는데요. 이 신문사를 비롯한 타이완의 몇몇 언론사는 WBC 기간 내내 한국과 관련해 악의적인 기사만을 쏟아냈습니다. 대표적인 게 한국 대표팀이 부진 이유를 ‘타이완의 음식과 날씨 탓으로 돌렸다’는 기사인데요. 한국 대표팀 류중일 감독은 타이완 기자들의 계속된 “한국의 부진한 이유가 타이완의 음식과 날씨 때문이냐”는 유도 질문에 “음식은 충분히 잘 먹고 있다. 잠도 잘 자고, 타이완 날씨도 나쁘지 않다. 그저 네덜란드전에서 진 게 아쉽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타이완 언론들은 류 감독의 말은 의도적으로 묵살한 채 무슨 영문인지 ‘한국이 자신들의 부진 이유로 타이완의 음식과 날씨 탓을 한다’는 기사만을 생산해냈습니다. 타이완의 최대 인터넷 포탈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야후 키모’ 메인에도 그런 기사들만 실리면서 마치 한국 선수단이 타이완을 비하한 것처럼 알려지기 시작했는데요. 아니나다를까. 이 기사에 자극받은 타이완 야구팬들은 한국 대표팀에 악감정을 드러내며, 커뮤니티 사이트엔 한국을 성토하는 글들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진실 여부를 따져 판단하기보다는 그럴 듯한 선동을 진실인양 받아 들이는 인터넷의 특성을 타이완 언론이 교묘히 이용한 셈이었습니다.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보도하기는 일본 언론도 똑같습니다. 일본의 ‘NEWS 포스트세븐’같은 언론사는 타이완 언론의 거짓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한국이 1라운드 탈락 이유로 타이완 날씨가 춥다거나 음식이 짰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며 ‘죽을 힘을 다해 싸운 상대 팀에 최소한의 존경심을 가지라’고 충고했습니다. 재미난 건 타이완과 일본 언론은 죽이 잘 맞았다는 것입니다. 3월 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타이완과 일본의 WBC 2라운드 경기에서 두 팀은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이 경기가 끝나고서 타이완 언론은 “일본야구계가 타이완의 높은 경기력을 칭찬했다”며 좋아했는데요. 하다 못해 일본의 일부 언론이 자신들을 ‘대만(臺灣)’으로 표기해줬다며 감격해 했습니다. 사실 일본 주요 언론은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국제대회에 참가한 타이완을 가리켜 ‘중화 타이베이’ 혹은 ‘차이니즈 타이베이’로 표기해왔는데요. 타이완 입장에선 좋아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한국 언론은 국제대회가 아니라도 타이완을 ‘대만’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사실입니다. 한국 언론은 단교 이후에도 타이완을 중국의 한 지역임을 뜻하는 ‘차이니즈 타이페이’로 부르지 않고, 독립국가임을 인정하는 대만으로 불러왔습니다. 일본의 새삼스런 ‘대만’ 호칭엔 감격하고, 오랫동안 대만으로 불렀던 한국에 대해선 별 감정이 없다는 건 어쩐지 아쉬운 대목입니다. 여기다 1라운드가 끝났을 때 많은 한국 언론이 타이완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고, 칭찬했던 걸 타이완 언론도 똑똑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일부 언론은 타이완과의 경기에 앞서 ‘도쿄돔을 찾은 타이완인들에게 동북부 대지진을 도와준데 감사를 표하자’는 한 일본 누리꾼의 제안을 비중 있게 소개했습니다. 사연은 짤막한데요. 2011년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타이완에선 전국적인 일본 돕기 모금운동이 펼쳐졌습니다. 모금된 돈은 일본의 재해지역으로 전해졌는데요. 한 일본 누리꾼은 당시를 떠올리며 ‘도쿄돔에서 타이완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붙이지 말자. 되레 타이완인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하자’고 제안했고, 이를 일본 일부 언론이 소개하며 화제가 됐습니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타이완은 다시 한번 감격한 모양인데요. 타이완 주요 언론은 ‘이것이야말로 스포츠가 갖는 진정한 의미’라며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일본 동북부 대지진 당시 한국은 국민성금은 물론이려니와 민간기업까지 나서 일본을 도왔습니다. 타이완의 국민성금보다 몇배는 많은 돈이 일본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금까지 국제대회에서 일본 누리꾼, 일본 언론이 이를 회상하며 한국에 감사함을 표시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습니다. 각설하고.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 즉 경기를 통해 각국이 우의를 다지고, 그 경기를 통해 각국이 서로 화합할 수 있으려면 스포츠 언론도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물론 스포츠팬들도 무비판적으로 기사를 받아들여선 안 되겠지요. 스포츠 속보 | 기사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