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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2.28 19:25
1919년 3·1운동 직후 김원봉을 주축으로 무장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義烈團)이 만들어졌다. 무력 수단을 통한 조선 독립을 목표로 했던 의열단은 1921년 9월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며 이름을 떨쳤으나 비밀결사 조직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활동상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다.
의열단의 규모와 활동 방식을 기록한 영국 정보국 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의 비밀문서가 28일 공개됐다. 문서는 영국 국가기록원이 관리하던 것을 우리 국가기록원이 수집해 보관해오던 것이다.
의열단의 규모와 활동 방식을 기록한 영국 정보국 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의 비밀문서가 28일 공개됐다. 문서는 영국 국가기록원이 관리하던 것을 우리 국가기록원이 수집해 보관해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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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영국 정보국 극동 지부가 본국 외무성에 보낸 의열단 관련 보고 문서. 중국에서 활동하던 영국 첩보원이 작성한 문서라 '의열단'이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돼 있다./뉴스1
SIS 문서는 임시정부의 활동상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1919년 10월에 작성된 SIS '대한민국 임시정부' 보고서에는 "상해 임시정부가 본국과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받았다. 임시정부는 현지 한국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했고, 대부분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냈다"고 기록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박사는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영국의 관심을 반영하는 문서"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3·1운동이 전 세계에 전해지면서 영국 내에서도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이 하원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타났다"며 "동시에 독립운동을 탄압한 일본에 대해선 비난 여론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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