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빠찡꼬발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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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빠찡꼬발 금융위기?

[중앙일보] 입력 2007.12.27 05:22 / 수정 2007.12.27 07:15

일본의 '빠찡꼬'(구슬게임기로 하는 일본의 사행성 오락)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관련 업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 파동이 일어난 것처럼 일본에서도 빠찡꼬발 서브프라임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빠찡꼬 산업의 위기는 기계부품을 만드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 금융회사, 나아가 금융기관 전반으로까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규제 강화로 이용자 급감=올해 도산한 빠찡꼬 업소는 지난달까지 128곳에 이르렀다. 지난해에 비해 30% 늘어난 것이다. 업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4674곳이었던 점포수가 1만 곳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한때 '전 일본인의 오락'으로 각광받던 빠찡꼬의 기세가 약해진 것은 '사행성' 도박을 엄격히 규제하면서부터다. 1990년대 경기가 침체되면서 고객들이 점차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게 되자 점포들도 연이어 사행성이 강한 기종을 선보였다. 따라서 '오락용'으로 빠찡꼬 가게를 찾던 손님들은 하나 둘 떠나가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꾼'들만이 남게 됐다.

현재 빠징꼬 인구는 95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빠찡꼬 점포의 총 매출액은 93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30조 엔(약 240조원)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바꿔 말하면 1인당 단가가 상승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사행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 당국은 올 9월까지 모든 빠찡꼬와 슬롯머신을 사행성이 낮은 기종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바꾸지 않으면 영업권을 박탈하는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빠찡꼬 업계의 90%가량을 장악하고 있는 재일동포와 조총련계의 자금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경찰의 조치 이후 그나마 빠찡꼬 업계를 지탱하던 '고위험 고수익' 이용자들이 점차 떠나고 있다.

빠찡꼬가 쇠락하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은 지난해 12월 확정된 대금업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신용이 낮은 고객은 소비자금융회사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기 힘들어졌다. 그동안 빠찡꼬 이용자 중 상당수는 소비자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돈으로 판돈을 마련해 왔다.

◆관련 업계는 초비상=빠찡꼬 기계는 온갖 하이테크 부품의 결합체다. 화면 가운데의 액정 패널은 현재 샤프가 500억 엔의 연간 매출을 기록하며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의 하이테크 업체 옴론은 구슬의 수를 세는 센서부품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 야마하는 빠찡꼬 기계에 들어가는 음원.영상용 반도체와 스피커, 도시바는 각종 반도체와 액정 패널, 스탠리전기는 빠찡꼬의 발광다이오드(LED)에서 50%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빠찡꼬 점포 1곳에는 평균 수백 대의 기계가 있으며 대당 가격은 평균 35만 엔이다. 이 기계들이 평균 10개월마다 전면 교체되는 점을 감안하면 샤프.옴론 등 주요 업체로선 빠찡꼬 산업의 쇠퇴로 인한 타격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은행과 리스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최대 고객의 하나였던 빠찡꼬 업체에 대해 일부 금융기관은 신규 대출을 동결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빠찡꼬 업체가 줄줄이 도산하는 사태가 이어질 경우 새로운 부실채권 문제가 대두할 가능성마저 지적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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