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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한국 알림이’ 서경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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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 오후 1시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그가 불쑥 나타났다. 동글동글한 얼굴 위에 독립운동가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뭇 고전적인 동그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그 외에 이 청년을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 건, 요즘 젊은 남자들이 좀처럼 메지 않는 커다란 서류가방 정도일까?

서경덕, 우리 나이로 33세. 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조경학을 전공한 남자. 이 청년이 가장 최근에 터뜨린 ‘애국적 사건’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한국어 서비스 시행권을 따낸 것이다. 정부도 기업도 아닌 개인이 이 일에 나서고, 게다가 성공까지 이룬 것은 세계를 통틀어 그가 처음이며 유일하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이 일로 그는 신문에 잇달아 보도됐다. 그러나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보다 독특한 ‘사고’를 쳤다. ‘뉴욕타임스’에 “독도는 한국 영토다(Dokdo is Korean Territory)”라는 문구의 광고를 내고, 뒤이어 ‘월스트리트저널’에 “동해: 한국의 바다(East Sea: Sea of Korea)”를 제목으로 하는 광고를 게재한 것이다.

알고 보니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잔디로 재킷을 만들었던 인물도 그였으며, 해외 한국문화원과 대학 도서관에 한국어 홍보자료와 국어사전을 전달했던 대학원생도 그였다. 또 대학생들이 모여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한 타임캡슐에 초대형 태극기를 넣은 사건의 주동자도 그였다. 도대체 무슨 심산으로 이러는 건가? 배후에 누구라도 있는 건가? 시간과 정성, 돈이 드는 일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만한 ‘큰일’을 왜 개인이 하고 있는 걸까?


NYT에 ‘독도는 한국 땅’ 광고 게재
“처음에는 아쉽고 안타까워서 시작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갔었는데, 다들 저한테 일본인이냐고 묻더군요. 아니라고 하면 중국인이냐고 묻고요. 그래서 두 번째 유럽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한국 알리기 프로젝트를 하나씩 진행하기 시작했죠.”

그의 첫 프로젝트는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광복절에 에펠탑 광장에 한국인을 불러모았다. 파리에 머물던 두 달 동안 매일 ‘에펠탑 회합’이 8월 15일에 있음을 알리고 다녔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항복을 선언한 5월 8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많이 열립니다. 그 행사에서 한국 사람만 소외돼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매년 광복절마다 모인다더군요.”

1996년, 그가 스물세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의 말대로 시작은 미미했고, 그의 마음은 소박했다. 그때만 해도 대단한 건 오직 하나, 그의 ‘밀어붙이기 정신’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도시에서도 한국어로 된 여행 가이드북을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가 아주 간략한 가이드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두둑이 가져가서 뿌릴 수 있는 데마다 뿌렸거든요. 다니다 보니 한국어학과가 있는 대학 도서관에도 제대로 된 국어사전이나 영한사전 한 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불쑥 찾아가서 놓고 갈 테니, 비치해달라고 했죠.”
그가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찾아간 나라는 40여 개국이며, 그가 발을 디뎠던 도시만도 150여 곳이 넘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한국 알림이’ 서경덕을 최초로 난관에 부딪히게 했다.
“지난해 3월이었어요. 뉴욕에 있을 때였는데, 일본이 ‘시네마현의 날’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하는 뉴스를 보게 됐죠. 그 뒤에도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 계속되더군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의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들 정당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뉴욕타임스까지 이르게 된 거다. 세계 모든 언론이 보는 신문이니까.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들로서는 쉽지 않은 사안이었습니다. 자사 신문이 분쟁의 장이 될 위험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은 그러더군요.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좋은 정신을 가졌다’고.”
그래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규정상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항목인 광고 게재자의 상호와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게재할 수 없다고 그가 우겼기 때문이다.
“저는 서경덕 개인을 알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오직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알리는 게 목표였으니까요.”
결국은 ‘koreandokdo.com’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그 주소를 넣기로 하고서야 광고를 게재할 수 있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 개설
그러고 나니 ‘월스트리트저널’은 쉬웠다. “담당자가 뉴욕타임스 광고를 봤다고 하더군요. ‘Dokdo’가 뭔지 궁금해서 사이트에도 들어가 봤다더군요.”
두 신문의 광고 책임자는 신문을 보는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눈에 띄는 자리에 광고를 배치해 주었다. 매일 3000통씩 이메일이 쏟아졌고, 컬럼비아대학에서는 그의 홈페이지를 강의 자료로 쓰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밤길 조심하라는 메일도 꽤 많았어요.” 그러나 어쩌면 밤길은 상대방이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서경덕은 외국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하루도 조깅을 빼먹지 않는 건장한 청년이니 말이다.

그는 상대를 끊임없이 웃게 만드는 유쾌한 화법의 소유자며, 밀어붙이기 선수이고, 자신의 성공적인 이력을 잘난 척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청년이긴 하지만, 종일토록 박물관에서 서성일 것 같은 스타일은 아니다.
“핵심은 ‘한국어가 있다’는 것을 외국인에게 선언하는 데 있어요. 한국어 서비스가 시행되면 안내책자와 단말기에 한국어로 된 가이드가 게재되거든요.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잖아요. 뉴욕에 온 거의 모든 사람이 다녀가는 곳이죠. 그 사람들이 모두 한국어를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실은 현대미술의 기수 뉴욕현대미술관의 한국어 서비스 시행권도 따놓은 상태다.

“이제 돈을 벌어야죠. 제가 쓸 돈 말고요, 미술관에 줄 돈이요. 인터뷰가 끝나면 문화관광부로 갈 겁니다.”
그리고 또 관심을 기울일 만한 기업을 찾아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두드릴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인터넷으로 천 원씩 모금해야죠.”
마치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니?”라는 투로, 툭툭 걱정을 털어내면서 그가 일어섰다. 생애 최후의 목표를 물었을 때 서경덕은 역시 통 크게 대답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의 연결고리가 되는 거죠. 누구도 안 했던 일이니까 제가 하려고요.”     
정다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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