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2012년 07월호]
“시드니 회전 스시? 다 한국 가게예요”
  • 호주 초밥시장 75% 한인 장악
  • 철저한 현지화와 발 빠른 응용력이 성공 비결
관광이나 어학연수 등의 목적으로 시드니를 찾는 한국인이 신기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성업 중인 회전초밥집의 대부분을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저한 현지화를 무기로 빠른 성장세를 구가하는 중이다.

호주의 초밥시장이 성장 일로에 있다. 역사가 짧아 내세울 음식이 없는 호주에서는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국의 다양한 음식을 들여오면서 호주의 음식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호주의 상징물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사진_ 정열 특파원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우리와 계절이 정반대인 호주의 최대 도시 시드니에서 회전초밥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시드니 중심가인 센트럴업무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만 해도 10여 개가 넘는 회전초밥집이 성업 중이다. 웨스트필드와 웨스트포인트 등 주요 쇼핑몰에는 거의 빠짐없이 회전초밥집이 한두 개씩 자리 잡고 있다. 만만치 않은 가격 탓에 인기가 주춤해진 서울의 회전초밥집과 달리 시드니의 회전초밥시장은 철저한 현지화를 무기로 지금도 빠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회전초밥집 75%가 한인 주인 
  관광이나 어학연수 등의 목적으로 시드니를 찾는 한국인들이 신기하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성업 중인 회전초밥집을 대부분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은 물론이고 매장에서 일하는 종업원도 대부분 한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 전체 초밥시장의 75%가량을 한인이 장악하고 있고, 이들이 또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한인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드니를 찾는 한인 관광객들에게 회전초밥집이 매우 편안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드니 회전초밥집에 첫발을 들여놓으면 그 정체성을 얼른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회전초밥집에서는 손님이 처음 들어설 때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라고 일본어로 인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있다 보면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리고 처음에 “이랏샤이마세”라고 인사했던 동양인도 실은 한인이었단 사실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호주 최대 회전초밥체인인 ‘스시 베이(Sushi Bay)’를 운영하는 신이정(51·여) 회장은 “처음 호주로 이민 온 한인들이 초밥집을 운영하면서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일본의 이미지를 많이 이용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호주인을 포함한 서구인들에게는 한국보다 선진국이고 세계화의 역사가 오래된 일본의 국가 이미지가 훨씬 더 좋은 게 엄연한 현실이고, 초밥이 원래 일본 음식이기 때문에 매장 분위기에 일본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 유리했다는 설명이다. 역시 다른 서양인들과 마찬가지로 호주인들도 어지간한 눈썰미가 아니고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쉽게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호주 최대 회전초밥체인 ‘스시 베이(Sushi Bay)’를 운영하는 신이정 회장. 사진_ 정열 특파원


철저한 현지화가 성공 비결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일본의 것을 따왔지만 메뉴를 위시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채택했다. 가령 대부분의 시드니 회전초밥집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의 초밥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어나 농어, 도미 등의 생선살이 얹힌 초밥을 찾기가 어렵다. 대신 캘리포니아 롤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쫄깃한 식감의 생선살보다는 진한 소스를 듬뿍 뿌린 롤 종류를 선호하는 현지인들의 입맛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생선살을 얹은 초밥은 호주에서 가장 흔하고 신선한 재료인 연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머지는 구색 갖추기로 두어 종류가 있을 뿐이다. 신 회장은 “호주 연안에서 나는 어종이 그리 풍부하지 않을 뿐더러 설사 광어 등의 생선을 갖다놓는다 해도 현지 손님들이 찾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는 결국 재료를 모두 버리게 된다”고 전하고 “호주의 회전초밥집이 대부분 롤 중심인 것은 메뉴를 철저히 현지화한 결과”라고 소개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라면 통하지 않았겠지만 현지인들이 ‘원조’ 초밥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공급자 쪽에서 손님의 입맛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6월 초에 찾았던 시드니 서부 파라마타의 웨스트필드 쇼핑몰 내 ‘스시 베이’매장에서도 이 같은 특징은 단박에 드러났다. 복합영화관에 인접한 매장은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적 특성상 백인뿐만 아니라 서남아와 동남아, 중국 등지에서 온 이민자 출신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들어가자마자 “어서 오세요”란 한국어 인사말이 들려왔다. 척 봐도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임을 알 수 있는 예쁘장한 여종업원이 줄 서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매장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을 훑어 보니 거의 전부가 한인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호주 현지인들도 써봤지만 근면성이나 성실성에서 한국인과 확실히 차이가 많이 났다”는 게 신 회장의 설명이다.  
  20여 분이나 기다린 끝에 겨우 자리를 잡고 눈앞에서 돌아가는 초밥 접시들을 보니 확실히 국내 회전초밥집에서는 보기 어려운 ‘창작품’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김으로 말아서 만든 초밥 위에 타르타르 소스를 듬뿍 버무린 조갯살과 아보카도를 얹은 것도 있고 한국식의 매콤하고 진한 소스를 가미한 구운 새우초밥도 눈에 띄었다. 한국이나 일본식 전통 초밥에 길들여진 고객이라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듯한 ‘국적 불명의’초밥들을 현지인들은 맛있다는 듯이 먹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매장을 찾았다는 로즈메리 앳킨슨(22·여) 씨는 “다양하고 새로운 메뉴를 맛볼 수 있어 이런 회전초밥집을 자주 찾는다”고 말하고 “고기가 중심인 호주의 전통 음식에 비해 건강식이란 이미지가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앳킨슨 씨는 그러나 자신이 자주 찾는 매장의 주인이 한인이 운영하는 체인점이라는 사실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시드니 시내 중심가 조지 스트리트에 위치한 초밥체인 ‘마코토’ 매장에서 만난 한 호주인도 “스시가 일본 음식이고 매장도 일본풍으로 꾸며 놨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인이 운영하는 매장인 줄로 알았다”며 웃었다. 
  이쯤 되면 한때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일본이 해외에서 일본 음식인 ‘기무치’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한국 내 비판 여론과 위기 의식을 일본이 초밥 분야에서 느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문 탓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일본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자국 고유의 음식인 초밥의 정체성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 사례나 앞으로 그럴 징후는 전혀 없다. 호주에서 영업 중인 일본 초밥집은 주로 자국민과 소수의 부유층 고객들을 상대로 한정된 지역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며 별도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인들이 호주의 초밥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덕분에 호주 땅을 찾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들 식당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진_ 이경욱 특파원


워홀러들에 대한 일자리 제공에 한몫
  한인들이 호주의 초밥시장을 석권하면서 한국에서 건너오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 소지자(워홀러)들이나 취업 희망자와 어학연수생들에게 취업 문호가 넓어지고 있다. 당장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현지 매장에서 일하기 어려운 워홀러들이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인이 운영하는 초밥집들이다. 
  호주 정부는 미국이나 일본 등과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워홀러 쿼터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매년 2만 명 가까운 우리나라 청년들이 워홀러로 호주를 찾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나 카페, 농장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고 있다. 일부 한인 매장에서는 지나치게 낮은 시급으로 한국에서 건너온 청년들을 고용해 워홀러들 사이에 ‘임금 착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나마 없는 것보다 낫다는 시각도 있다. 
  여하튼 한인들이 호주의 초밥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덕분에 이런저런 이유로 호주 땅을 찾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공급처로서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기업화 단계에 이른 일부 대형 회전초밥체인은 한국의 전문대나 실업계 고교와의 제휴를 통해 체계적으로 초밥요리사 지망생을 초청해 교육시키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사례도 있다. 어찌 보면 한국 정부의 가장 큰 숙제라 할 수 있는 청년실업 해소에 호주의 한인 초밥집들이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신 회장은 “한국도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이고 호주의 한인 초밥집들도 성실하고 솜씨 좋은 한국 젊은이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므로 어찌 보면 ‘윈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진단하고 “한인이 주인인 호주의 초밥집들이 번성해 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고용할 수 있다면 이는 또 다른 방식의 애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호주의 초밥시장은 지금 성장 일로에 있다. 역사가 짧은 호주는 딱히 ‘호주 음식’이라고 내세울 만한 음식문화가 없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각각 자국의 다양한 전통 음식들을 들여와 호주의 음식문화를 새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의 전통 음식인 초밥을 발 빠르게 현지화하는 데 성공한 한인 이민자들이 바로 그 선봉에 서 있다. 

정열 시드니 특파원  passi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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