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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쓸쓸히 지나간 이봉창 의사 순국 80주기

  • 윤 주·매헌윤봉길 기념사업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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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크 귀순
    입력 : 2012.10.15 22:27
    윤 주·매헌윤봉길 기념사업회 상임부회장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도 '만약'의 한 장면이 있다. 이봉창(1901~1932) 의사가 도쿄 한복판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폭사시키려다 실패한 사건이 그것이다. 이 의거가 성공했더라면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나,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를 폭사시킨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능가하는 엄청난 사건이 됐을 것이다.

    '만약'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도쿄의거는 만방에 한국의 존재와 독립 의지를 떨친 대사건이었다. 이후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는 '제2, 제3의 이봉창'이 몰려들었고, 윤봉길 의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중국 언론에서는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했다(不幸不中)"며 아쉬움을 표했고, 이로써 한국과 항일 공감대도 형성됐다. 이 보도는 훗날 일제가 '상해사변'을 일으키는 빌미가 될 만큼 도쿄의거가 일제에 할퀸 상처는 강렬했다.

    지난 10일은 이봉창 의사가 도쿄의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80주기였다. 지난 1월 8일 도쿄의거 80주년 때와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추모 사업조차 없어 마음이 무겁다. 우리 사회가 이 의사를 '홀대'하는 원인을 꼽자면 첫째, 이 의사는 미혼으로 추모 사업을 이끌 후손이 없다. 둘째, 주요 독립투사로는 드물게 서울 태생으로, 요즘 지자체의 대대적인 '내 고향 위인' 홍보 대상도 아니다. 무엇보다 셋째는 의거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첫째, 둘째 이유는 보훈당국의 의식 부족 탓이나 셋째 이유는 결과만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이다. 의거의 의의나 효과를 도외시한 채 단순히 '성공, 실패'라는 잣대로 위업을 재단하는 편협한 현실이 씁쓸하다. 윤봉길 의사나 이봉창 의사의 차이는 폭탄이 제때 터졌느냐, 아니냐일 뿐이다.

    이봉창 의사에게 추서된 건국훈장 훈격(勳格)이 2등급인 '대통령장'에 그치고 있다는 걸 아는 이도 많지 않다. 그러나 도쿄의거의 위업은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인물들의 공적과 비교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또한 이 의사 기념물로는 효창공원 내 동상이 전부다. 이 의사 생가(효창동 118-1)가 즉시 복원돼야 한다. 2010년 4월 30일 중국 상해임시정부 옛 청사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이 의사의 사진을 보며 "이봉창 의사 기념사업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좀 더 알려야겠다"고 밝힌 것을 기억한다. 순국 80주기를 쓸쓸히 보내며 이봉창 의사의 업적이 제대로 조명받는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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