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9.17 03:07 | 수정 : 2012.09.18 07:58
"백두산은 머리, 대관령 척추, 영남 對馬와 호남 탐라를 양 발로"
"대마도는 우리의 失地 회복… 일본인이 아무리 주장해도 역사는 어쩔 수 없다"
미국과의 영토 협상에서 일본이 제시했던 지도에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나와
- 김상훈 대령은 “대한해협은 현재의 위치가 아닌 대마도의 남단에 있었다”고 주장했다./최보식 선임기자
이 때문에 김상훈(54) 대령과 만나는 것은 "내가 극우주의자로 비칠 수도 있겠구나"를 감수하는 행위였다. 학자도 아닌 현역 군인인 그는 '대마도의 영유권' 연구에 미쳐있다. 몇 차례 논문을 발표했고, '일본이 숨겨오고 있는 대마도·독도의 비밀'이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국회에서 특별 강연도 했다.
그는 근무처인 관동대 학군단(강릉 소재)에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통화에서 듣던 격정적인 어조와는 달리, 반듯한 인상이었다.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전략적으로 대마도를 언급하는 것인가?
"나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객관적 증거 자료를 갖고서 말한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일본이 대마도를 감추기 위해 독도를 부각해왔는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자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대마도가 일본령으로 기록된 문서나 지도도 많다.
"맞는 지적이다. 가령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백두산은 머리, 대관령은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 발로 삼는다(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고 적혀있다. 19세기에 작성된 경상도 행정지도에도 '대마군(郡)'으로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고지도와 고문서로써 말하는 게 아니다."
― 당신이 말하는 결정적 증거 자료는 무엇인가?
"일본의 개항 직후 미국은 일본 본토에서 1000여㎞쯤 떨어진 태평양의 무인도 '오가사와라'를 발견했다. 이를 미국령에 편입하려고 했다. 미·일 간 영토 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일본은 그 섬이 나와있는 자국의 지도(1785년)를 제시했다."
―일본은 이미 그런 지도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는가?
"지도 작성자는 하야시 시헤이(林子平)로, 일본의 영토 주권에 가장 먼저 눈떴던 인물이었다. 그는 '해상 방위를 튼튼히 하고 주위의 무인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을 정벌해 국가 방위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소위 정한론(征韓論)의 시조 격이다. 그는 일본과 주변국을 정찰해 지도 다섯 장을 제작했다."
―영토 협상에서 그 지도로 미국이 물러섰나?
"미국은 하야시의 일본어판 지도로는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고심하던 일본 막부는 하야시의 지도를 번역한 '프랑스어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를 증거물로 내세워 영토 협상에 성공한다. 바로 그 지도에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되어있었다. 일본이 영토 협상에서 사용한 지도에 그렇게 나와있다는 뜻이다."
―그 지도를 직접 확인했나?
"지금까지 발견된 필사본 지도에는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는 일본 땅으로 되어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세종대 독도연구소장) 교수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지도에 이렇게 나와있는 것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것은 그 지도에 독도뿐만 아니라 대마도도 우리 영토로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하지만 그 필사본은 모두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 국회도서관 206호실 독도특별전시관에서 프랑스어판 원본을 찾아낸 것이다<지도①>.대마도가 우리 영토와 같은 색깔로 채색돼 있었다. 나는 이 지도를 원본이라고 확신한다."
―대마도가 우리 땅이면 원본이고, 그렇지 않은 필사본은 다 조작됐다는 주장이 과연e="float:left;">
- 김상훈 대령은 “대한해협은 현재의 위치가 아닌 대마도의 남단에 있었다”고 주장했다./최보식 선임기자
이 때문에 김상훈(54) 대령과 만나는 것은 "내가 극우주의자로 비칠 수도 있겠구나"를 감수하는 행위였다. 학자도 아닌 현역 군인인 그는 '대마도의 영유권' 연구에 미쳐있다. 몇 차례 논문을 발표했고, '일본이 숨겨오고 있는 대마도·독도의 비밀'이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국회에서 특별 강연도 했다.
그는 근무처인 관동대 학군단(강릉 소재)에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통화에서 듣던 격정적인 어조와는 달리, 반듯한 인상이었다.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전략적으로 대마도를 언급하는 것인가?
"나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객관적 증거 자료를 갖고서 말한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일본이 대마도를 감추기 위해 독도를 부각해왔는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자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대마도가 일본령으로 기록된 문서나 지도도 많다.
"맞는 지적이다. 가령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백두산은 머리, 대관령은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 발로 삼는다(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고 적혀있다. 19세기에 작성된 경상도 행정지도에도 '대마군(郡)'으로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고지도와 고문서로써 말하는 게 아니다."
― 당신이 말하는 결정적 증거 자료는 무엇인가?
"일본의 개항 직후 미국은 일본 본토에서 1000여㎞쯤 떨어진 태평양의 무인도 '오가사와라'를 발견했다. 이를 미국령에 편입하려고 했다. 미·일 간 영토 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일본은 그 섬이 나와있는 자국의 지도(1785년)를 제시했다."
―일본은 이미 그런 지도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는가?
"지도 작성자는 하야시 시헤이(林子平)로, 일본의 영토 주권에 가장 먼저 눈떴던 인물이었다. 그는 '해상 방위를 튼튼히 하고 주위의 무인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을 정벌해 국가 방위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소위 정한론(征韓論)의 시조 격이다. 그는 일본과 주변국을 정찰해 지도 다섯 장을 제작했다."
―영토 협상에서 그 지도로 미국이 물러섰나?
"미국은 하야시의 일본어판 지도로는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고심하던 일본 막부는 하야시의 지도를 번역한 '프랑스어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를 증거물로 내세워 영토 협상에 성공한다. 바로 그 지도에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되어있었다. 일본이 영토 협상에서 사용한 지도에 그렇게 나와있다는 뜻이다."
―그 지도를 직접 확인했나?
"지금까지 발견된 필사본 지도에는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는 일본 땅으로 되어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세종대 독도연구소장) 교수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지도에 이렇게 나와있는 것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것은 그 지도에 독도뿐만 아니라 대마도도 우리 영토로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하지만 그 필사본은 모두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 국회도서관 206호실 독도특별전시관에서 프랑스어판 원본을 찾아낸 것이다<지도①>.대마도가 우리 영토와 같은 색깔로 채색돼 있었다. 나는 이 지도를 원본이라고 확신한다."
―대마도가 우리 땅이면 원본이고, 그렇지 않은 필사본은 다 조작됐다는 주장이 과연e="width:280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