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도 큰 효과 없지만 없애면 아쉬운 계륵같은 존재
"신용등급 상승해 외화 몰려 외화자금 조달엔 문제없어"
"안전장치 많을 수록 좋아… 관계 정상화되면 복원해야"
9일 한일 통화 스와프 확대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발표는 독도 문제 때문에 한일 간의 외교 갈등이 불거진 껄끄러운 상황에서 계륵(鷄肋·딱히 먹을 것도 없고 버리기도 아까운 닭갈비) 같은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 통화 스와프란 마이너스 통장처럼 유사시에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해당국 통화나 달러를 빌려오는 계약으로, 비상시 끌어 쓸 수 있는 '외환 비상금'이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지난 2008년 12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2010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 규모를 130억달러에서 300억달러로 늘렸고, 지난해 10월에도 1년간 통화 스와프 규모를 130억달러에서 700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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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한일 통화 스와프 확대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데는 국가신용등급 상승 등에 힘입어 외국인 투자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미 달러화를 세고 있다.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
하지만 실제 일본에서 돈을 빌려다 쓴 적은 없다. 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 미국에서 달러를 빌려 급한 불을 끈 적은 있지만 일본에까지 손 벌릴 정도로 다급한 상황은 없었다"면서 "한일 통화 스와프는 '있어도 큰 효과는 없지만, 없애면 외화 조달 창구가 줄어 아쉬운' 마치 계륵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2008년 10월 미국과 300억달러의 통화 스와프 계약을 맺었고 이 계약은 2010년 2월에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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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논리보다 독도 외교 갈등 때문에 주목받아한일 통화 스와프가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사과 요구로 한일 간 외교 갈등이 불거지면서부터다. 당시 아즈미 준(安住淳) 일본 재무상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로 통화 스와프의 중단을 시사했다.
그동안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에서 촉발된 유럽 재정 위기가 스페인까지 옮아붙은 상황에서 통화 스와프 계약을 중단할 경우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8월 말부터 상황이 변했다. 무디스, 피치, S&P 등 세계 3대 신용 평가 회사가 모두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면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몰려들고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통화 스와프 중단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한국이 먼저 연장 요청을 해야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일본의 입장이 알려진 10월 초인 것으로 다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연장 불가 방침은 이미 지난 주말 결정돼 주말 내내 양측이 발표와 관련한 문구 수정 작업을 벌였다"며 "통화 스와프가 국가 간 자존심 문제가 되자 국민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외환시장 홀로서기 가능할까?
정부는 한일 통화 스와프가 없어도 외환시장에서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은성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올라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각이 달라졌고, 최근 환율도 하루 변동 폭이 달러당 1~2원에 불과할 정도로 안정세"라고 했다.
정부가 이렇게 자신감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비상시 꺼내쓸 수 있는 실탄이 4000억달러를 넘을 정도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외환보유액이 3220억달러에 달하고, 중국과 맺은 통화 스와프로 쓸 수 있는 한도가 560억달러다. 또 한·중·일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역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조성한 다자간 금융안정기금에서도 384억달러를 꺼내쓸 수 있다.
게다가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자금이 과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미국·유럽·일본이 일제히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펴고 있어 국내 주식·채권시장에선 오히려 지나친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을 경계하고 있을 정도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우리나라가 일본·중국과 국채 투자시 사전 협의를 하도록 한 것은 외화유출보다는 급격한 유입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환율이나 외화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다"며 "한일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면 한일 통화 스와프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통화 스와프(currency swap)
현재 환율을 기준으로 자국 통화와 달러화 등 상대방의 통화를 교환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당초 거래 때 정한 환율로 화폐를 다시 교환하는 거래. 달러를 빌리는 국가 입장에서는 외환보유액에 손대지 않으면서 자국 금융회사에 달러를 공급해 외화 유동성 위기를 막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