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한문학으로 본 한민족의 상고사(1)]

 

夏·殷나라는 우리 歷史

漢字는 東夷族이 만든 글(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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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陳泰夏 (진태하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1. 黃河文明의 主役은 東夷族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는 송화강(松花江)과 요하(遼河)를 중심으로 만주벌에 웅거했던 수렵 기마민족으로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한반도로 남하하기 전에 이미 황하(黃河)유역으로 진출하여 세계 4대 문명발상지의 하나인 황하문명을 이룩하는데 주도역을 한 민족임을 밝혀내야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상고사를 올바로 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사학계에서도 그 동안 새로이 출토된 유적을 통하여 황하지역의 고대문물보다 요하지역의 고대문물이 더 발달했었다고 고증하고 있다. 이로써 요하쪽의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東夷族)의 문명이 황하쪽으로 남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황하유역에 살던 이른바 본래의 한족(漢族)은 농경민족으로서 북쪽에서 남하하는 기마민족인 동이족(東夷族)에게 밀리어 남쪽으로 쫓겨가 오늘날 중국의 남방과 동남아 일대에 살고 있는 지금은 55족의 소수민족의 하나인 객가족(客家族)이라는 것이다. 객가족은 지금도 자기들이 순수 한족(漢族)이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러므로 황하문명의 주역은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이족(東夷族)이라는 것은 중국 사학계에서는 이미 공인된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 사학계에서는 황하문명은 한족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과거 잘못된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하나하나 올바로 찾고 정리하여, 확고한 민족사관과 민족정기를 확립해야 한다.

 

2. 檀君보다 앞선 치우(蚩尤)天王

 

중국 최고(最古)의 정사(正史)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치우(蚩尤) 장군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후한시대 응소(應邵)는 치우(蚩尤)를 ‘古天子’라 칭했고, 또한 공안국(孔安國)도 ‘九黎君號蚩尤是也’라 한 바와 같이 치우는 단순히 황제(黃帝)와 싸워 연전연승했던 장군이 아니라, 구려(九黎) 곧 동이족의 임금이었다.

최근 중국의 사학자 추군맹(鄒君孟)은 치우(蚩尤)에 대하여 “蚩尤屬于個集團, 自古以來就是一個聚訟紛的問題. 東漢的學者, 如高誘馬融等都認爲他是九黎的君長. (中略) 我基本同意徐旭生先生的看法, 蚩尤屬東夷集團”(치우는 어느 집단에 속하는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한 문제이다. 東漢의 학자로 예를 들면 高誘, 馬融 등 모두다 치우는 九黎의 君長이라고 하였다. (中略) 나도 기본적으로 徐旭生 선생의 의견에 동의하여 치우는 東夷 집단에 속한다고 여긴다.)(華夏族起源考論)고 한 바와 같이 최근의 중국 사학자들도 치우(蚩尤)는 동이족의 우두머리였음을 시인하고 있다.

치우천왕은 황제(黃帝)와 동시대 인물로서 약 4700년 전에 이미 중원 천하를 지배했으니, 단군기원(檀君紀元)으로부터 우리의 상고사를 시작하는 국사의 기술은 마땅히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3. 漢字는 東夷族이 創造

 

중국의 문자학자 이경재(李敬齋)는 “… 在武功方面, 諸夏雖獲勝利, 而在文化方面則同化於東夷矣. … 夫東夷果何等人耶. 乃愷悌慈祥, 薄武力而崇藝術之人也. 其代表人物如舜(孟子曰舜, 東夷之人也). 至仁至孝, 能使人讓以天下, 而以復以天下讓人, 眞古今中外無比至聖也. … 可見我國文字東夷人亦多所創造, 而爲契所推廣因以造字之功歸之契. 如將東土西土古文略一比較, 卽東夷對於文字之智慧優於西夏, 東夷人旣握有敎育權, 故諸夏盡受東夷之文化.”(무공 방면에 있어서는 諸夏가 비록 승리를 획득하였으나, 문화방면에 있어서는 동이에 동화되었다. … 대저 東夷는 과연 어떠한 사람들인가. 곧 화목 자상하고, 武力보다는 藝術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을 들면 舜임금이다.(孟子는 舜임금을 東夷人이라고 말하였다) 至仁, 至孝하여, 남에게 天下를 양위하고, 또한 천하를 다시 남에게 양위함은 참으로 고금중외에 다시 없는 지극히 聖스러움인 것이다. (中略) 우리 나라(中國) 文字는 東夷人이 다 창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契(설)이 널리 보급하였기 때문에 造字의 공이 契(설)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동토와 서토의 고문을 대략 비교하여 보면, 곧 동이가 문자의 지혜에 대해서는 西夏보다 우수하고, 東夷人이 먼저 교육권을 장악하였으므로 諸夏가 모두 동이의 문화를 받아들였다.)(整理文化中途自述)라고 論及한 바와 같이 중국문화의 근원은 동이문화(東夷文化)에서 이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이른바 한자(漢字)를 본래 동이족(東夷族)이 창조한 바라고 한 것이다. 이 사실은 앞으로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상고사를 올바로 규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4. 夏나라를 東夷族이 세운 것으로 보는 증거

 

한자(漢字)는 동이족이 창조하였다는 학설을 바탕으로 하여 어떠한 글자가 동이족에 의하여 만들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고증하여 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중국 최초의 왕조인 「夏」에 대하여 문자학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은대(殷代)의 갑골문에서 「夏」의 자형을 찾아보면 「」의 형태로서 화려하게 차림을 한 대인의 모습을 그리어 「크다」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주대(周代)의 금문(종정문)에서는 「」의 자형과 같이 변형되고, 진대(秦代)의 소전체에서는 「」의 형태로 정리되어 곧 대인의 얼굴(頁), 양손(), 발()을 구별하여 나타내어, 오늘날 쓰고 있는 「夏」자가 된 것이다.

중국에서도 「夏」의 고대 자형을 잘못 인식하여 「매미」의 상형자로 견강부회시킨 엽옥삼(葉玉森)같은 학자도 있다.

한자(漢字)는 본래 일자일의(一字一義)의 문자였으나, 시대가 지나면서 의미가 전의 확대되어 대부분 일자다의(一字多義)의 문자로 변하였다. 식물이 크는 것은 여름철에 크기 때문에 「夏(클하)」자가 뒤에 「夏(여름하)」자로 쓰이게 된 것이다. 「夏」의 자형은 갑골문에서 해서체에 이르기까지 많이 변하였으나, 字音은 「하(ha)」로서 반절음(反切音)인 「胡駕切(호가절)」로 볼 때, 상고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현재 [shiah]로 변음되어 쓰이고 있다.

우리말에서는 「하(ha)」가 크다 또는 많다의 뜻으로 예로부터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월인석보에 ‘내모미하커’, 송강가사에 ‘하도할사’의 예와 ‘한내(大川)’, ‘한밭(大田)’, ‘한아비(祖)’ 등의 「한」은 곧 「큰」의 뜻으로 「하」의 관형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夏(하)나라를 건립한 민족은 어느 민족인가를 문자학적인 면에서 고증할 수 있다. ‘크다’는 뜻으로 나라를 세우려면 「하(ha)」를 예로부터 ‘크다’의 뜻으로 말을 쓰고 있는 민족이 세웠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또한 「夏」의 자형을 만든 것도 「하(ha)」(크다)라는 말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만들었음도 불문가지이다. 그 민족이 곧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東夷族)이라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중국 사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夏와 商이 모두 황하이북의 북방족 곧 동이족에 의하여 수립된 나라들이다. 그러나 시대가 오래 지남에 따라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 한국인 스스로도 「夏」는 중국 최초의 나라 이름으로 인식하고 있음은 무지의 소치로 제 나라의 상고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