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본의 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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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의 이중잣대

[중앙일보] 입력 2012.08.28 00:58 / 수정 2012.08.28 00:58
김현종
전 유엔 대사
한국 통치권자의 독도 방문으로 일본은 우리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고 통화 스와프를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통석의 염과 같은 말이나 하려면 안 오는 것이 낫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한국 대통령의 지극히 당연한 말에 “예의를 잃었다” “무례하다”며 극도로 흥분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서한을 반송하기로 하자 외교 결례라며 반발했고, 노다 총리는 이 대통령의 일왕 사죄 요구 발언에 사과를 요구했다. 한 나라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이 일왕을 거론했다고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단의 일본인들이 경복궁을 급습해 명성황후를 참혹하게 시해했고 시신을 불태워 버렸다. 미우라 고로 공사가 직접 지휘한 극악무도한 만행이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비일비재하지만 명성황후 시해와 같이 침략 대상이 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하고 시신마저 불태워버린 나라는 일본 외에는 없다.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 후 독도를 침탈하고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조선 남자는 강제징용하고 여자는 성노예로 끌고 갔다. 명성황후 시해와 독도 침탈, 국권 강탈을 자행할 당시 일왕은 현 일왕의 증조부인 메이지, 여자들을 성노예로 끌고 가는 등 잔인한 식민통치를 한 일왕은 부친인 히로히토다. 그들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았다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은 쿠릴열도를 두 번 방문했다. 일본은 2년 전 방문 시 유감 표명과 주러시아 일본대사를 경질하는 수준에서 대응했고, 지난해 7월 방문 시에는 항의성명 한 장만을 냈다. 지난 15일 홍콩인 14명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 상륙하자 일본은 이들을 체포한 뒤 사법절차도 없이 돌려보냈다. 러시아와 중국에는 고분고분하면서 한국에는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만이 센카쿠 열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겠다고 하자 일본 정부와 언론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이중적인 태도는 이뿐이 아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시 일본 언론은 “8000㎞를 날아온 체르노빌 원전의 방사능이 일본 열도 전역을 더럽히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소련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일본 정부는 비난했다. 그리고 25년 후 후쿠시마 원전사태 시 이웃나라에 아무 통보도 없이 방사능물질에 오염된 물을 바다에 흘렸다. 일본과 체르노빌의 거리는 8000㎞지만 한국과 일본의 거리는 1500㎞도 안 된다.

  2006년 2월 2일 한·미 FTA 출범 시 일본 고위관료는 미 행정부에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FTA를 출범시켜서는 안 된다”며 설득하려 했다.

 지난 20년간 일본 경제가 침체하고 중국과 한국이 부상하자 일본은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8월 20일 도쿄에서 올림픽 참가 선수들을 위한 카 퍼레이드에 50만 명의 일본인이 모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전장에 나가는 군인들을 환송하는 대규모 집회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3월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가 집단주의적이고 우경화돼 가는 분위기다. 우리는 하루빨리 민족통일을 이루고 정치·경제·군사 역량을 키워 동북아 지역의 강국으로서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그것만이 일본의 되풀이되는 도발을 막을 수 있다.

김현종 전 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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