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쏘리…. 지난 잘못에 대해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하고 싶습니다."

"괜찮다. 네가 미안해할 것 없다."

주름진 손이 손자 같은 학생 손을 꼭 잡고 등을 토닥였다. 영어로 '사죄'의 말을 건넨 이는 와세다대 3학년생 도미히로 나카무라(정치사상 전공), '이해한다'고 화답한 이는 일본군 '위안부' 이옥선(85) 할머니였다.

23일 경기도 광주 일본군 위안부 나눔의 집.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로 모진 청춘을 보낸 할머니 8명이 사는 이곳에 일본인 대학생 4명과 한국·중국·팔레스타인·독일 등 16개국 청년 60여명이 방문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관한 '청년역사대화 국제포럼' 참석자들이다. 이 할머니 외에도 강일출(84)·박옥선(88)·김군자(86) 할머니 모두 거동이 불편한데도 먼 데서 젊은이들이 찾아왔다는 말에 몸소 자리했다. 학생들과 함께 스마트폰 촬영을 하며 소녀처럼 미소 짓던 할머니들은 지난 과거의 아픔을 털어놓을 땐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해방됐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해방을 못 받았어. 지금도 (일본 정부와는) 전쟁 중이야. 우리보고 위안부라 부르지만 우리는 위안부가 아니야. 강제노동 피해자지." 할머니는 당부했다. "부디 지나간 역사를 잊지 말아요. 일본 사람이라고 다 나쁜 사람이겠어? 교과서가 문제지. 여러분 열심히 공부해요. 그래서 우리가 겪은 고통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줘."

역사관 곳곳에는 악몽 같은 과거가 흑백사진으로, 관련 자료들로, 할머니들의 기억화로 재현돼 있었다. 방문자들은 역사관 1층에 걸린 일본군 위안소 분포도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만주부터 중국 대륙은 물론 서쪽으로는 미얀마, 남동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까지 점점이 표시돼 있었다.

지하에는 좁은 위안소 실물 모형도 있었다. 깨진 놋쇠 대야와 함께 나란히 놓인 군용 야전침대 위에 방문객들의 위로 엽서가 수북했다. 곳곳에서 낮은 탄식이 터졌다.

안도 게이토(20·와세다대) 학생은 "위안부 문제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일본 국민 대다수는 잘 모른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포럼팀은 이날 현장 방문에 앞서 이틀에 걸쳐 토론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고 하면서도 "한일 간 인식차는 아직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인 참가자 7명 중 2명은 일정 도중에 돌아가기도 했다. 한 중국 학생은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부각되는 게 불편했던 것 같다"고 했다.

독일에서 온 리나 요한나 엑스너(19)양이 조언했다. "논쟁 중인 역사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 시각이다. 독일에서는 '안네의 일기'를 학생들이 공연하면서 직접 안네가 되어보는 식으로 피해자 입장을 체득한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선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