耿君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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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르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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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沃沮)의 어원이 와지(森林)의 뜻인가?

박구위瓠公 님의 글에서 達胡爾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일찍이 『청회전사례(淸會典事例)』에서 '索倫達虎爾'라는 말이 나왔던 것이 기억났다. 達虎爾 또는 達胡爾로 불리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가 궁금해져서 살짝 조사를 해보았다. 이들은 오늘날은 다우르[達斡爾, Daur]라고 불리는 종족이다.

다우르 족은 현재 내몽고자치구와 흑룡강성 일대에 주로 분포하여 살고 있으며, 일부는 신강 지역에도 거주하고 있다. 2000년 전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132,394명에 이른다고 한다. 사용하는 말은 다우르 어로, 알타이어계 몽골어족에 속한다고 한다.

다우르 족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고, 크게 구분하면 '토착설'과 '거란 후예설'로 나눌 수 있다. 토착설에 따르면, 다우르 족은 처음에는 흑룡강과 징키리 강 하곡(河谷)에 살았으며, 수당대에는 그 지역에 실위(室韋) 각부가 분포하였다고 한다. 요, 금, 원 각대에 걸쳐 그들이 사는 지역은 조정의 행정관할에 들어가 있었고, 명대에는 다우르 족 거주 지대에 위(衛)들이 설치되었는 바, 다우르 족은 흑룡강 이북 지역의 토착민족 후예라는 것이다. 또는 다우르 족의 전설 중에 그 선조가 '흑수국(黑水國)'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수당 대의 흑수부(黑水部)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거란 후예설은 다음과 같다. 다우르 족은 유전적으로 거란인과 관계가 깊다고 하며, 역사 전설과 풍습 또한 요나라 때 거란인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거란 후예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금이 요를 멸망시킬 때 거란인의 한 무리가 북쪽으로 옮겨가 흑룡강 이북에 이르렀고, 이들이 다우르 족으로 발전하였다고 본다.

어쨌든 현재 다우르 족이 분포하는 양상은 17세기 무렵에 형성된 것이다. 후금 정권이 형성되면서, 흑룡강 일대의 종족들은 누르하치의 세력 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때 다우르 족은 지역명을 따라 사하렌[薩哈連, 흑룡강을 가리킴]이라 불리거나, 바치는 공물인 검은 담비에서 비롯하여 사하르차[薩哈爾察]라 불리기도 했으며, 인근의 에벤키[鄂溫克]인 등과 함께 범칭으로 索倫部라 불리기도 하였다. 강희 연간이 되면 드디어 다우르 족을 가리키는 打虎兒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그밖에도 達胡爾, 達虎爾, 達呼爾 등의 다양한 음차가 사용되며, 혹은 앞서 『청회전사례』에서처럼 索倫과 함께 붙어 나오기도 한다. 다우르 족은 건륭 28년(1763)부터 29년(1764)까지 그들 중 절반 가량이 신강(新疆) 지역으로 이주되기도 하였다. 다우르 족의 명칭은 1953년에 이르러 達斡爾로 확정되었다.

앞서도 언급하였듯, 다우르 족의 말은 몽골어족에 해당하며, 그 어휘 측면에서는 같은 몽골 계열의 언어들과 뿌리를 같이하는 단어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다우르 말로 물을 沃索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몽골어로 '물'을 뜻하는 말 ус(우스)와 통하는 말일 것이다. 沃索을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읽으면 '워수오(wosuo)'이니, 그 발음이 유사함을 조심스레 짐작해봄직 하다.

耿君 識


* http://baike.baidu.com/view/593786.htm, http://www.hudong.com/wiki/%E8%BE%BE%E6%96%A1%E5%B0%94%E8%AF%AD 등을 참조하였음.

덧글

  • 지나가다 2010/06/10 08:43 삭제 | 답글

    沃 *qawk > 'ok > uo.
  • 오우 감사합니다. ㅋㅋ

    沃 음의 변화가 그와 같다면 옥저의 沃을 만주어나 다우르어와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할 수 있을는지요.
    耿君, 2010/06/10 09:02

  • 言を待たぬ。 ㅇㅇㅇ, 2010/06/10 09:48 삭제

  • なるほど。 耿君, 2010/06/10 10:59

  • ㅇㅇㅇ 2010/06/10 10:27 삭제 | 답글

    鄂溫克->에벤키, 索倫->솔론.

    뉴스도 안 보나. 요즘 누가 에벤키로 설레발인데.
  • 수정하였습니다. 耿君, 2010/06/10 11:21

  • 雅人知吾 2010/06/11 16:45 답글

    간만에 또 질문드립니다.

    "やい、てめえ、こっちは人斬り包丁をもっているんだ。 小田原堤燈じゃあるまいし、そんなぶらんこの格好をされたんじゃ、どうにも気合のいれようがねえじゃねえか。"

    여기서 오다와라 등불이란게 뭔지 모르겠읍니다. 뭔가 고사에서 유래된 말같은데요.
  • 오다와라 등롱에 대한 설명은
    http://100.yahoo.co.jp/detail/%E5%B0%8F%E7%94%B0%E5%8E%9F%E6%8F%90%E7%81%AF/
    http://ja.wikipedia.org/wiki/%E5%B0%8F%E7%94%B0%E5%8E%9F%E6%8F%90%E7%81%AF
    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ㅎ
    耿君, 2010/06/11 16:48

  • 감사합니다. 2개나 ^-^ 雅人知吾, 2010/06/12 12:26

  • 위키백과만으로는 아무래도 불안한지라 ㅎㅎ 耿君, 2010/06/12 23:20

  • 迪倫 2010/06/13 09:52 답글

    전혀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옥저라고 하니 생각이 나서 덧붙입니다.
    서구 학계에서는 勿吉을 현재 만다린 wuji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Pamela Kyle Crossley, 'The Manchus", Blackwell publishing, 1997 에서는 wuji(물길), mohe(말갈), yilou(읍루), jurchen(여진)이 sushen(숙신)의 후손이라는 주장에는 일단 근거는 없다. 다만 wuji가 jurchen의 선조인것으로 보인다. wuji는 '숲, 삼림거주인"이라는 만주어 weji와 유사하고 아마 이게 어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시에는 아마 mohe와 같은 대상을 가르키는 말이었을 것 같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이 wuji라는 표현을 가지고 okjo와 연결지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본적은 있습니다. 역시 그다지 의미있는 시도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 아무래도 그렇지요. 흠흠
    그런데 옥저는 또 Okjo 내지 Okjeo라고 해주는가요?
    耿君, 2010/06/13 21:06

  • 다시 확인해보니 okjo라고도 표기를 하지만 보다 일반적인 영문표기는 Okcho입니다. eo보다는 o에 위에 삿갓기호가 붙은 표기가 /ㅓ/발음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표기입니다. (한국의 공식적 스펠링 말구요)

    위의 wuji와 연결은 옥저를 /wuju/라고 중국어발음으로 표기한 후 그래서 옥저가 물길이고 라는 식으로 연결을 지으려고 하는 시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흠흠...

    대부분의 고대사의 영문 표기는 한국사에 관련된 것은 한국어 발음이 기준이고, 발해도 Parhae가 Bohai보다 더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점점 괄호치고 중국어 표기 병행하는 것들이 늘어나는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迪倫, 2010/06/14 11:30

  • Okchŏ는 라이샤워식. Okjoe는 2000년 개정식.

    상식적으로 勿吉하고 沃沮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음.
    지나가던, 2010/06/18 15:35 삭제

  • 보리스더불릿다저 2010/06/14 08:23 답글

    안녕하십니까 경군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쥔장님 질문있습니다. 아고라 게시판에서 논쟁하다가 가져왔는데요.
    수서의 문장
    新羅百済皆似倭為大国多珍物並敬仰之恒通使往来
    을 (일부글자가 자꾸 작게 복사되네요. 저 문장 아시리라고 봅니다)
    이걸 아래와 같이 해석하며 우겨대는 머저리가 있는데
    쥔장님께서 오류를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新羅百済 /皆 / 似倭/ 為大国/ 多珍物/ 並敬仰之/ 恒通使往来
    문장의 주어는 신래 백제이고 동사 4개가 병렬로 나열된 형태이다.
    따라서 해석은 아래와 같이 하는 것이 옳다
    신라 백제인은 왜를 가지고 대국을 만들었다 ( 신라 백제인은) 진기한 물건이 많았다
    그것( 진기한 물건)을 경앙하였다 항상 사신이 왕래하였다.
    그리고 왜 도구격으로 해석해야 하는가는 서우한테 물어보든가 ㅋㅋㅋ
    격물이 같은 얘는 물건 경앙한다는게 이상하다고 저질 반론 하는데
    일본의 신사에 칼 거울 같은 것을 神體로써 보관하는 것은 신라 백제인의 풍습이다
    ------------------------------------------------------------------------
    엄청 우기는 머저리라서요. 부탁드립니다.
  • 일단 중화서국 표점본에 의거하여 원문을 다시 옮겨드리겠습니다.
    新羅、百濟皆以倭為大國,多珍物,並敬仰之,恒通使往來.

    1) 제시하신 문장에서 新羅百済皆似의 '似'자가 틀렸고, '以'로 고쳐야 합니다.
    해석은 '가지고'라고 해서 '以'로 읽은 것 같은데 '似'라고 잘못 썼군요.

    2) 以倭為大國
    이 부분은 '왜를 가지고 대국을 만들었다'고 하면 해석이 이상하고요,
    '왜를 대국으로 여겼다'고 봐야 합니다. '以A爲B'는 한문 배울 때 익히는 기본 문형 중 하나죠.

    3) 多珍物
    해석하시는 분은 '진기한 물건이 많았다'는 주체를 (신라 백제인)이라고 보고 있는데,
    문맥상 왜국에 진기한 물건이 많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신라, 백제가 왜국을 대국이라 여기고 있는데, 진귀한 물건이 많은 곳도 왜국이겠지요.

    4) 並敬仰之
    여기서도 之가 가리키는 것은 왜국이 됩니다. '並'자가 나온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앞서 신라, 백제가 '모두' 경앙하였다는 것이 '並'의 의미라 볼 수 있습니다.

    5) 恒通使往来
    이 문장도 신라, 백제가 항상 사신을 통하여 왜국에 왕래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수서 왜국전의 이와 같은 문장은
    당시의 일본을 문화수입국으로 보는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기 때문에
    그 글쓰신 분이 무리한 해석을 가하신 듯 합니다.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耿君, 2010/06/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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