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바꿔 부르겠다는 정부 방침이 생채기에 소금을 뿌린 듯 쓰라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한 용어 문제가 아니라 본질을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해법임을 알면서도 이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는 정부가 엉뚱하게 용어에 집착한다는 지적도 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를 ‘성노예’로 바꾸는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옥선·이옥선·강일출 할머니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피해 할머니들은 “미 국무장관 한마디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경거망동’하고 있다.”며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위안부’는 일본이, ‘성노예’는 미국이 말하는데, 피해자인 우리는 용어 하나도 못 정하고 있다.”며 정부의 개념 없는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과 위안부 명칭을 두고 대화를 했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모든 문서에 ‘위안부’(Comfort Women) 대신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을 지시했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용어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한 정황을 전했다. 할머니들은 대부분 “그게 대수가 아니다. 사과가 본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옥선(85) 할머니는 “위안부라는 말은 일본이 지었고, 성노예라는 말은 미국인 입에서 나왔다. 우리가 만든 것은 무엇이냐.”면서 “죽기 전에 사과 한마디 듣고 싶은데, 나 몰라라 하는 정부가 한심하다.”고 말했다.
강일출(84) 할머니는 “강제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했으니 노예 아니냐.”면서도 “피해자는 우린데 용어 하나까지 일본과 미국이 정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박옥선(88) 할머니는 “위안부도, 성노예도 치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뭐라 불러도 상관없다. 한이나 풀어달라.”고 목청을 돋웠다. 유희남(84) 할머니는 “성노예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시 상처를 건드리는 말은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했고, 배춘희(89) 할머니는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귀가 어두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김순옥(90)·김군자(86) 할머니는 따로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용어 이전에 가슴의 한을 씻어 줄 일본의 사과를 듣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였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수년 전부터 제기됐음에도 반응조차 없더니 미국 국무장관의 말 한마디에 대뜸 바꾸겠다고 나서는 것은 무슨 행태냐.”면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그는 “위안부는 가해자의 용어이며, 본질적으로는 성노예라는 말이 맞다.”면서 ‘일본군 강제 동원 피해자’라는 표현을 제안했다.
대의를 위해 대외적으로 성노예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할머니들을 돌보는 박항혜(50·여)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부 실습생은 “미국인 친구에게 ‘성노예’라고 설명했더니 금방 이해하더라.”면서 “국제적으로 알리기에는 성노예라는 표현이 적확하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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