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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12 20:33 수정 : 2011.07.12 20:33

일제 강점기에 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근대적인 여성노동이 시작됐으며, 전화교환수를 가리키는 ‘헬로걸’ 등 미혼 직업여성들은 각종 ‘걸’로 불렸다. 사진은 옛 서울중앙전화국 시외전화교환실. <한겨레> 자료사진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
일제 강점기 직업여성 조명
강이수 교수의 ‘한국 근현대…’
변하지 않는 차별구조 짚어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꺼져야만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데파트걸’. 하루에 수백 수천의 손님을 대하며 물건을 싸주고 돈을 받는다. 열네 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다리 한번 편안하게 쉬어보지 못하고 줄곧 서 있다.” 어느 ‘버스걸’은 자신을 가리켜 “빵의 절대적인 위력 밑에서 기계적 노예질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걸’은 “다리가 휘고 뼈가 녹는 것 같다”며 가혹한 노동강도를 한탄한다. ‘헬로걸’은 “앞에는 손님의 야비한 욕설, 뒤에는 교환 감독의 꾸지람”이 두렵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사회에 처음 등장한 근대적 ‘직업여성’들의 모습은 신문기사나 수기 등 각종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들의 처지와 고통은 오늘날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에 ‘일상생활사’를 연재하고 있는 최규진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번 여름호에 일제 강점기 여성노동을 조명한 ‘직업여성, 또는 ‘걸’ 그룹’을 실었다. 직업여성이란 당시 일정한 교육을 받고 근대적 일을 했던 여성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백화점 직원인 ‘데파트걸’, 버스 차장인 ‘버스걸’, 전화교환수인 ‘헬로걸’, 극장에서 표를 파는 ‘티켓걸’ 등 서비스 직종에서부터 ‘메뉴큐어걸’, ‘빌리어드걸’ 등 성 상품화 흐름에 따라 매매춘의 경계에 서 있던 직종까지,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당시 한반도에는 다양한 여성 직종들이 나타났다.

매체 기록을 보면, ‘어째서 남자 대신 여자를 쓰는가’ 질문에 고용주들은 “친절하고 급료도 싸다”, “태도가 온순한 것이 유쾌한 기분을 준다”, “견딜성이 많고 능률적이며 또 박봉도 달게 여기는 점이 좋다”, “남자보다는 호기심을 끄는 데 효과적이다” 등으로 대답했다. 직업여성들은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찾아온 혹독한 노동강도와 감독과 통제, 멸시와 감정노동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최 수석연구원은 “경제적 이유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던 직업여성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직장을 떠나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고 풀이했다.

강이수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도 근대 직업여성을 포함해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근현대 여성노동에 대해 벌였던 자신의 연구 성과를 묶어낸 책 <한국 근현대 여성노동-변화와 정체성>을 최근 펴냈다. 그는 각종 ‘걸’들로 대표되는 식민지 시기 직업여성의 노동에 대해, “새로운 근대 직업으로서의 서비스직 여성의 경험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사한 측면이 발견된다”고 풀이했다.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며 일상적인 성희롱이 행해진다는 점, 또 미혼여성의 단기적인 일자리라는 특성 등은 오늘날 여성 서비스 직종에도 이어지는 특성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밖에도 1930년대 면방직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노동자, 60년대 산업화 시기 여성노동자, 오늘날 가사서비스 노동자 등에 대한 고찰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보조적 노동력으로” 치부되어 온 여성노동에 대한 변하지 않는 차별구조를 짚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는 출산과 양육의 부담에서 면제된 남성 노동력을 이상적 노동자로 상정하는 규범이 작동하는 체계인데, 이 속에서 출산과 양육, 가사노동까지 담당하는 여성노동자는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범주로 취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