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한국인을 죽이고 싶다" VS "밤낮없이 글읽는 조선" [세상사람의 조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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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의 조선여행>은 ‘세상 사람들’의 ‘조선’에 대한 평가를 모아뒀다.

잭 런던이라는 미국인은 “백인 여행자가 처음으로 한국에 체류할 경우 처음 몇 주 동안은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력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한국인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며,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다”라고 자기 책에 썼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번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했단다. 런던이 조선에 머문 기간은 1904년 2월 7일경부터 그해 5월 1일까지, 불과 4개월이었다.

런던이 약자 보호에 관심이 많은 당대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이방인들의 평가가 어떠했을 지를 짐작할 만 하다. 살인 욕구 운운까진 아니었지만, 이런 식의 한국인 비하는 드물지 않았다. 게으르다, 겁많다, 약자에 강하다 등이 대체적인 평가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기네들의 기준에 따라 한국을 재단하고 평가했던 것이다. 비유럽, 비기독교는 낙후, 불결, 미개, 야만으로 등치됐다. 산업혁명 이후 거둔 물질적 성공이 이런 인식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서양인들 대부분이 일제의 통치를 긍정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제의 지배가 한국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리라 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평가가 가진 ‘피상성’은 당대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들 스스로야 문화민족임을 자부했지만 당시의 시점에서 세계 속의 조선, 조선민은 미개한 나라이며 다른 민족의 지배를 통해서만 발전이 가능한 존재였을 뿐이다.

한국이 세계, 특히 서양과 본격적인 접촉을 시작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출발점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출처] "한국인을 죽이고 싶다" VS "밤낮없이 글읽는 조선"-<세상사람의 조선여행>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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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조선 병합에 반대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독자적인 문화를 1천년 이상 갖는 민족을 식민지로 병합한다면 일본으로서는 큰 후환'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입장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스스로 부국 강병해지게끔 이끌어서 대한제국을 일본과 협조적인 세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적도 있다.

“나는 한국 국민과 일본국민을 화해시키고 양자간에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이끌어내야할 입장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토는 1905년 한국의 재정고문으로 파견된 메가다를 일본으로 쫓아버린 사건도 있었다. 메가다가 일본의 화폐개혁과 재정개혁을 단행한 이후 곧바로 토지조사 사업을 시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토는 그것을 막았고 그래도 메가다가 말을 듣지 않자 결국 그를 일본본토로 보내버렸다. 이처럼 이토는 조선에 대한 식민사업을 하는 것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보았던 것이고, 나름대로 상황을 관찰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토는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에서 '현자'로써 존경받던 위대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조선에서조차 이토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다음은 해외의 저명한 인사들이 이토를 논평한 것이다.

“이토히로부미공은 일본의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정치가이다. 그의 한국 부임은 대단한 자기희생이었다. 이토공이 한국의 체계를 개선시키기 위한 계획안건들을 내놓았을 때 나의 마음은 요동쳤다. 거기에는 개혁, 공정, 알선이 있었다. 그것은 조선이 범한 모든 잘못된 체계들을 구제 시킬 것 같았다.”
캐나다인 져널리스트 흘레데릭·아서·막켄지 (1906년 런던·디일리 메일지)

“고결한 정치와 도덕을 중요시했던 진보적이고도 원만한 이토 총감에 의하여 한국인은 암흑 시대에서 벗어나 광명세계에 들어섰다. 그들은 과거의 오래 된 악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의 생명 재산이 확실히 보호되는 등, 모든 면에 있어서 3년간에 2배의 진보를 이루어냈다.”
선교사 랏드 박사


위대한 이토의 죽음은 세계각국의 저명한 인사들에게 엄청난 비통함을 안겨줬다. 심지어 '조선에게까지' 그러한 감정을 유발시켰다. 다음은 이토의 죽음을 애도한 해외 인사들과 대한제국 황제의 논평이다.

----------이토히로부미공 암살에 대한 독일인의 논조
“한국인이 공을 암살한 것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슬퍼해야 할 사건이다. 공은 한국인의 가장 좋은친구였기 때문이다.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이 강경적인 태도로 한국에 임하자마자 일본은 의외의 반항을 만났다. 한국인들이 참혹하게 일본 거류민들을 살상했기 때문이다. 그 때 일본의 무단파 및 언론기관은 그 끔찍한 사건을 벌인 이들을 발복색원하자고 목청을 드높였지만 오직 공만이 온화방침을 고집해여 그 강경책이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정치는 철두철미하게 부패하고 있었다. 공은 올바른 개혁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일본 통치하에 있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자발적으로 깨닫게 해주려고 60세를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통감이라고하는 다난의 일자리를 맡았다.”
독일인 엘윈·belts 박사

----------이토공암살에 대한 러시아인의 논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심한 사건이다. 공과 같은 대위인의 서거는, 일본의 손실 뿐만이 아니라, 우리 러시아의 손실이며, 한국의 대손실을 낳게 할것이 자명하다.”
토우신 철도 장관 호르왓트 소장 <하얼빈·웨스트니트크지>

----------이토공암살에 대한 한국 황제의 논조
“이토를 잃음으로 인해, 동양의 인걸이 없어졌다. 공은 우리 나라에 충실과 정의를 세우기위해 장백산에 뼈를 묻을 각오로써 한국의 문명발달에 힘쓰며 양언하고 있었다. 비록 이토가 일본의 정치가라고 해도 그처럼 동양의 평화를 기원한 사람은 없다. 실로 이토는 우리 나라의 자부이다. 그 자부에 위해를 주는 사람(안중근)이 있다고 하면, 사물의 이사를 풀지 않는 유랑인일 것이다. 이토를 잃은 것은, 우리 나라와 일본 뿐만 아니라, 동양의 불행이다.”
10월 27일 대한제국 황제(고종)


이토의 암살로 인해 비통해한 것은 조선의 왕실뿐 만 아니었다. 수많은 조선의 관민들은 그것에 경악하여 이토에게 사죄·추도의 뜻을 보냈다. 11월 4일 이토의 국장에는 한국의 칙사 초정부 대표자등이 다수 참례했다. 같은 날 서울의 장충단에서는 이완용 수상의 주최로 조선의 관민1만명이 참례해 추도회가도가 개최되어 추도회는 전국 각지로 퍼졌다.

1개월 후 11월 26일에는 한성부 민회, 그 다음날은 대한 상무국 총회, 12월 13일에는 영도우지가 각각 추도식을 주최했다. 조선의 관민들은 이토의 죽음에 대해 '추도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안중근의 그 범죄에 대한 것을 '대신 사죄'하기 위해 전국의 13도 곳에 호소해 「도일 사죄 13 도인민 대표 임시 회의소」를 건립하기도 했다. 또 이토공을 민 제묘와 같이 신으로서 모시는 운동이나 그의 동상이나 송덕비를 건립하는 운동까지 일어났다.

이처럼 당시 조선의 관민들은 자발적으로 이토히로부미를 '동양의 영웅' '조선의 대생불'로 존칭하며 숭배를 했다. 반면 당시 , 뤼순 감옥에 투옥되었던 안중근에게 면회가는 조선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충분히 면회갈 여건이 가능했는데도 말이다.
출처 :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근대사 연표 1876 ~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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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월일 내용
1876년
(고종 13년)
2월 2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 조약) 조인
10월 6일 흉년으로 방곡령 내림
11월 4일 경복궁 실화 전각 등 830여 칸 소실
1877년
(고종 14년)
8월 10일 훈련도감 군병, 급료 못 받아 반란 기도
1878년
(고종 15년)
12월 12일 전국 조창의 폐해가 심해 도차각색을 폐지
1879년
(고종 16년)
11월 15일 호포의 균일징수로 양반과 상민의 분쟁과 양반의 출포 거부사태가 빈번하여 그 엄금을 지시
1880년
(고종 17년)
1월 10일 중국어선 130여척 홍주·군산 앞바다에서 밀어
5월 9일 프랑스 군함 1척 부산에 와 통상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8월 28일 김홍집(金弘集),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반입
1881년
(고종 18년)
4월 23일 별기군(別技軍) 설치
5월 11일 영국군함 페가수스호, 원산에 와서 통상요구
1882년
(고종 19년)
4월 6일 불평등 조약 조·미 수호통상조약 조인(최초의 서양수교국)
4월 21일 불평등 조약 조·영 수호조약 조인
5월 15일 불평등 조약 조·독 수호통상조약 조인
6월 9일 임오군란(壬午軍亂) 발발
7월 13일 대원군, 청나라 군대에 납치
9월 22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12월 5일 독일인 묄렌도르프 외교, 재정 고문 초빙
1883년
(고종 20년)
2월 18일 당오전(當五錢) 발행
5월 11일 경상도 동래 민란
7월 15일 박문국(博文局) 설치
1884년
(고종 21년)
10월 17일 갑신정변(甲申政變) 발발
10월 21일 고종, 새 내각을 조직하고 갑신정변의 개혁조치 무효화 선언, 개화파 체포령 내림
1885년
(고종 22년)
2월 경기도 여주 민란
3월 1일 영국함대 거문도 점령 사건
10월 11일 청나라 원세개,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로 부임
1886년
(고종 23년)
3월 5일 미국인 데니, 외교고문에 임명
5월 3일 불평등 조약 조불수호통상조약 조인
1888년
(고종 25년)
7월 13일 불평등 조약 조러육로통상장정 조인(러시아와 국경무역)
1889년
(고종 26년)
1월 강원도 정선 민란
1890년
(고종 27년)
8월 함경도 함창 민란(농민들이 수령, 아전을 구타, 추방하고 고을을 점령)
1891년
(고종 28년)
3월 21일 제주도 민란
8월 강원도 고성 민란
1892년
(고종 29년)
3월 10일 함경도 함흥 민란
5월 29일 불평등 조약 조오수호통상조약 조인
1893년
(고종 30년)
11월 황주, 강계, 회령, 운산, 양주 등 각지에서 민란
12월 전봉준, 군수 조병갑에게 만석보 수세 감면 등 학정 시정 요구
1894년
(고종 31년)
1월 10일 고부민란(고부군민이 군수 조병갑 탐학에 항거. 전봉준 주도 하에 관아 점령)
2월 20일 전봉준, 전라도 각 읍에 봉기 촉구 격문 보냄
2월 22일 김옥균, 상해에서 암살당함
3월 21일 동학농민군, 1차 봉기(고부백산, 4대 강령 발표)
4월 6일 농민군, 황토현 전투 승리(관군 · 포수 · 보부상 연합부대를 격파)
4월 27일 농민군, 전주성 점령
4월 30일 정부, 청에 원군 요청
5월 7일 전주화약 체결(농민군 철수)
5월 16일 동학농민군, 전라도 무장에 집결
5월 23일 일본공사, 고종에게 내정개혁 건의
6월 21일 군국기무처 설치
6월 23일 청일 전쟁 발발
6월 25일 김홍집을 영의정 겸 총재관 임명, 갑오개혁(甲午改革) 시작
7월 15일 김홍집 내각 발족
7월 26일 조일공수동맹(朝日攻守同盟) 체결
9월 3일 동학 농민군, 2차 봉기
9월 농민군이 영남, 관동, 경기 등지에서 봉기
10월 23일 일본공사 이노우에 , 2차 내정개혁신안 20조 제의
11월 8일 공주 우금치 전투, 농민군 대패
11월 21일 군국기무처 폐지, 중추원 신설, 제2차 김홍집 내각 성립
12월 12일 홍범14조 제정
1895년
(고종 32년)
3월 5일 일본 은행과 300만원 차관(借款) 계약
4월 23일 삼국간섭 (고종, 러시아를 가까이 하고 일본을 멀리하는 정책 폄)
5월 14일 국왕·왕비 암살 음모로 박영효 체포
7월 5일 제3차 김홍집 내각 발족
8월 20일 을미사변(乙未事變) 발생
8월 24일 내각개편, 탁지부 어윤중, 내부서리 유길준, 중추원 의장 박정양
11월 15일 단발령(斷髮令) 내림, 근대적 예산의 편성
1896년
(고종 33년)
2월 11일 고종,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함, 아관파천(俄館播遷)
4월 7일 서재필, 《독립신문》 창간
7월 3일 프랑스에 경의철도 부설권 매각
9월 9일 러시아에 무산, 압록강 유역의 삼림 벌채권 매각
10월 24일 러시아 푸티아타대령, 군사교관으로 내한
1897년
(고종 34년)
2월 20일 고종, 경운궁으로 환궁
5월 23일 독립협회,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 마련
8월 14일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침
9월 6일 러시아 군인 14명을 군사고문으로 삼아 새로 군대 편성
10월 11일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결정
10월 러시아, 부산 절영도에 석탄저장소를 설치하려다 각국 공사의 항의로 좌절
11월 20일 독립문(獨立門) 준공
1898년
(고종 35년)
2월 25일 러시아에 절영도조차 매각
3월 10일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개최
9월 8일 경부철도 부설권 일본인에 매각
11월 7일 독립협회 지도자 17명 체포
12월 25일 독립협회, 강제 해산
1899년
(고종 36년)
8월 17일 고종, 「대한국 국제(大韓國 國制)」반포
9월 18일 경인선(京仁線) 개통
9월 27일 영국인에 은산금광 채굴권 매각
12월 4일 독립신문 폐간
1900년
(고종 37년)
4월 10일 마산포를 러시아 특별거류지로 분할
11월 12일 경인선(京仁線) 개업
1901년
(고종 38년)
6월 7일 프랑스인에 평안북도 창성광산(昌城鑛山)의 채굴권 매각
9월 5일 일본 제일은행과 50만원 차관(借款)계약 조인
1902년
(고종 39년)
1월 30일 영일동맹 체결
9월 20일 서울 미곡상(米穀商), 납세 거부하며 철시(撤市)
12월 2일 고종황제 재위 40년 기념 국민축전 10일간 거행
1903년
(고종 40년)
2월 일본 화폐의 유통
5월 20일 용암포 사건(龍巖浦事件) 발생
7월 20일 러시아, 용암포(龍巖浦) 조차계약(租借契約) 체결
1904년
(고종 41년)
2월 8일 러일전쟁(露日戰爭) 발발
2월 23일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체결
3월 17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특파 대사로 내한
4월 3일 일본, 한국에 주차군 사령부(駐箚軍司令部) 설치
5월 18일 러시아와 체결된 모든 조약, 협정 폐기 선언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금광채굴권, 석탄채굴권, 삼림벌채권, 해관관리권, 포경권 등의 파기)
8월 16일 송병준(宋秉畯), 윤시병(尹始炳), 유학주(兪鶴柱) 등과 유신회(維新會) 조직
8월 20일 유신회, 일진회(一進會)로 개칭
8월 22일 제1차 한일협약(韓日協約) 체결 (한일 외국인고문용빙(外國人顧問傭聘)에 관한 협정서)
10월 17일 일본인 메가다 쇼타로(目賀田種太郞), 재정고문에 임명 (화폐개혁 주도)
11월 10일 경부선(京釜線) 철도 완공
12월 4일 진보회(進步會)와 일진회(一進會), 통합
12월 27일 일본외무성 고문인 미국인 스티븐스(Stevens), 외교고문에 임명됨
1905년
(고종 42년)
1월 18일 화폐조례(貨幣條例) 공포 (일본화폐의 국내 유통을 공인)
5월 25일 경부선(京釜線) 개통식 (남대문 역내)
7월 6일 이승만(李承晩), 윤병구,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미 대통령 방문, 한국독립 청원(거절당함)
7월 29일 가쓰라·태프트 협정(Taft-Katsura Agreement) 미국, 일본의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인정
9월 5일 포츠머스(Portsmouth)조약 (러시아, 일본이 조선에 대해 지도·보호·감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승인)
11월 3일 일진회 '한일보호조약'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 체결 (한국의 보호국화)
12월 1일 손병희,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
1906년
(고종 43년)
1월 6일 일진회, 기관지인 국민신보(國民新報) 창간
2월 1일 통감부(統監府) 설치
3월 2일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부임
11월 전국 호구조사(戶口調査) 233만 87호, 978만 1671명
1907년
(고종 44년)
4월 20일 헤이그(Hague) 특사 파견
5월 22일 이완용(李完用) 내각 구성
7월 19일 순종(純宗) 황제 즉위 (고종 퇴위)
7월 24일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 丁未七條約)
12월 5일 영친왕 이은(李垠), 도일
1908년
(순종 1년)
3월 정부, 일본과 차관(借款)계약 체결 (시정개선을 위해 5년간 1968만원 차관)
6월 15일 미국인 콜브란(Corlbran), 갑산광산 채굴권 획득
1909년
(순종 2년)
10월 26일 안중근(安重根)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
11월 1일 한국 최초의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
11월 26일 한성부민회(漢城府民會 회장:유길준)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개최
12월 4일 일진회 일한합방성명서(日韓合邦聲明書) 발표
1910년
(순종 3년)
8월 22일 한일합방조약(韓日合邦條約) 조인
출처 : <연표로 보는 한국역사> 김덕진 (2002 선인출판사)
    <한국사연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4 동방미디어)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한국사> 하일식 (1998 일빛)
    <대한민국사연표> (1984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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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옛날사진 모음 친일파를 위한 변명 [목차](전문 게재) 대한민국 이야기 [목차](전문 게재) 동아일보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정 독도 바로 알기 화해를 위해서_박유하(일부발췌) 근대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