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대한민국 헌법과 일본국 헌법 전문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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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일본국 헌법 전문
일본국민은 정당하게 선출된 국회에서의 대표자를 통해서 행동하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을 위하여, 전국민의 협력과 화합에 의한 성과와 우리나라 전토(全土)에 걸쳐서 자유가 가져다 주는 혜택을 확보하고, 정부의 행위에 의해 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함을 결의하고, 이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고, 이 헌법을 확정한다.

본디 국정(國政)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국민으로부터 그 권위가 유래하고 , 국민의 대표자가 그 권력을 행사하며, 국민이 그 복리를 누린다. 이는, 인류보편의 원리로서, 이 헌법은 이러한 원리에 바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반(反)하는 일체의 헌법, 법령 및 조칙(詔勅)을 배제한다.

일본국민은 영구한 평화를 염원하고, 인간상호의 관계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념을 깊이 자각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전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하여,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고자 결의했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고, 전제(專制)와 예종(隷從), 압박과 편협을 지상에서 영원히 제고하고자 노력하는 국제사회에 있어서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하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세계의 국민이 모두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벗어나, 평화 속에서 생존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는, 어느 나라도 자국 일에만 전념하여 타국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정치도덕의 법칙은 보편적인 것으로, 이 법칙에 따르는 것은 자국의 주권을 유지하고 타국과 대등관계에 서려는 각국의 책무라고 믿는다.

일본국민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전력을 다해 이 숭고한 이상과 목적을 달성하기를 맹세한다.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기초와 성격  0.요약

왕실(황실)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明禮宮(명례궁)의 1792-1904년 수입부, 지출부, 회계부는 동 궁방의 재정이 18세기말 이래 점진적으로 팽창하는 가운데 적자 기조에 빠졌으며, 1882년 當五錢(당오전)의 발행을 기화로 1894년까지 3-4배나 크게 팽창하였으며, 그 주요 지출은 궁중에서 전개된 告祀(고사)ㆍ茶禮(차례)와 宴會(연회)ㆍ賜饌(사찬)이었으며, 甲午更張(갑오경장)과 乙未事變(을미사변)으로 큰 타격을 받은 뒤 大韓帝國(대한제국)의 성립과 함께 다시 팽창했으며, 그 주요 수입원은 황제가 典圜局의 주조 화폐를 內下한 것이었으며, 그래도 1904년의 재정 규모는 1893-1894년의 절반에 못 미치는 규모였으며, 그 역시 궁중에서의 上食(상식)ㆍ茶禮(차례)와 황제를 위한 進饌(진찬)을 주요 용도로 지출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종래 황실재정의 중심으로 간주된 內藏院(내장원) 재정은 명례궁을 비롯한 궁방재정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고는 대한제국기의 황실재정을 조선왕조의 왕실을 전통적으로 지지 내지 견제해 온 儒敎的(유교적) 公의 名分으로부터의 逸脫(일탈)로 평가하였다.
출처 : 大韓帝國期 皇室財政의 기초와 성격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기초와 성격  1.문제제기

1897년에 성립한 大韓帝國(대한제국)이 어떠한 성격의 나라인지를 둘러싸고서는 지금까지 몇 차례 논쟁이 있었다.(*2) 한편의 연구자들은 대한제국의 皇帝(황제)가 추구한 정책과 정치행태를 植民地化(식민지화)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近代的(근대적) 改革(개혁)으로 평가하였다. 다른 한편의 연구자들은 대한제국의 여러 정책에서 근대적 개혁의 요건을 찾기 힘들다고 반론하였다. 이 논쟁이 얼마만큼이나 생산적이었는지는 회의적이다. 논쟁이 전제했던 사실인식의 토대가, 특히 대한제국의 정책을 근대적 개혁으로 평가한 연구자들이 제시했던 실증적 근거가 불충분하고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논쟁은 대한제국기에 팽창한 皇室財政(황실재정)의 지향이 무엇이었는지를 주요 논점으로 하였다. 황실재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정부가 황실을 받들기 위해 정부예산의 일환으로 지원한 宮內府(궁내부)의 재정, 둘째는 황실이 별도의 재원을 공식적으로 확보하여 운영한 궁내부 산하 內藏院(내장원)의 재정, 셋째는 오래 전부터 있어온 宮房(궁방)의 재정이다. 지금까지 황실재정에 관한 연구는 주로 궁내부와 내장원의 재정을 대상으로 하였다. 특히 내장원재정의 실태가 실증적으로 세밀하게 밝혀졌다(金允嬉 1995; 李潤相 1996a, 1996b; 金載昊 1997, 2000). 그렇지만 황실재정의 다른 한 축인 궁방재정의 실태가 거의 밝혀지지 않아 황실재정의 전모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지금까지 궁방재정에 관한 연구가 방치된 데에는 그것이 전 황실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으리라는 전제가 있었다고 보이지만, 과연 그러했는지는 검토의 과제라고 하겠다. 궁방재정의 규모가 작지 않았다면, 오히려 궁내부와 내장원 재정보다 컸다면, 지금까지 그 두 재정에 관한 분석만으로 내려진 몇 가지 결론에 수정이 가해질 수도 있다. 또한 궁방재정에 관한 연구는 구래 조선왕조 王室財政(왕실재정)과의 관련이라는 시각에서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역사적 위상을 분명히 해 줄 수도 있다. 황실재정은 구래 왕실재정의 특질과 경향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많이 지적되어 온대로 대한제국의 황제는 典圜局(전환국)을 자신의 직속기구로 장악하였다. 대한제국의 황제는 전환국이 발행한 다량의 화폐를 자신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유통시켰는데, 그것은 황실재정의 운영과 깊은 연관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전환국 화폐의 유통 경로나 그것의 황실재정과의 연관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았다. 자료의 부족이 큰 원인이었다. 기존 연구의 그러한 문제점도 궁방재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보완되리라 기대된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은 明禮宮(명례궁)이란 궁방의 여러 재정기록을 분석하고자 한다. 우선 1793-1894년에 걸친 동 궁방의 주요 수입원과 지출용도의 추이를 소개한다. 연후에 대한제국기의 동향을 이전 시대와의 연속 또는 단절의 관점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황실재정의 다른 한 축을 이룬 내장원 및 전환국과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역사적 특질에 대해 여전히 불명확한 점을 많이 남기긴 하지만 어느 정도 뚜렷하게 윤곽을 잡고 싶은 것이 이 논문의 바램이다.

명례궁은 1906년 도합 15개였던(和田一郞 1921: 504-5) 궁방 중의 하나이다. 이에 명례궁이 전 궁방 가운데 큰 편에 속하기 했지만 그에 대한 분석만으로 궁방재정의 전모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본 논문의 이 같은 문제점은 추후 전 궁방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대규모 연구를 통해 검증되고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 大韓帝國期 皇室財政의 기초와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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