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05년에 한국에 독도를 자국령으로 하겠다는 것을 조선 조정에 통고를 했다. 만약 조선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었다한다면 이를 외교적으로 저항했었다는 사실이 존재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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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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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독도에 있어서만큼은, 그리고 영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양보나 협상의 여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내가 일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도 당연히 그렇게 하는게 상식에 맞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의 현재의 태도가 특별히 괘씸하다거나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 대응하는 한국의 언론과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의 편협함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고 싶다. 왜? 승정원 일기의 내용을 언급조차 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끄집어 내어 공론화를 시킨 것은 이미 1905년 을사조약 이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일본은 1905년에 한국에 "공식적"으로 독도에 있는 무인도를 자국령으로 하겠다는 것을 조선 조정에 "통고"를 했다. 만약 조선이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었다한다면 당연히 이를 "외교적으로 저항"했었다는 사실이 존재했어야 한다. 헌데 그런 사실 자체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은 독도의 존재에 대해서 무인도로 인정을 했었다. 조선은 1900년 칙령 41조로 자국의 영토로 삼겠다고 선언을 했으나, 국제적으로 공인 받은 것도 아닌데, 이게 구속력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더더욱이 사람이 살 수 조차 없는 무인도가 무슨 점령의 가치가 있기라도 했겠는가. 영해의 개념이나 해양자원의 개념도 근현대에 와서 생긴것이지, 조선 말기에는 그런 개념조차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과의 충돌이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어전회의에서도 여기에 대해서 대응하지 말자는 원칙을 내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묵시적 합의다. 즉, 일본에 독도라고 하는 무인도를 줘버리자는 결론을 내버린 것과 꼭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국제 사법 재판소에 안 가는 이유가 "실효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천만의 말이다. 재판부는 반드시 한국정부에 물어볼 것이다. 1905년에 일본에서 조선에 공식적으로 독도(다케시마)를 일본령으로 하겠다고 통보를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왜 대응을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이다. 그리고 승정원일기의 내용을 반드시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에 어떤 답변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출처 : 독도이야기 6
일본이 독도 문제를 끄집어 내어 공론화를 시킨 것은 이미 1905년 을사조약 이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일본은 1905년에 한국에 "공식적"으로 독도에 있는 무인도를 자국령으로 하겠다는 것을 조선 조정에 "통고"를 했다. 만약 조선이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었다한다면 당연히 이를 "외교적으로 저항"했었다는 사실이 존재했어야 한다. 헌데 그런 사실 자체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은 독도의 존재에 대해서 무인도로 인정을 했었다. 조선은 1900년 칙령 41조로 자국의 영토로 삼겠다고 선언을 했으나, 국제적으로 공인 받은 것도 아닌데, 이게 구속력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더더욱이 사람이 살 수 조차 없는 무인도가 무슨 점령의 가치가 있기라도 했겠는가. 영해의 개념이나 해양자원의 개념도 근현대에 와서 생긴것이지, 조선 말기에는 그런 개념조차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과의 충돌이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어전회의에서도 여기에 대해서 대응하지 말자는 원칙을 내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묵시적 합의다. 즉, 일본에 독도라고 하는 무인도를 줘버리자는 결론을 내버린 것과 꼭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국제 사법 재판소에 안 가는 이유가 "실효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천만의 말이다. 재판부는 반드시 한국정부에 물어볼 것이다. 1905년에 일본에서 조선에 공식적으로 독도(다케시마)를 일본령으로 하겠다고 통보를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왜 대응을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이다. 그리고 승정원일기의 내용을 반드시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에 어떤 답변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출처 : 독도이야기 6
조선왕조실록의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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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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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을 소견(召見)하였다. 사폐(辭陛)를 하였기 때문이다.
하교하기를,
“울릉도(鬱陵島)에는 근래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무때나 왕래하면서 제멋대로 편리를 도모하는 폐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송죽도(松竹島)와 우산도(芋山島)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번에 그대가 가게 된 것은 특별히 가려 차임(差任)한 것이니 각별히 검찰하라. 그리고 앞으로 읍(邑)을 세울 생각이니, 반드시 지도와 함께 별단(別單)에 자세히 적어 보고하라.”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우산도는 바로 울릉도이며 우산(芋山)이란 바로 옛날의 우산국의 국도(國都) 이름입니다. 송죽도는 하나의 작은 섬인데 울릉도와 떨어진 거리는 30리(里)쯤 됩니다. 여기서 나는 물건은 단향(檀香)과 간죽(簡竹)이라고 합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우산도라고도 하고 송죽도라고도 하는데 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죽도라고도 하는데 우산도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라.
울릉도는 본래 삼척 영장(三陟營將)과 월송 만호(越松萬戶)가 돌려가면서 수검(搜檢)하던 곳인데 거의 다 소홀히 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저 외부만 살펴보고 돌아왔기 때문에 이런 폐단이 있었다. 그대는 반드시 상세히 살펴보라.”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삼가 깊이 들어가서 검찰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송도와 죽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송죽도 밖에 따로 송도와 죽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혹시 그전에 가서 수검한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있는가?”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그전에 가서 수검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으나 대체적인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고종 19권, 19년(1882 임오 / 청 광서(光緖) 8년) 4월 7일(임술) 1번째기사
검찰사 이규원을 소견하다
【원본】 23책 19권 24장 B면
【영인본】 2책 47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출처 : 조선왕조실록의 독도
하교하기를,
“울릉도(鬱陵島)에는 근래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무때나 왕래하면서 제멋대로 편리를 도모하는 폐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송죽도(松竹島)와 우산도(芋山島)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번에 그대가 가게 된 것은 특별히 가려 차임(差任)한 것이니 각별히 검찰하라. 그리고 앞으로 읍(邑)을 세울 생각이니, 반드시 지도와 함께 별단(別單)에 자세히 적어 보고하라.”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우산도는 바로 울릉도이며 우산(芋山)이란 바로 옛날의 우산국의 국도(國都) 이름입니다. 송죽도는 하나의 작은 섬인데 울릉도와 떨어진 거리는 30리(里)쯤 됩니다. 여기서 나는 물건은 단향(檀香)과 간죽(簡竹)이라고 합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우산도라고도 하고 송죽도라고도 하는데 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죽도라고도 하는데 우산도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라.
울릉도는 본래 삼척 영장(三陟營將)과 월송 만호(越松萬戶)가 돌려가면서 수검(搜檢)하던 곳인데 거의 다 소홀히 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저 외부만 살펴보고 돌아왔기 때문에 이런 폐단이 있었다. 그대는 반드시 상세히 살펴보라.”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삼가 깊이 들어가서 검찰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송도와 죽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송죽도 밖에 따로 송도와 죽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혹시 그전에 가서 수검한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있는가?”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그전에 가서 수검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으나 대체적인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고종 19권, 19년(1882 임오 / 청 광서(光緖) 8년) 4월 7일(임술) 1번째기사
검찰사 이규원을 소견하다
【원본】 23책 19권 24장 B면
【영인본】 2책 47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출처 : 조선왕조실록의 독도
안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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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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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울릉도 분쟁의 발단은 일본이 자신들의 섬인 울릉도에 조선인 어민이 월경했으므로 조심하라고 조선에 항의한 것이 발단.
2. 당시 조선측은 일본에 사죄하고 있었다. 그 후, 조선 조정에서 정변이 일어나(역사 드라마로 잘 나오는 장희빈 시대의 정변이다) 단번에 강경 자세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조선과 일본의 우호 유지를 위해서 에도 막부가 울릉도를 양보했던 것이다.(그전에 조선이 동국여지승람의 문구를 인용하여, 동해안에서 울릉도가 보이니까 울릉도는 조선의 것이라고 일본측에 종용하였음)
3. 당시 공도정책이라는 나라법이 시행되고 있던 울릉도에, 안용복이라는 어부가 밀어하러 왔다. 그러나 곧 일본 어민에게 발견되어, 체포된 후 일본에 연행되었다. 안용복이 일본 어민에게 항의했다고 하는 사실은 없다.
4. 안용복은 대마도를 경유하여 조선에 인도되었지만, 그 때 조선측은 '엄벌에 처한다'라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공도 정책을 위반했으므로) 즉, 울릉도에 건너가 밀렵하고 있던 어민은 조선에서도 죄인이었던 것이다. 그 후 조선에서는 정변이 일어나 조금 죄가 가벼워진 틈을 타, 재차 일본에 밀항을 시도해 처음은 조선의 고관을 자칭해(사칭이기도 하다) 처음은 환대를 받았지만, 정체가 발각되어 다시 송환되어 버린다.
5. 이 때 안용복은 자신의 죄를 회피할 목적으로 '일본에서 마츠시마를 조선 땅으로 인정받아 왔다' 라고 거짓 진술을 했다.
6. 안용복은 일본에 2번째 도항했을때도, 번의 지방 영주는 만나지 않았고 (지방 영주는 그 때 참근교대(参勤交代)로 에도에 가고 있었다), 에도에 가지도 않았고, 곧바로 나가사키 봉행소(長崎奉行所)경유로 대마도를 거쳐 조선에 송환되고 있다. 일본의 고관을 만날 기회도 없었는데, '막부에게서 인정받아 왔다' 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봉행소의 공무원, 즉, 지방 경찰관이 범인(안용복)으로부터 진술 조서를 받았지만, 그것을 '막부 고관으로부터 인정받아 왔다' 라고 확대 해석해 조선의 공무원에게 전했던 것이다.
출처 : 안용복
2. 당시 조선측은 일본에 사죄하고 있었다. 그 후, 조선 조정에서 정변이 일어나(역사 드라마로 잘 나오는 장희빈 시대의 정변이다) 단번에 강경 자세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조선과 일본의 우호 유지를 위해서 에도 막부가 울릉도를 양보했던 것이다.(그전에 조선이 동국여지승람의 문구를 인용하여, 동해안에서 울릉도가 보이니까 울릉도는 조선의 것이라고 일본측에 종용하였음)
3. 당시 공도정책이라는 나라법이 시행되고 있던 울릉도에, 안용복이라는 어부가 밀어하러 왔다. 그러나 곧 일본 어민에게 발견되어, 체포된 후 일본에 연행되었다. 안용복이 일본 어민에게 항의했다고 하는 사실은 없다.
4. 안용복은 대마도를 경유하여 조선에 인도되었지만, 그 때 조선측은 '엄벌에 처한다'라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공도 정책을 위반했으므로) 즉, 울릉도에 건너가 밀렵하고 있던 어민은 조선에서도 죄인이었던 것이다. 그 후 조선에서는 정변이 일어나 조금 죄가 가벼워진 틈을 타, 재차 일본에 밀항을 시도해 처음은 조선의 고관을 자칭해(사칭이기도 하다) 처음은 환대를 받았지만, 정체가 발각되어 다시 송환되어 버린다.
5. 이 때 안용복은 자신의 죄를 회피할 목적으로 '일본에서 마츠시마를 조선 땅으로 인정받아 왔다' 라고 거짓 진술을 했다.
6. 안용복은 일본에 2번째 도항했을때도, 번의 지방 영주는 만나지 않았고 (지방 영주는 그 때 참근교대(参勤交代)로 에도에 가고 있었다), 에도에 가지도 않았고, 곧바로 나가사키 봉행소(長崎奉行所)경유로 대마도를 거쳐 조선에 송환되고 있다. 일본의 고관을 만날 기회도 없었는데, '막부에게서 인정받아 왔다' 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봉행소의 공무원, 즉, 지방 경찰관이 범인(안용복)으로부터 진술 조서를 받았지만, 그것을 '막부 고관으로부터 인정받아 왔다' 라고 확대 해석해 조선의 공무원에게 전했던 것이다.
출처 : 안용복
독도가 우리나라땅이 아닌 이유 1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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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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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정광태라는 개그맨출신 가수가 "독도는 우리땅" 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금지곡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아직도 정광태씨는 일본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금지곡에서 풀렸지만 일본이 항의를 하면 가끔씩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2. 2000년 새해맞이 해돋이 행사는각 나라의 가장 동쪽 끝 영토에서 실시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가장 동쪽 끝 영토인 독도를 팽개치고 울산광역시의 간절곶 등대에서 새천년 해돋이 채화식을 거행했습니다. (실제로 방송국은 독도에서 행사를 거행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3. 대한민국의 영토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도는 일반 한국인이 접근할 수 없는 섬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일반인이 독도에 들어가려면 외교통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요청시 대부분 반려되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보호 때문이라는데 언제부터 외교통상부가 천연기념물을 관리했나?!)
4.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와 가장 가까운 시마네현 은기군 오개촌에 편입시켜 놓았으며 독도에 일본인 호적까지 등록시켜 놓았습니다. 게다가 일본 시마네현 청사와 경찰청 정문앞에는 '죽도는 일본 고유 영토입니다'라고 적힌 대형 입간판과 시마네현 곳곳에는 '죽도는 일본 땅'이라는 현수막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어느 청사에도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입간판이나 현수막은 없습니다.
5. 일본 시마네현 관청은 독도의 공시지가까지 마련해 놓았으나, 울릉군청에는 독도의 공시지가 따위는 없습니다. --> 지금은 공시지가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6. 1999년 말 경북도지사는 독도의 해경을 위로 방문하려고 정부에 출장신청을 했으나 고위층의 반대로 출장은 무산되었습니다. (일반인은 물론 독도를 관할하는 책임자인 경북도지사도 지맘대로 못갑니다.)
7. 일본은 1996년 신어업협정을 발효시키며 배타적 경제 수역 내에 독도를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애걸복걸로 독도는 중간수역 으로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 어선이 조업시 독도에 정박하는 것은 발포를 무릅써야 합니다. (독도에 있는 경찰은 일본 경찰인가?)
8. 1996년 한 홍콩의 경제주간지가 아시아 기업인들 상대로 "독도영유권"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말레이시아 기업인들은 66.7%, 호주 58.8%,인도55.6% 필리핀의 기업인들은 54.5%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지하고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독도를 한국땅으로 알고 있는 것인가?)
9. 김종필 전 자민련총재가 62년 한,일 국교정상화교섭 당시 독도 폭파를 일본측에 제안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워싱턴발 지지 통신을 인용,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최근 해금된 미 외교문서에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독도 폭파를 제안했으나 일본측이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므로 쉽게 폭파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영토를 폭파할 수 없어서 거부했다는 식으로 해석함.)
10. 정부는 유엔해양법협약 관련규정에 따라 현재 독도를 EEZ를 가지지 않는 [암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98. 11. 8,국회대정부 질의시 국무총리 답변) 하지만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이지만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0.23평방 km 짜리 암석도있나? 암석치고는 꽤 크군.)
11. 남지나해의 [남사군도]는 필리핀, 중국, 베트남, 브루나이, 대만 등 여러나라 간의 분쟁이 일고 있는 지역입니다. 몇 년 전 중국 해군이 그 중의 한 산호초에 가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산호초는 필리핀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입니다. 전임 라모스 정권 때는 별 소용도 없는 외교적 항의로만 일관했습니다. 그러니 중국은 끄떡도 할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스트라다가 새로운 대통령이 된 후에 필리핀 해병대를 보내서 중국이 지은 가건물을 통쾌하게도 폭파해 버렸습니다. 중국과의 전쟁을 각오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자 지레 찔린 중국은 필리핀에 쳐 들어가기는 커녕, 여태 자기 영토, 영해라고 주장하던 자세를 바꾸어 공동관리라는 선까지 후퇴했습니다. (일본이 언젠가 독도 수비대 숙소를 폭파하러 올 것입니다.)
12. 현재 독도에는 독도 수비대라는 명칭의 전투경찰이 있습니다. 국방은 군인이 지키고 치안을 담당하는게 경찰입니다. 독도는 당연히 전경대신 해병대가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일본은 독도주변 영해와 영공에 일본의 군함과 선박, 항공기를 자주 출몰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은 독도를 경찰이 담당하지만 일본은 자위대라는 군대가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 봐~ 일본이 곧 폭파하러 온다니까!)
13. 동해바다 명칭이 일제시대 이전에는 "Merde coree" 등 "조선해"의 영문명칭으로 널리 알려 지다가 일제시대 이후 전세계의 대부분의 지도에선 "Sea of Japan"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국해라고 항의하기는커녕, 맑고 푸른바다라는 뜻의 청해(淸海)로 표기하자고 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지도에 일본해에 떠있는 섬을 한국 영토라고 한다면 전세계 누가 믿어 주겠는가?)
출처 : 독도가 일본땅인 이유 13가지
2. 2000년 새해맞이 해돋이 행사는각 나라의 가장 동쪽 끝 영토에서 실시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가장 동쪽 끝 영토인 독도를 팽개치고 울산광역시의 간절곶 등대에서 새천년 해돋이 채화식을 거행했습니다. (실제로 방송국은 독도에서 행사를 거행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3. 대한민국의 영토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도는 일반 한국인이 접근할 수 없는 섬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일반인이 독도에 들어가려면 외교통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요청시 대부분 반려되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보호 때문이라는데 언제부터 외교통상부가 천연기념물을 관리했나?!)
4.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와 가장 가까운 시마네현 은기군 오개촌에 편입시켜 놓았으며 독도에 일본인 호적까지 등록시켜 놓았습니다. 게다가 일본 시마네현 청사와 경찰청 정문앞에는 '죽도는 일본 고유 영토입니다'라고 적힌 대형 입간판과 시마네현 곳곳에는 '죽도는 일본 땅'이라는 현수막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어느 청사에도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입간판이나 현수막은 없습니다.
5. 일본 시마네현 관청은 독도의 공시지가까지 마련해 놓았으나, 울릉군청에는 독도의 공시지가 따위는 없습니다. --> 지금은 공시지가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6. 1999년 말 경북도지사는 독도의 해경을 위로 방문하려고 정부에 출장신청을 했으나 고위층의 반대로 출장은 무산되었습니다. (일반인은 물론 독도를 관할하는 책임자인 경북도지사도 지맘대로 못갑니다.)
7. 일본은 1996년 신어업협정을 발효시키며 배타적 경제 수역 내에 독도를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애걸복걸로 독도는 중간수역 으로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 어선이 조업시 독도에 정박하는 것은 발포를 무릅써야 합니다. (독도에 있는 경찰은 일본 경찰인가?)
8. 1996년 한 홍콩의 경제주간지가 아시아 기업인들 상대로 "독도영유권"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말레이시아 기업인들은 66.7%, 호주 58.8%,인도55.6% 필리핀의 기업인들은 54.5%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지하고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독도를 한국땅으로 알고 있는 것인가?)
9. 김종필 전 자민련총재가 62년 한,일 국교정상화교섭 당시 독도 폭파를 일본측에 제안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워싱턴발 지지 통신을 인용,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최근 해금된 미 외교문서에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독도 폭파를 제안했으나 일본측이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므로 쉽게 폭파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영토를 폭파할 수 없어서 거부했다는 식으로 해석함.)
10. 정부는 유엔해양법협약 관련규정에 따라 현재 독도를 EEZ를 가지지 않는 [암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98. 11. 8,국회대정부 질의시 국무총리 답변) 하지만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이지만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0.23평방 km 짜리 암석도있나? 암석치고는 꽤 크군.)
11. 남지나해의 [남사군도]는 필리핀, 중국, 베트남, 브루나이, 대만 등 여러나라 간의 분쟁이 일고 있는 지역입니다. 몇 년 전 중국 해군이 그 중의 한 산호초에 가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산호초는 필리핀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입니다. 전임 라모스 정권 때는 별 소용도 없는 외교적 항의로만 일관했습니다. 그러니 중국은 끄떡도 할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스트라다가 새로운 대통령이 된 후에 필리핀 해병대를 보내서 중국이 지은 가건물을 통쾌하게도 폭파해 버렸습니다. 중국과의 전쟁을 각오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자 지레 찔린 중국은 필리핀에 쳐 들어가기는 커녕, 여태 자기 영토, 영해라고 주장하던 자세를 바꾸어 공동관리라는 선까지 후퇴했습니다. (일본이 언젠가 독도 수비대 숙소를 폭파하러 올 것입니다.)
12. 현재 독도에는 독도 수비대라는 명칭의 전투경찰이 있습니다. 국방은 군인이 지키고 치안을 담당하는게 경찰입니다. 독도는 당연히 전경대신 해병대가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일본은 독도주변 영해와 영공에 일본의 군함과 선박, 항공기를 자주 출몰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은 독도를 경찰이 담당하지만 일본은 자위대라는 군대가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 봐~ 일본이 곧 폭파하러 온다니까!)
13. 동해바다 명칭이 일제시대 이전에는 "Merde coree" 등 "조선해"의 영문명칭으로 널리 알려 지다가 일제시대 이후 전세계의 대부분의 지도에선 "Sea of Japan"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국해라고 항의하기는커녕, 맑고 푸른바다라는 뜻의 청해(淸海)로 표기하자고 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지도에 일본해에 떠있는 섬을 한국 영토라고 한다면 전세계 누가 믿어 주겠는가?)
출처 : 독도가 일본땅인 이유 13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