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국제적으로 독도는 분쟁지역으로 공인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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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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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독도는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공인돼 있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재한 사실이 드러났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독도가 현재 한국 영토도 일본 영토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 의원은 2005년 출신학교 단과대 동문들의 모임 커뮤니티에 “어차피 국제적으로 독도는 분쟁 지역으로 공인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 아니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지금 당장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결을 한다면 누구한테 유리할까? 유리하다면 왜 인가? 만약 지금은 일본이 유리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가”라고 썼다.
하 의원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독도가 국제적으로 분쟁 지역이라는 현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라며 “이런 사람들을 극우민족주의자”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당연히 일본의 행위는 침략으로 보이는 것이고 민족독립 운동하듯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현실은 한국이 독도땅임을 공인해주는 외국 나라가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독도가 분쟁 지역인지 아닌지는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는지를 확인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문제”라면서 “미국, 중국, 유럽 나라들이 그 영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일단 현실적인 분쟁 지역”이라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대마도는 모든 나라들이 일본 땅임을 공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 하태경, "독도는 분쟁지역 인정해야"
독도 문제가 정말 우리 나라 국익에
사활적인 이해 관계가 있다면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전략을 짜야 한다.
어차피 국제적으로 독도는
분쟁 지역으로 공인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 아니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쟁은 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야한다면
그 타이밍과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당장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결을 한다면
누구한테 유리할까?
유리하다면 왜 인가?
만약 지금은 일본이 유리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가?
이런 점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좀 차분해질 때이다.
출처 : 독도 전략
하 의원은 2005년 출신학교 단과대 동문들의 모임 커뮤니티에 “어차피 국제적으로 독도는 분쟁 지역으로 공인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 아니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지금 당장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결을 한다면 누구한테 유리할까? 유리하다면 왜 인가? 만약 지금은 일본이 유리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가”라고 썼다.
하 의원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독도가 국제적으로 분쟁 지역이라는 현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라며 “이런 사람들을 극우민족주의자”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당연히 일본의 행위는 침략으로 보이는 것이고 민족독립 운동하듯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현실은 한국이 독도땅임을 공인해주는 외국 나라가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독도가 분쟁 지역인지 아닌지는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는지를 확인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문제”라면서 “미국, 중국, 유럽 나라들이 그 영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일단 현실적인 분쟁 지역”이라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대마도는 모든 나라들이 일본 땅임을 공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 하태경, "독도는 분쟁지역 인정해야"
사활적인 이해 관계가 있다면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전략을 짜야 한다.
어차피 국제적으로 독도는
분쟁 지역으로 공인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 아니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쟁은 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야한다면
그 타이밍과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당장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결을 한다면
누구한테 유리할까?
유리하다면 왜 인가?
만약 지금은 일본이 유리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가?
이런 점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좀 차분해질 때이다.
출처 : 독도 전략
1952년 이승만 평화선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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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에 접어들면서 일본 어민들은 4월 28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이 연합국 측과 제2차 세계대전 종결을 위해 1951년 9월 8일 체결한 강화조약이 그날 발효되기 때문이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일본 어민들이 ‘본토’ 주변의 정해진 선을 벗어나 조업할 수 없도록 했다. ‘맥아더 라인’으로 명명된 이 선은 강화조약 발효와 동시에 폐지될 터였다.
1952년 1월 18일. 100일 뒤면 동해는 일본 어민들의 텃밭이 될 판이었다. 바로 이날 바다 건너, 전화(戰火)에 휩싸인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부산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 ‘확정한 국제적 선례에 의거하고 국가의 복지와 방어를 영원히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될 요구에 의하여’ 해안에서 50∼100마일에 이르는 해상에 선을 긋고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을 한 것이다.
일본으로선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일본은 이를 ‘이승만 라인’이라 부르고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우방인 미국, 자유중국도 비난했으나 이승만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 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평화선’으로 불렀다. 일본 정부가 어민들에게 ‘이승만 라인’을 무시하라고 하자 한국 정부는 군함까지 동원해 ‘평화선’을 넘는 일본 어선을 가차 없이 나포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어민 1명이 숨지기도 했다. 1961년까지 나포된 일본 어선은 300척이 넘고 억류된 일본인은 4000명에 가까웠다.
평화선은 어업 보호의 절박함이 낳은 산물이다. 당시 국내 어선을 모두 더한 총톤수는 10만 t. 그나마 대부분이 무동력선이었다. 일본은 총톤수 200만 t에다 그중 상당수가 한국 경찰선보다 빠른 ‘첨단’이었다.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면 한국의 어업이 침몰할 것은 뻔했다.
그렇다고 평화선이 어업의 보호만을 노린 건 아니다.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킨 것이 절묘했다. 강화조약의 ‘일본이 포기할 지역’에 독도를 넣어 달라는 요구가 거부되자 선수를 친 것이다. 다급해진 일본은 열흘 뒤 ‘한국의 일방적인 영토 침략’이라며 ‘독도 문제’를 쟁점화했으나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뒤였다.
항일 투사 이승만의 쾌거인 평화선이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조인(1965년 6월 22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우리 국민은 울분을 토했다. “얻은 것은 돈이요, 잃은 것은 평화선이다.”
출처 : [책갈피 속의 오늘]1952년 이승만 평화선 선포
1952년 1월 18일. 100일 뒤면 동해는 일본 어민들의 텃밭이 될 판이었다. 바로 이날 바다 건너, 전화(戰火)에 휩싸인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부산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 ‘확정한 국제적 선례에 의거하고 국가의 복지와 방어를 영원히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될 요구에 의하여’ 해안에서 50∼100마일에 이르는 해상에 선을 긋고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을 한 것이다.
일본으로선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일본은 이를 ‘이승만 라인’이라 부르고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우방인 미국, 자유중국도 비난했으나 이승만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 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평화선’으로 불렀다. 일본 정부가 어민들에게 ‘이승만 라인’을 무시하라고 하자 한국 정부는 군함까지 동원해 ‘평화선’을 넘는 일본 어선을 가차 없이 나포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어민 1명이 숨지기도 했다. 1961년까지 나포된 일본 어선은 300척이 넘고 억류된 일본인은 4000명에 가까웠다.
평화선은 어업 보호의 절박함이 낳은 산물이다. 당시 국내 어선을 모두 더한 총톤수는 10만 t. 그나마 대부분이 무동력선이었다. 일본은 총톤수 200만 t에다 그중 상당수가 한국 경찰선보다 빠른 ‘첨단’이었다.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면 한국의 어업이 침몰할 것은 뻔했다.
그렇다고 평화선이 어업의 보호만을 노린 건 아니다.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킨 것이 절묘했다. 강화조약의 ‘일본이 포기할 지역’에 독도를 넣어 달라는 요구가 거부되자 선수를 친 것이다. 다급해진 일본은 열흘 뒤 ‘한국의 일방적인 영토 침략’이라며 ‘독도 문제’를 쟁점화했으나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뒤였다.
항일 투사 이승만의 쾌거인 평화선이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조인(1965년 6월 22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우리 국민은 울분을 토했다. “얻은 것은 돈이요, 잃은 것은 평화선이다.”
출처 : [책갈피 속의 오늘]1952년 이승만 평화선 선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