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위안부

한편 일본군은 한국, 만주, 중국, 동남아, 남양군도에 이르는 전 주둔지에서 군 시설의 일부로 위안소를 설치하였다. 그곳에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출시느이 여인들이 위안부로 노예처럼 수용되어 일본군에 성적 위안을 제공하였다. 일본군은 노예제를 금한 국제 협약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p.93)

대리업자가 여인들에게 제시한것은 큰 돈벌이,가족의 빚갚기,쉬운일,새로운삶등이었다.이러한 꾐에 빠져 많은 여성들은 해외취업에 지원하고 몇백엔의 전대금을 받았다.
(p.93)

식민지 시기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edit

철도,통신,해운에서의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은 신민지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활성화 하였다.
(P.94)

인구의 증가

불과 30년 사이에 인구가 50% 넘게 증가한 것은 공중보건과 의료 개선으로 사망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사망률이 크기 낮아졌다. 전통시대에는 홍역ㆍ 콜레라ㆍ 천연두 등의 전염병이 유행했고, 이것이 기근과 더불어 인구의 증가를 억제하였다. 총독부는 보건위생 업무를 경찰 소관으로 하여 식수와 음식 등 오염원을 관리하고 예방접종에 힘을 써, 전염병의 발생과 전파를 막았다.
(p.95)

농촌사회의 빈궁은 인구유출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200만명이 일본과 만주로 이주하였다.
(P.95) edit

무역의 확대와 자본의 유입

식민지 한국은 서양 제국주의가 지배한 다른 식민지와 달리 농업 식민지로 고착되지 않고 1920년대 이후 공업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는 특징을 보였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이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워 두 시장이 밀접히 통합된 가운데 일본의 과잉자본이 한국으로 건너와 공업에 투자되었기 때문이다.
(p.97)

식민지 한국의 경제는 주로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성장하였다.1910~1939년의 수출은 51배로 수입액은 35배로 커졌다.총생산액에 대한 수출입무역의 비율은 1910년대 평균 23%에서 1920년대 42% 1930년대 54%로 점점 높아졌다.
(p.97)

자본의 유입도 식민지 경제 개발을 촉진하였다.모두 40억 엔에 달하는 일본 자금이 한국에 유입되었다. 1920년대까지는 주로 일본 정부의 국고 자금과 식산은행 자금이 유입되어 농업개발과 철도건설에 투자되었다.1930년대 이후에는 주로 민간 대회사들의 자본이 건너와 광공업과 전기사업에 투자되었다.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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