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는 19세기에 이미 사실상 해체됐어요.” [이영훈 서울대 교수]
―――국사학계에선 조선 왕조가 망한 것은 ‘강포한 도적’(일본) 때문이지 ‘선량한 주인’의 잘못은 아니라고 합니다.
“조선 왕조는 19세기에 이미 사실상 해체됐어요. 인구 증가로 화전민이 늘면서 산림이 황폐해집니다. 조금만 비가 와도 토사가 논밭으로 흘러 들어가 농업생산이 줄었어요. 18세기 중엽에 비해 19세기 말이면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1850년대에 들어서면서 쌀값이 폭등하고,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져요. 왕조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구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를 수탈하고, 식량을 강제로 뺏어간 것은 사실 아닙니까?
“1982년 김해군청에서 토지조사사업 당시 작성된 문서가 대량 발견됐어요. 이 자료를 활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총독부는 국유지를 둘러싼 분쟁을 다루면서 공정했어요. 전국 484만 정보의 국유지 가운데 12만7000정보만 국유지로 남았는데, 그것도 대부분 조선인 농민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불하했습니다. 식량도 시장에서 사들인 것이지 그냥 강탈해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전 국토의 대부분을 강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까?
“우리 학계에는 엄격한 심판관이 없어요. 선진 사회에선 학계를 지배하는 엄격한 심판자 그룹이 있어서 옳고 그름에 대해 판정을 내립니다. 후진 사회는 이런 심판자 그룹이 없기 때문에 뭐가 옳고 그른지를 대중은 물론 연구자도 알 수 없어요.”
―――일제시대를 다룬 소설 ‘아리랑’을 분노와 광기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3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를 지나치게 깎아내린 것 아닌가요?
“토지와 식량 수탈, 학살 등 이 작품이 그리는 내용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는데 학생들이 곳곳에 메모를 남겼더군요. 일본인 순사가 토지조사사업을 방해했다며 농민을 즉결 처분하는 대목에서 ‘아, 이럴 수가’ 하고 분노하는 거예요. 상업화된 민족주의가 판치면서 피해의식만 커지는 거지요. 노년보다 젊은 세대가 반일감정이 더 강한 이유는 상업화된 민족주의와 잘못된 근현대사 교과서에 따른 공(公)교육 때문입니다.”
출전 :“정치 지도자의 잘못된 역사관이 나라 망치고있다”
“조선 왕조는 19세기에 이미 사실상 해체됐어요. 인구 증가로 화전민이 늘면서 산림이 황폐해집니다. 조금만 비가 와도 토사가 논밭으로 흘러 들어가 농업생산이 줄었어요. 18세기 중엽에 비해 19세기 말이면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1850년대에 들어서면서 쌀값이 폭등하고,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져요. 왕조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구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를 수탈하고, 식량을 강제로 뺏어간 것은 사실 아닙니까?
“1982년 김해군청에서 토지조사사업 당시 작성된 문서가 대량 발견됐어요. 이 자료를 활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총독부는 국유지를 둘러싼 분쟁을 다루면서 공정했어요. 전국 484만 정보의 국유지 가운데 12만7000정보만 국유지로 남았는데, 그것도 대부분 조선인 농민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불하했습니다. 식량도 시장에서 사들인 것이지 그냥 강탈해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학계에는 엄격한 심판관이 없어요. 선진 사회에선 학계를 지배하는 엄격한 심판자 그룹이 있어서 옳고 그름에 대해 판정을 내립니다. 후진 사회는 이런 심판자 그룹이 없기 때문에 뭐가 옳고 그른지를 대중은 물론 연구자도 알 수 없어요.”
―――일제시대를 다룬 소설 ‘아리랑’을 분노와 광기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3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를 지나치게 깎아내린 것 아닌가요?
“토지와 식량 수탈, 학살 등 이 작품이 그리는 내용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는데 학생들이 곳곳에 메모를 남겼더군요. 일본인 순사가 토지조사사업을 방해했다며 농민을 즉결 처분하는 대목에서 ‘아, 이럴 수가’ 하고 분노하는 거예요. 상업화된 민족주의가 판치면서 피해의식만 커지는 거지요. 노년보다 젊은 세대가 반일감정이 더 강한 이유는 상업화된 민족주의와 잘못된 근현대사 교과서에 따른 공(公)교육 때문입니다.”
출전 :“정치 지도자의 잘못된 역사관이 나라 망치고있다”
일제강점기 통계자료 7 of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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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통계청 일차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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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일람
100년 전 우리나라 산림은 목재 자원을 나타내는 임목 축적량이 1ha당 17㎥로, 현재의 16% 수준에 불과했다. 백두대간에 일부 큰나무숲이 남아있을 뿐 해발이 낮은 저지대에는 어린나무와 민둥산이 대부분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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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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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임야분포도'
1910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임적조사사업 일환으로 제작한 `조선임야분포도'.
백두산을 중심으로 비교적 울창한 숲이 유지되고 있던 북한지역과 달리
남한지역은 백두대간에만 일부 큰나무숲이 남아있을 뿐 해발이 낮은
저지대에는 어린나무와 민둥산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09.9.8 국립 산림과학원, 전국부 기사 참조.
8일 국립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1910년 제작된 `조선임야분포도'를 이용, 100년 전 남북한 전역 산림의 모습을 분석한 결과, 당시 전체 산림면적은 1천585만ha(도서 제외)로 전 국토의 71%에 달했다.
산림 면적은 현재 남한지역의 산림율(64%) 보다 많았지만, 목재 자원을 나타내는 임목 축적량은 1만㎡(1ha)당 17㎥로, 현재 남한(ha당 103㎡)의 16.5% 수준에 불과했다.
숲의 구성은 큰나무 숲(성숙림) 32%, 어린나무 숲(치수림) 42%, 민둥산(무립목지) 26%였으며, 큰나무숲의 73%가 북부지역에 분포했고 이중 특히 함경도와 평안도에 66%가 있었다.
임상 분포별로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이 43%로, 참나무 같은 활엽수림(30%) 보다 많았다.
북한지역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비교적 울창한 숲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남한지역은 백두대간에 일부 큰나무숲이 남아있을 뿐 해발이 낮은 저지대에는 어린나무와 민둥산이 대부분을 이뤘다.
100년 전 우리나라 산림은 호랑이가 출몰할 만큼 고목(古木)이 울창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금 수준보다 훨씬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임야분포도'는 일본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임적조사사업 일환으로 제작한 현존 최고(最古)이자 첫 한반도 전역 산림분포도다. 이 지도는 산림과학원 녹색경제연구과 배재수 박사가 1996년 일본 북해도대학 중앙도서관에서 입수한 것으로 사본이며 축적은 50만분의 1이다.
20만분의 1 축척으로도 제작됐고 수종 분포(소나무.침엽수.활엽수)와 소유 구분(국유림.사유림.사찰림), 임상 분포(성숙림.치수림.무립목지), 봉산(조선 후기 국가 직속관할 산림) 등과 같은 정보를 담고 있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이 지도는 약 5개월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현지를 답사해 제작한 탓에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100년 전 우리나라 산림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지도로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출전 : 100년전 우리 산림..민둥산에 어린소나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