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토지수탈" "위안부 강제동원"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일제강점기, 공공연한 토지수탈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공공연한 토지수탈은 없었다. 그것은 저희들이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토지조사부'라든지 '분쟁지 자료'라든지 '지적도'라든지 그것을 10년간의 걸쳐서 대폭 검토를 했다.
당시에 조선인들은 토지소유의식이 엄청나게 발전돼 있기 때문에 '네 토지냐, 내 토지냐'에 대해서 애매하게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민사재판까지 간 토지소유관계의 재판은 단 두 건밖에 없다. 이 점을 우리가 아직 연구를 안 해 가지고 안 밝혀져서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이 어수룩하게 분쟁지에 대해서 재판을 안 했겠냐. 재판이 된 게 단 두 건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된다.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하나도 없다."
위안부 문제의 초점은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걸 부정하는 사람 누구도 없다.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냐 안 했냐' 이 문제. 위안부를 강제동원 했다는 일부 위안부 경험자의 증언은 있다. 그러나 한국이고 일본이고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하나도 없다. (일제 강점기 당시) 경제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은 딸을 위안부로 보내지 않았고 어려운 사람들만 보냈다, 따라서 이것은 어느 정도의 자발성도 있을 수 있다. 자발적 위안부, 그것은 객관적 역사적 사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공공연한 토지수탈은 없었다. 그것은 저희들이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토지조사부'라든지 '분쟁지 자료'라든지 '지적도'라든지 그것을 10년간의 걸쳐서 대폭 검토를 했다.
당시에 조선인들은 토지소유의식이 엄청나게 발전돼 있기 때문에 '네 토지냐, 내 토지냐'에 대해서 애매하게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민사재판까지 간 토지소유관계의 재판은 단 두 건밖에 없다. 이 점을 우리가 아직 연구를 안 해 가지고 안 밝혀져서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이 어수룩하게 분쟁지에 대해서 재판을 안 했겠냐. 재판이 된 게 단 두 건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된다.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하나도 없다."
위안부 문제의 초점은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걸 부정하는 사람 누구도 없다.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냐 안 했냐' 이 문제. 위안부를 강제동원 했다는 일부 위안부 경험자의 증언은 있다. 그러나 한국이고 일본이고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하나도 없다. (일제 강점기 당시) 경제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은 딸을 위안부로 보내지 않았고 어려운 사람들만 보냈다, 따라서 이것은 어느 정도의 자발성도 있을 수 있다. 자발적 위안부, 그것은 객관적 역사적 사실.
일제강점기 통계자료 5 of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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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통계청 일차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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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일람
할아버지 어리셧을때 얘기들어보면 지금과 아주 큰차이가 나는것은 아니고 오히려 광복후때의 경제상황이 일제시대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하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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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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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일제시대 생활상을 자주 들어오면서 커온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_- 할아버지 젊으셧을때 얘기들어보면 학교에서랑 들은것과는달리 그렇게 살기가 어려웠다는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교과서에 잇었던것처럼 수탈이 일제시대 내내 계속된것도아니고.
조선인에대한 차별도 아주 심하진 않은것 같아요 일제시대 소설들을 보면 잘 알수있죠...중국인과 조선인끼리 소송이 붙으면 무조건 조선인이 승소했구요 (심지어 할아버지동네에서는 어떤 한분이 중국인을 때려 죽이셧음에도 불구하고 무죄석방됬다는군요 -_-)
조선인에 대한 징용도 일제시대 전반부에 걸쳐 계속 진행되어왔던게 아니고 태평양전쟁 말기때 부터 시작됬다고 하시고(할아버지는 징병일이 45년 8월18일 이었는데 15일날 광복이되서 안가셨음)
할아버지 어리셧을때 얘기들어보면 밥안굶고 등도 석유램프때고 반찬 꼬박꼬박 잘 해드시고 아버지 어머니(저한테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를 졸라 운동화를 사서 학교에 신고가서 자랑했었다는 일화도 들려주셧었고 ㅋ 지금과 아주 큰차이가 나는것은 아니고 오히려 광복후때의 경제상황이 일제시대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하시더라구요. 물론 저희 할아버지집안이 친일파였던것은 절대 아니구요(그냥 굶어죽지 않을 자작농수준).
국사 교과서에서 나오는 내용들이 정부의 반일정책에 따른 역사 왜곡인가요? 정말 국사책에 나와있는것만보면 조선사람들 진짜 피를 말리는것같은 수탈과 억압에 시달린것같이 서술해놨던데... 정말 어떻게된건지 궁금하네요... 전문가님들의 답변좀 부탁드립니다.
출처 : 일제시대 관한 질문입니다. 정말 궁금하네요
조선인에대한 차별도 아주 심하진 않은것 같아요 일제시대 소설들을 보면 잘 알수있죠...중국인과 조선인끼리 소송이 붙으면 무조건 조선인이 승소했구요 (심지어 할아버지동네에서는 어떤 한분이 중국인을 때려 죽이셧음에도 불구하고 무죄석방됬다는군요 -_-)
조선인에 대한 징용도 일제시대 전반부에 걸쳐 계속 진행되어왔던게 아니고 태평양전쟁 말기때 부터 시작됬다고 하시고(할아버지는 징병일이 45년 8월18일 이었는데 15일날 광복이되서 안가셨음)
할아버지 어리셧을때 얘기들어보면 밥안굶고 등도 석유램프때고 반찬 꼬박꼬박 잘 해드시고 아버지 어머니(저한테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를 졸라 운동화를 사서 학교에 신고가서 자랑했었다는 일화도 들려주셧었고 ㅋ 지금과 아주 큰차이가 나는것은 아니고 오히려 광복후때의 경제상황이 일제시대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하시더라구요. 물론 저희 할아버지집안이 친일파였던것은 절대 아니구요(그냥 굶어죽지 않을 자작농수준).
국사 교과서에서 나오는 내용들이 정부의 반일정책에 따른 역사 왜곡인가요? 정말 국사책에 나와있는것만보면 조선사람들 진짜 피를 말리는것같은 수탈과 억압에 시달린것같이 서술해놨던데... 정말 어떻게된건지 궁금하네요... 전문가님들의 답변좀 부탁드립니다.
출처 : 일제시대 관한 질문입니다. 정말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