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아이돌 가수들까지 가담시키며 연예인 지망생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연예기획사 O사 장모(51)씨 사건을 계기로 연예인 지망생을 상대로 한 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연예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은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가해자는 물론이고 대중적 인기를 얻어 성공하고 싶어하는 피해자까지도 합의 등을 통해 사건을 덮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연예기획자가 연예인을 지망하는 10대 여학생 4명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 사건의 법원 판결문에는 일부 연예기획사 대표가 '수퍼 갑(甲)'의 지위를 악용해 스타 지망생들을 상대로 벌인 성폭력 범죄 행각이 낱낱이 드러나있다. 특히 한 피해 여성은 경찰 사이버신고센터에 성폭행당한 사실을 신고했지만 무시당하고 한 여성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다양한 협박과 회유, 사기

연예기획사 대표와 실장 등을 지낸 이모(32)씨. 그는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넣어 검색하면 사진과 함께 약력 등이 뜨는 유명 인물이다. 그는 2010년 4월 가수 지망생 A양(당시 18세)을 오피스텔로 데려가 "내가 하라는 대로 사진을 찍지 않으면 가수가 될 수 없다"고 협박했다. "가수가 되려면 성형수술비 등을 도와줄 스폰서가 있어야 한다" "연예인으로 데뷔한 뒤 소속사를 옮기지 못하게 나체 동영상을 찍는 건 이 업계에선 흔히 하는 일"이라는 얘기도 했다.

이씨는 A양에게 나체로 포즈를 취하라고 강요해 동영상으로 담고 사진도 찍었다. 그는 A양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찍어야 연예인이 될 수 있다"며 성폭행하고 이 장면을 촬영했다. 그는 또 그해 5월에 "연기·노래에 관한 책을 주겠다"며 A양을 오피스텔로 유인해 옷을 벗게 한 뒤 다시 성폭행했다.

이씨는 이 외에도 세 차례 더 A양을 성폭행·추행했다. 그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선 여자인 것을 포기해야 한다. 다른 연예인도 모두 다 했다. 스폰서들이 여러 자세·행위를 요구하니 연습해야 한다"는 말로 A양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이씨는 같은 해 8월에는 B양(20세)에게 "오디션에 합격했으니 미팅을 하자"고 불러낸 뒤 "우리같이 돈 없는 회사는 투자자가 필요한데, 그들에게 성 접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전속 계약을 하려면 네가 우리 회사에 믿음을 줄 수 있게 나체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B양의 알몸 사진을 찍고 추행했다.

이씨는 비슷한 방식으로 C양(12세·초등학생)과 D양(18세)도 성추행했다.

그러나 이씨는 A양에게 가수로서 훈련받을 기회를 준 적도, '후원자'를 소개해 준 적도 없었다.

◇피해자 신고 무시한 경찰

A양은 2010년 10월 다른 연습생과 이야기하다가 그 역시 이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 민간 상담 기관의 도움을 받아 이씨를 고소했다. A양은 금전적인 대가나 합의금도 전혀 요구하지 않고 줄곧 이씨를 형사 처벌하기를 원했다.

B양은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경찰청에 피해를 신고했으나 2개월이 지나도록 답을 얻지 못해 결국 민간 상담 기관을 찾아간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연예기획사 J사 대표 정모(39)씨도 2010년 10월 연예인 지망생인 28세 여성을 사무실로 불러 "몸매를 확인해보자. 겉옷을 벗어보라"고 요구하고 "지금은 거북하겠지만 만성이 되면 거북하지 않고 자연스러울 것"이라며 성추행하는 등 5차례 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6개월형을 받았다.

아역 전문 연예기획사에서 섭외 업무를 담당하던 이모(31)씨는 어린이날이던 2010년 5월 5일 밤 드라마 촬영지로 가기 위해 함께 대기하고 있던 12세 여자 어린이에게 "말을 들으면 촬영을 더 해주겠다"며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이사는 "문제는 연예인 지망생 피해자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의를 하면서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르지도 않은 채 묻혀버린 숨은 범죄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