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재일교포에 대해 일종의 부채의식을 안고 있다. 나라를 빼앗겨 강제로 끌려간 동포와 그 후손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과 권리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반면 재미교포와 달리 국적(國籍)을 중시하고 귀화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그런 부채의식이 사실에 근거하는가를 살피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재일교포는 광복 후 자신과 가족의 미래, 민족적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는 네 번의 기회를 얻었다.

첫 번째는 한국이다. 광복 직후 일본에 체류하던 동포는 200만명으로 집계된다. 귀국선 우키시마(浮島)호 폭침과 같은 비극에도 광복 후 130만명이 귀국하는 데 7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6·25전쟁 직전까지 귀국한 사람은 140만명이었다. 타향에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 중 귀향 희망자는 대부분 귀국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때 돌아왔다.

두 번째는 일본에 머무는 것, 즉 귀국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친일(親日) 행위 때문에 귀국하지 못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재일교포는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흘러가 누적된 경제적 퇴적층 비슷하다. 일본에 남은 60만명은 대부분 귀향을 원했지만 쌓아올린 생활 기반을 허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성공한 인물이 신격호 롯데 회장이고, 일본에 귀화했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인물이 파친코 거부(巨富) 한창우 마루한 회장이다. 차별을 견디면서 때론 정체성을 감추면서 일본에서 이뤄낸 이들의 눈부신 성공은 한국인의 능력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재일교포의 세 번째 선택은 북한이었다. 1959년 시작돼 1984년 막을 내린 북송(北送) 사업을 통해 '지상의 낙원'을 찾아간 재일교포는 9만3340명에 달한다. 엄청난 꿈을 안고 갔지만 성공 사례로 꼽힌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명박·신격호 같은 화려한 이름도 없다. 김정일의 애첩으로 뽑혀 후계자 정은을 낳은 고영희만 씁쓸하게 회자될 뿐이다. 가장 유명했고, 그래서 많은 추종자를 데리고 북송선을 탄 성악가 김영길조차 7년 만에 종적을 감췄다. 북한이 이들을 위해 만든 특별 시설이 악명 높은 요덕수용소였다. 이들은 한국인의 타고난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들의 조국에서 비극적으로 사라졌다.

네 번째 선택은 회색 지역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한국을 저주했고 수령님을 존경했지만 북한행(行)의 말로를 형제·친척을 통해 경험한 일부 교포가 선택한 길이다. 지금도 조선적(朝鮮籍)을 유지하던 많은 사람이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고 있다. 당국은 현재 조총련계 한국 국적자를 5만명 정도로 추정한다. 물론 생각을 바꾼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찬양을 접어두는 대신 한국을 비판하는 일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일본에 살면서 대한민국 여권으로 해외여행을 즐기다가 재외(在外) 참정권을 통해 한국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재일교포에 대한 부채의식을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네 번째 선택은 해당되지 않는다. 역사도, 이념도, 양심도 찾기 어려운 편의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이들을 두 개의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비루한 처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비루하다면 지난 정권 때 민단(民團)에 스며들어 조직까지 장악하진 못했을 것이다. 총선에선 조용하지만 이들은 조직적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대선에서 민낯을 드러낼 수 있다. 전향 흔적이 없는 주사파(主思派) 출신이 이번 총선에서 원내 진입을 시도하는 것도 한국 선거판에 친북(親北)이 개입하는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