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원전 1호기의 완전 정전 사고는 정상 가동 중이더라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대표적인 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력이 공급될 수 있도록 삼중 사중으로 비상 전원설비를 해 놔도 이번처럼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는 비상 전원이 잘 갖춰져 있어 블랙아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장담은 고리 1호기에서 허언이 돼 버렸다.
고리 1호기에는 별도의 전선을 타고 들어오는 외부 전원 2개 라인, 비상 디젤발전기 2대, 예비 비상발전기 1대가 갖춰져 있다. 이들 외부 전원은 비상시 차례로 작동하도록 돼 있다.
사고 당시 외부 전원 한 선은 정비를 위해 끊어 놨고, 또 다른 선은 정비원 실수로 전기가 끊어졌다. 가정의 ‘두꺼비집’에 해당하는 차단기가 내려간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자동으로 즉시 가동에 들어가야 하는 2대의 비상 디젤발전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매뉴얼대로라면 정전 원인을 찾는 것과 병행해 즉시 예비 비상발전기를 가동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안 했다. 이에 따라 12분간 냉각수도 순환되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예비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려면 10분 정도 소요되는데 12분 만에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예비 비상발전기는 가동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백원필 박사는 “원전 가동 중에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 해도 몇 시간은 충분히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이번에는 정전 복구가 간단해 12분밖에 안 걸렸지만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원전도 대정전이 발생해도 몇 시간 내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왔었다. 하지만 수십 일이 지나도 전원 복구를 하지 못해 체르노빌 사태 이후 가장 큰 원전사고로 기록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블랙아웃이 발생할 경우 이번처럼 고쳐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한 달 넘게 사고를 은폐한 것은 원전 운영자의 안일한 안전의식 때문이다. 원전사고는 원자력 안전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즉시 보고하도록 돼 있다. 작은 사고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다. 이런 규정을 무시하고 한 달간 숨겼다. 도쿄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번 사고를 자세히 다루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전원이 모두 끊겨 일어난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뒤 2007년 6월 설계 수명 만료로 가동이 중단됐다. 이어 2008년 1월 17일 정부로부터 10년 기한의 재가동 승인을 받았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