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러스크 서간은 유효.타케시마(독도)는 일본령과 한국 정부에게 전하고 있었다.
|
James Alward Van Fleet
미국 육군 사령관 |
밴・후리트 특명 보고서(report of Van Fleet mission to the Far East 직역:밴・후리트 극동 사절단에 의한 보고서)는 밴・후리트 대통령 특명 대사가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을 방문해 1954년에 아이젠하우어 제 34대 미 대통령에 보냈다고 여겨지는 기밀 문서.1986년 기밀 해제.
요지
이승만 리인이나 타케시마의 영유권에 관해서,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후의 동조약에 대한 미국 정부 공식 견해로서러스크 서간을 감안한이하의 점이 확인된다
1.일방적인 영해 선언(이승만 리인)은 위법이다
2.미국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대해 타케시마는 일본 영토이다고 결론 하고 있다
3.이 영토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다
내용
이승만 리인(평화선)에 대해
일방적인 영해 선언(이승만 리인)은 위법이다
이른바 한국 정부의”평화선”로서의 주장
a. 한국 연안 수역의 귀중한 해양 자원의 보호
b. 어업 자원의 한국과 일본에 있어서의의 장래의 마찰의 배제
c. 공산당원의 침투에 대한 해역에서의 방어
특히 c로 보여지는 당시의 한국 정부의 주장에는 시대 배경과 노력을 느끼지만 결론으로서
합중국 정부는 일관해서, 해양의 주권에 관한 일방적인 선언이 위법이며, 일한간의 어업에 관한 분쟁이 양국의 권익을 보호하는 어업 협정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타케시마는 일본 영토
미국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대해 타케시마는 일본 영토이다고 결론 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합중국은 일본의 주권아래에 남기는 것을 결정해, 평화 조약의 일본이 소유권을 방폐하는 섬들에는 포함하지 않았다.한국은 합중국의 타케시마에 관한 의향을 안들에 알고 있었지만, 합중국은 그 의향을 공표하지 않았다.합중국은 타케시마를 일본의 영토이다고 생각하지만, 분쟁에의 개입은 거부했다.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즉 미국은 타케시마가 일본의 영토인 일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결론 하고 있지만, 분쟁에의 개입은 거부했다.
타케시마의 영토 주장에 대해
타케시마의 영토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다.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적절히 부탁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의향은 비공식에 한국에게 전할 수 있었다.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즉 타케시마의 영토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다고 하는 미국의 의향은 한국에 전해지고 있었다.
시대 배경과 양정부의 교환
1950년 6월 25일 |
한국 전쟁 발발 |
1951년 8월 10일 |
당시의 미국 국무 차관보 딘・러스크보다, 타케시마는 일본령으로 한, 미국 정부의 프란시스코 조약의 최종적인 회답을 한국 정부에 제시한다. (러스크 서간) |
1952년 1월 18일 |
한국이 이승만 리인을 선언 |
1952년 4월 28일 |
일본과의 평화 조약(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 |
1953년 7월 27일 |
한국 전쟁 정전.(한국 대통령은 정전 내용을 불복으로서 조인식에 출석하지 않고) |
1954년 8월 15일 |
한국 전쟁을 지휘한 밴・후리트가 아이젠하우어 제 34대 미 대통령의 특명 대사로서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을 방문해 기밀 문서 밴・후리트 특명 보고서를 작성 |
1954년 9월 25일 |
일본 정부는 영유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부탁 하는 것을 한국측에 제안.한국 정부는 이것에 응하지 않고. |
원문
Report of Van Fleet mission to the Far East
http://en.wikisource.org/wiki/Report_of_Van_Fleet_mission_to_the_Far_Ea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