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에 나오는 그는 일본의 3대 서예가 중 한 사람인 오노도후(894~966년)다. 그는 개구리가 버드나무에 오르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오노도후의 설화'를 남긴 주인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화투는 갓 모양이 일본과 다르고, 의상은 비슷하다. 그밖에 화투에는 6월에 나비, 7월에 멧돼지, 10월에 사슴, 12월에 개구리 등 동물이 등장한다.
◇사슴과 노루·고라니는 어떻게 다른가 = 화투 7월과 10월에는 멧돼지와 사슴이 나온다. 이 시기 일본에서 주로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하는 풍습이 반영된 것.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시기 사냥 풍습이 없다.
그런데 사슴 자체만 놓고 보면 한·중·일 공통의 문화코드로 읽힐 수 있다. 사슴은 십장생 중의 하나로 한·중·일 모두에게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사슴을 드문드문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녹용과 가죽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이젠 높고 깊은 산속에서도 몸에 흰색 얼룩무늬가 있고 뿔이 특히 인상적인 사슴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산에서 한번씩 보이는 것은 고라니와 노루다. 낮은 산이나 들판에서 봤다면 고라니일 가능성이 높다. 고라니는 영어로 'water deer'라 불릴 정도로 물가나 계곡에서 만나기 쉽다. 높은 산에서는 간간이 노루를 만날 수 있다. 노루는 도망갈 때 엉덩이가 흰색인 것이 특징이다. 고라니는 암·수 모두 뿔이 없지만 수컷 노루는 작은 뿔이 있다.
◇모란과 나비는 함께 그리지 않는다? = 화투 6월에는 나비가 있다. 함께 그려진 것은 동양에서는 꽃의 왕으로 불리는 모란이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모란과 나비가 함께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화의 경우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려넣지 않는 것이 관례다.
중국에서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데 여기에 80세를 뜻하는 나비를 함께 그려넣으면 80세까지만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란과 나비를 그릴 때에는 고양이를 함께 그려넣는다.
이와 관련한 한 일화가 전해진다. 당 태종이 신라 선덕여왕에게 모란 그림을 보냈는데 거기에 중국화의 관례대로 나비를 그려 넣지 않았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자신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당 태종이 희롱해 '향기가 없어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역해 크게 화를 냈다는 것. 이 영향으로 한국화에서도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다.
반면 화투에는 일본화의 관례대로 모란과 나비가 함께 그려져 있으니 우리 정서와는 차이가 있다.
◇겨울에 웬 개구리? = 화투 12월에는 개구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면하던 동물이 땅속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돼야 개구리를 볼 수 있다. 따라서 12월의 개구리는 낯설다. 그러나 일본 전통문화와 고시조에도 11월에 개구리가 자주 나온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더 따뜻한 온대몬순기후여서 11월에 개구리가 그려졌다는 설도 설득력이 있지만 한·중·일 3국공동의 문화코드인 십장생의 거북이가 개구리로 표현됐다는 설도 있다.
◇화투의 유래 = 일본 화투는 1543년께 포르투갈인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서양의 카드가 그 원조로 여겨진다. 이후 240여 년간 변형 끝에 18세기 말에 완성된 것.
화투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19세기 말 대마도 상인들에 의해 부산지역에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이후 1940년대 일본군에 강제 징용 및 군속으로 참여했던 한국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고스톱은 1960년대 한국에 수입돼 이후 1980년대 급속한 경제 발달과 정치적 혼탁기를 타고 급속도로 퍼지게 된다. 그러나 1895년 당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스튜어트 컬린(1858∼1929) 교수는 자신이 펴낸 <한국의 놀이>라는 책에서 서양 트럼프의 뿌리가 우리나라 삼국시대 놀이인 '투전(鬪箋)'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전은 두꺼운 종이 한 면에 인물·새·짐승·물고기·벌레 등의 그림이나 글귀를 적은 패를 사용하고 있어 화투와 비슷하다.
따라서 화투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고유 놀이라는 것. 이에 따라 화투에 등장하는 동·식물과 인간 등도 사군자나 십장생 등 우리나라 정서로 재해석한 책과 논문도 다수 있다. <끝>
※참고 자료 : 전북대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권현주 씨의 박사학위 논문 '화투(일본)의 전통문화기호와 화투(한국)의 놀이문화기호', 동덕여대 일문학과 이덕봉 교수의 '화투의 문화기호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