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英·日·獨 최초 비교… 어린이 대상 성범죄 日 3배
성범죄 실태를 주요 선진국과 전수(全數)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19세 미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률(인구 10만명당 신고건수)이 조사 대상국들 가운데 가장 높고, 13세 미만 어린이 대상 성범죄 발생률은 일본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 비율도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 한국에서 강간, 강제 추행 등 심각한 성폭력을 당한 뒤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는 168명 중 1명꼴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피해자 2.7명 중 1명이, 영국은 12.2명 중 1명이 신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뢰해 한국·미국·일본·영국·독일의 2005~2008년 성범죄 현황을 분석한 결과 19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는 '한국〉미국〉영국〉일본〉독일' 순으로 한국이 조사 대상국 중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의 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경찰 신고 사건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8.6건을 기록해 독일(1.0건)의 8배, 일본(2.7건)의 3배, 영국(5.1건)의 1.7배, 미국(6.2건)의 1.4배에 달했다.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어린이 성범죄는 '영국〉독일〉미국〉한국〉일본' 순으로 한국(10만명당 2.5건)이 서구 3개국(영국 15.4건·독일 14.7건·미국 11.9건)보다는 낮지만 일본(0.8건)과 비교하면 3배가 넘었다.
지금까지 정부가 국내 성범죄 통계를 발표한 적은 있지만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선진국과 비교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6년 이태원 초등학생 허모양 피살사건, 2008년 혜진·예슬양 피살사건, 2010년 김길태·김수철 사건 등을 겪으면서 정부가 숱하게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태는 나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 이유에 대해 이번 연구를 총괄한 강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법정 형량(刑量)만 높아졌지 실제로 범인을 붙잡아 형을 집행하는 능력은 거의 나아지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법을 고쳐 형량을 올려도 실행력이 부족해 범죄 억제 효과가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 부모 A(38)씨는 "처음엔 범인이 미웠지만 나중엔 범인을 고소해도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더 미웠다"며 "내가 범인이라도 '재수가 없어 붙잡혔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했다. 수많은 피해자 부모들이 A씨의 말에 동의했다.
범인 검거나 처벌이 미흡한 결과, 어린이·청소년 대상 범죄가 전체적으로 감소하거나 정체 상태에 도달한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유독 성범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2008년 중 영국·일본·독일은 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으나 한국(10만명당 8.0건→8.6건)과 미국(5.8건→6.2건)만 증가 추세였다. 어린이 대상 성범죄 역시 영국·일본·독일은 감소 추세, 미국은 정체 국면인 반면 한국만 큰 폭으로(1.6건→2.5건) 늘어났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까지 분석 틀을 넓혀도 결과는 비슷했다. 영국(10만명당 88.2건→74.9건), 미국(31.8건→29.3건), 일본(8.5건→6.8건)은 성범죄가 줄고 독일(66.9건→69.1건)은 증감을 반복한 반면 한국(28.3→33.4건)만 계속 늘었다. 강 위원은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는 우리보다 신고율이 훨씬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은 이보다 더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