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원재료나 부품 등은 2~3개월치 재고를 확보해놨거나, 이미 거래선을 중국이나 국내 기업으로 돌리고 있는 만큼 아직까지 직접적인 충격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삼성으로 들어오는 쪽(원재료나 부품)은 그나마 낫지만 더 큰 문제는 삼성에서 나가는 쪽”이라고 밝혔다. 반도체나 엘시디(LCD) 등 삼성전자가 생산한 부품을 미국의 애플과 같은 세트업체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납기 지연 등에 따른 분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납기 지연의 책임은 사실 일본에 있지만, 일본에 납기지연에 따른 비용을 청구하기도 힘든 상황이어서 비용을 고스란히 (우리가) 떠 안아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일본산 부품의 조달 차질에 따라 거래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비용이 발생하긴 마찬가지다. 삼성전기의 한 임원은 “거래선이 바뀌게 되면 납품처에 일일이 보고를 해야 하고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며 “일본 사태가 장기화 할 경우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업계에서도 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만만치 않다. 르노삼성자동차는 19일부터 이달 말까지 주말 특근과 평일 2시간의 잔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3월 말까지 재고 물량이 확보돼있고 다음주에도 부품이 요코하마항을 정상 출발해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이번 생산감축 조처를 “지진 사태가 길어질 것을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르노삼성은 트랜스미션과 엔진 관련 부품의 일부를 일본 닛산에 납품하는 부품업체들로부터 들여오고 있다. 전체 부품 가운데 일본산이 17%가량이지만, 구동·조향·제동 등 자동차의 핵심기능의 좌우하는 부품들이다.

일본의 아이신과 자트코로부터 구형 라세티와 쉐보레 스파크(마티즈)에 들어가는 자동변속기를 전량 공급받고 있는 한국지엠도 다음주부터 평일 잔업과 주말 특근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재고 물량은 한달치가 남아있지만 앞으로 상황을 지켜본 뒤 잔업 중단 여부 등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자동차 쪽도 일본 쪽 거래업체들의 설비 복구 상황에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에쿠스와 베라크루즈 등에 들어가는 시스템반도체 등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자동차 부품모듈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 쪽은 “국산 제품 비중이 95% 이상이고 일본산 부품은 베어링 정도”라고 밝혔지만, 재고 물량은 한달치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부품·소재회사들의 설비 정상화가 지연되면 실제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이지평 엘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일 양국의 분업구조상 우리나라는 여전히 중간재와 완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각종 핵심 부품과 소재를 일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특히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수출상품 제조용 원자재가 우리나라의 총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지난 1995년의 고베 대지진 당시의 3.7%에서 최근 5년 평균 4.4%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경락 황예랑 이정연 기자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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