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 독립선언서의 33인 서명자들은 평균 49.16세다. 종교별로는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이었다. 기독교 인사들 중 11명은 젊은 평안도 출신들이었다. 선언서를 주도했던 분들이 종교간·지역간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는데도 전체의 3분의 1이 평안도 출신 기독교도였으니 당시 그쪽의 교세(敎勢)와 항일 민족의식을 짐작할 만하다.

▶선언서는 거사 이틀 전 인쇄소 보성사에서 2만1000장을 찍었다. 서울엔 4000장이 뿌려졌다. 당일 궁중요리 음식점인 명월관 지점 태화관에서 서명자들은 선언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정각 오후 2시를 기다렸다. 만해 한용운이 일어나 연설을 했고,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퍼졌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 팔각정에서도 한 청년이 선언서 낭독을 마치자 군중 함성과 함께 경성의전 학생들의 모자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일제 경찰의 심문조서는 사전모의·확산계획에 집중돼 있다. '지방에는 학생을 시켜 선언서를 갖고 가려 했나' '황해도·평안도·함경도·경기도에서 폭동이 일어났는데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 아닌가'. 서명자들의 답변은 딱 두 가지였다. '그렇지 않다'와 '나는 그런 것은 모른다'.

▶그러나 선언서의 공약3장을 보면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라는 행동지침이 명확하다. 33인 중 충북출신 권병덕은 경찰조사에서 "앞의 사람이 구속되면 뒤의 사람이 그 뜻을 계승하도록 할 생각이었다"고 당당히 밝혔다. 보성전문 교장 윤익선이 조선독립신문 제1호를 찍고 체포되자 천도교월보 편집인 이종린이 2호~4호를 인쇄했다. 그도 체포되자 경성서적조합 서기 장종건과 경성전수학교 학생들이 5호~9호를 발행했으며, 이들마저 잡혀가자 이번엔 보성전문 교수 고원훈 등이 뒤를 잇다가 3월 27일 끌려간다.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분들의 릴레이식 투쟁이었다.

▶3·1운동의 발원지 탑골공원에 있는 대형 독립선언서 석판이 지난달 9일 교체됐으나 무려 11곳이나 오·탈자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제에 저항했던 지사들이 국내외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는 100종이 넘는다. 3·1운동의 성지(聖地)에 있는 음각 석판이 그렇게 엉터리라면 남산, 독립문역, 옛 태화관터, 옛 보성사터, 일본·중국·미국에 흩어져 있는 관련 사료와 기념물은 사정이 어떨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