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부실 매몰… 주민들, 市에 상수도 공급 요청
매몰 후 보름 지났는데 사체 팥죽처럼 녹아있고 뼈들만 둥둥 떠다녀…
흘러나온 침출수가 땅속에 얼마나 유입됐는지 몰라… 핏물 수거해 바이러스 검사

21일 오후 경북 영주시 안정면의 한 돼지농가. 텅 빈 축사 앞마당에 가로 8m·세로 6m·높이 2m 크기의 비닐하우스 1동이 세워져 있고, 약 5m 떨어진 곳엔 대형 액비(液肥)저장조가 설치돼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고, 10t짜리 파란 물탱크 4개 사이에 지름 1m 크기의 검은 관(管) 2개가 세워져 있었다. 주변정리를 하던 한 인부는 "여기는 이장(移葬)한 가축무덤 터고, 저 통(액비저장조)에는 녹아버린 사체가 가득하다"면서 "그동안 핏물이 나와 혼이 났었는데, 이제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돼지 2933마리를 묻었다가 다시 파낸 곳이다. 부실한 매몰로 침출수가 솟구치자 매몰지를 통째로 해체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영주시측은 "매몰과정은 문제가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환경적 관리사례로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환경전문가들은 "침출수로 이미 지하수와 토양이 오염된 실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이날 환경부는 이곳에서 핏물을 수거해 구제역 바이러스 검출 여부를 조사키로 했다.

영주시가 전하는 이 매몰지의 오염과정은 이렇다. 인근 농가에 구제역이 발생하자, 지난달 13일 이곳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했다. 매몰을 위해 땅을 파 보니 50㎝도 안 돼 지하수가 나와 트럭 200대 분량의 흙을 실어와 둑을 쌓는 형식으로 구덩이를 만들었다.

열흘 뒤 매몰지 테두리와 인근 논에 핏물이 보였다. 수십m 떨어져 있는 마을 도랑에도 핏물이 섞여 있었다. 영주시는 급한 대로 무덤가에 웅덩이를 파서 침출수를 모았고, 톱밥을 뿌려 다시 무덤 위로 쌓았다. 웅덩이에 모인 물은 분뇨차량으로 뽑아 올려 하수처리장에 버렸다.

  하루 20∼30t이 솟구쳤다. 결국 영주시는 '매몰지 해체'를 결정했다. 같은 달 28일 무덤을 파헤쳤다. 매몰 후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사체는 마치 팥죽처럼 녹아 있었고 뼈만 둥둥 떠 있었다고 한다. 밀봉이 가능한 200t짜리 액비저장조를 설치해 사체를 옮겼고, 주변 흙과 찌꺼기는 폐기물 매립지에 버렸다. 강신호 녹색환경과장은 "액비저장조는 위쪽에 환기구가 있고, 아래쪽에 침출수를 뺄 수 있는 파이프가 있어 사체가 발효되는 대로 빼내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주시는 매몰지 한가운데 4m 깊이의 구덩이를 팠다. 침출수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최근까지 하루 4∼5차례에 걸쳐 분뇨차량으로 침출수를 뽑아냈다. 그래도 침출수가 계속 나오자 지난 19일 더 깊이 구덩이를 파서 파이프를 묻고 펌프를 달아 집수(集水)시설을 설치했다. 10t짜리 물탱크 4개를 설치해 매몰지 인근 침출수를 뽑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체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얼마나 땅속에 스며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 농장이 있는 마을엔 모두 65가구가 사는데, 대부분 지하수를 식수원으로 쓴다. 농장과 마을은 800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장 황장규(51)씨는 "매몰 직후 농장 인근 도랑에서 핏물이 보였으나 최근엔 사라졌다"며 "하지만 주민들이 찝찝해하고 있어 시에 상수도 공급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엔 사단법인 시민환경연구소가 현장을 찾아 실태 조사를 벌였다. 김정수 부소장은 "핏물을 뽑아내며 정화를 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먹는 식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핏물 시료를 채취해 구제역 바이러스 여부, 생태독성 여부 등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창곤 영주부시장은 "당초부터 예방적 살처분 지역이어서 구제역 위험은 적겠지만, 혹시나 다른 전염병도 우려되는 만큼 인근 토양과 지하수 등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실시해 주민들의 불안감을 없애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