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실태 조사
조은진(가명·30)씨는 대인기피증에 폭식증까지 시달리고 있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끼니마다 큰 대접으로 밥 두어 공기를 비우고 간식도 끊임없이 먹는다. 조씨는 "무언가를 먹을 때만 '그 생각'을 안 할 수 있다"고 했다.'그 생각'이란 조씨가 5살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이웃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기억이다. 무려 20여년 전의 일이지만 조씨는 아직도 당시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씨는 혼자 있을 때면 "넌 죽어야 돼", "넌 사람도 아니야"라며 자기 학대를 하거나 수없이 자살 시도도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평생에 걸쳐 100명 중 4명꼴로 강간이나 강간미수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28일 발표한 '2010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성인여성 1000명당 5.1명이 강간 또는 강간미수를 경험했고 평생 경험으로 보면 1000명당 42.1명이 강간(미수)의 피해를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7년 조사와 비교할 때, 강간·강간미수는 성인여성 1000명당 2.2명(2007년)에서 2010년 5.1명으로, 심각한 성추행(성기접촉·애무 등)은 4.7명에서 2010년 20.6명으로 크게 늘었다. 연구를 맡은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이정은 연구원은 "강간 피해자 중 경찰에 신고한 비율이 올라가는(2007년 7.1%→2010년 12.3%) 등 성폭력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가정폭력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간 폭력 발생률은 2007년 40.3%에서 올해 53.8%로 높아졌다(여성가족부). 부부폭력률은 신체적 폭력·정서적 폭력·경제적 폭력·성학대·방임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신체적 폭력을 기준으로 봤을 때도 2007년 11.6%에서 올해 16.7%로 높아졌다.
여성가족부 김권영 복지지원과장은 "가정폭력이 증가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불안정한 경제·고용 상황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며 "가정폭력이 발생한 원인 중 '경제적 문제'가 2007년에는 4위였으나, 2010년 조사에서는 2위로 올라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