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의 상처>
동북아역사재단 국제학술회의(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일본의 침략전쟁이 끝난 지 60년 넘게 지났지만, 일본의 침략으로 말미암은 동아시아 각국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1992년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된 수요집회는 18년째 800차례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내각이 새롭게 출범하면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진전이 있을 거란 기대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이 24일 서울 서대문구 의주로 재단 대회의실에서 한국, 일본, 중국, 미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2007년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이끌었던 민디 커틀러 아시아 정책 포인트 소장은 미 하원 결의안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결의안의 가장 의미 있는 결과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예 사과하지 않거나 사과의 강도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영구히 차단했다는 점"이라면서 "결의안은 미국인들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묵인하지 않을 거라고 일본 민족주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의안 통과가 일본의 외교 및 사회 정책 수립에서 보수주의자들의 앞길을 막았다는 말도 있다"면서 "1993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준정부 차원에서 사과한 '고노담화'가 폐지될 위기에 처했지만 결의안 통과 덕분에 담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 하원의 결의안 통과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를 특정한 국민(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행위에서 전 세계 여성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로 바꿨다"면서 "위안부 문제는 무력 분쟁에서 국가나 사회가 여성을 보호하지 못했을 때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나쁜 일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아이콘이 됐다"고 강조했다.
중국 상하이사범대 천리페이 교수는 "일본군은 남경대학살 사건을 일으켜 수많은 부녀자를 무참히 성폭행하고 살해했는데 이로 인한 국제적 비난과 성병으로 인한 전투력 감소를 피하기 위해 위안소를 설치했다"면서 "전쟁이 고조되면서 위안소는 중국 각지와 말레이시아,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까지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세계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인 상하이 대일살롱 등 위안소 옛터에 대한 보존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생존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또 생존자의 진술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빠른 시일 안에 끝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제 대부분 80~95세의 할머니가 됐으며 피해자 234명 가운데 90명만 생존해 있다"면서 "여성평화운동단체, 성폭력반대운동단체, 인권운동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쇼지 루쓰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관장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들이 인생을 걸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모습은 일본사람들의 양심을 움직이고 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통해 따스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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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9/24 16: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