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도카와가 드디어 총대를 멨군요. 애니 & 게임 이야기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도 청소년건전육성조례에 대해서 카도카와 쇼텐이 드디어 도쿄애니메페어 보이콧 선언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동안 도쿄도의 행동이 상당히 이중적이었던 것도 사실인 것이, 한쪽으로는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 육성을 위해서 이런저런 행사를 하면서 진흥책이라고 내놓았지만, 반대편에서는 청소년 음란물 규제를 내세워 자의적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규제할 수 있는 조례를 진행시키고 있었으니까요.

예전에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을 때는 다소 흥분한 것도 있어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알고보면 간단합니다. 청소년 대상의 음란물 규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문제는 그 명목으로 제시하는 조례가 현재 일본에서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는 19금 딱지가 붙은 '진짜 음란물'을 청소년에게서 차단하기 위한 추가 조치 등은 거의 없이, 청소년용의 거의 모든 만화에 대해서 자의적인 심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물론 이런 조례가 시행되면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19금의 경계선 위에서 줄타기를 하던 작품들이 청소년 대상 잡지에서 퇴출되거나 이들 작품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심야 시간에도 공중파로 방영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조례가 검토되는 것에는 업계의 자업자득도 적지 않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소동이 난 이후에도 업계의 자정 노력이 별로 없었다는 거죠.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조례 개정안의 내용이 두루뭉술해 '부적절한 표현'의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적용할 권리가 공무원이나 관변단체의 손으로 넘어가기 쉽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악용하면 단순히 노출이나 성적 표현 등의 범주를 벗어나 정치적인 비판 의견이나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의견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정말로 반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이런 걱정을 해봤자 큰 의미는 없습니다. 물론 업계에 계신 분들이라면 비록 외국의 사정일지언정 공분을 느끼고 제작자들의 입장에 지지 의사를 표명할 수 있겠습니다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러기도 어렵고요. 일단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내년 도쿄애니메페어는 이제 큰일났다." 라는 거죠. 규제를  하려면 규제를 하고 진흥을 하려면 진흥을 해야하는데 서로 손발도 못 맞추고 줄타기만 하고 있었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합니다.

지금까지는 카도카와 쇼텐만 보이콧 의사를 표명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건담 유니콘과 삼국전은 불참 1순위입니다. 코드 기어스 신작, 마크로스 F 극장판도 나가기 어려워집니다. 쿄애니 신작인 일상도 마찬가지죠. 한발 더 나아가 카도카와 계열사들이 모두 불참하면 사태는 훨씬 커집니다. 미디어웍스가 발을 빼면 어떤 마술, 내 여동생, 바시소 등등 줄줄이 빠져나갑니다. 그때부터 다른 업체들도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겁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만화 업계의 빅3(슈에이샤, 코단샤, 쇼가쿠칸)의 움직임입니다. 이들 빅3 중 한 군데만 빠져도 도쿄애니메페어는 치명타를 입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쇼가쿠칸이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코난과 도라에몽이 빠진다면 그 타격은 엄청나게 클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케로로가 3년 전 만큼의 파워만 있었다고 해도 카도카와 보이콧의 여파가 지금보다 몇 배는 커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좀 슬프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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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이노세 나오키 도쿄도 부지사의 최근 발언이 여론의 악화를 부추겼다는 보도도 있군요. 내용은 '만화의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인생이 막다른 골목이라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살아있는 여성에게 구애해보세요. 순간, 순간 말하는 것이 예상 밖으로 변하니까 그쪽이 재미있고 미지수이고 사랑스럽습니다'입니다.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말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첫 문장이 '만화 좋아하는 너희들은 인생 막장'이라는 식으로 해석되어 인터넷 등에서 분노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더구나 만화를 좋아하는 것과 여자를 사귀는 것이 무슨 관계인지도 모호합니다. 어쨌든 지금처럼 예민한 시기에는 좀 더 주의했어야 한다고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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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크라켄 2010/12/09 11:44 # 답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실 그동안 만화나 게임 업계가 너무 만만하게 보여왔었던것 사실이죠
    이런 조례 같은걸 보면 "실사는 제외한다"고 써있는데
    이게 다 실사 드라마쪽 같은 사람들은 만만히 못 봐서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 후로에 2010/12/09 12:32 # 답글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가 좀 무리수를 뒀죠......
  • 존다리안 2010/12/09 12:52 # 답글

    우리나라의 저런 류 미디어 업계는 저런 일을 할 힘도 깡도 없으니...TT
  • 蘭忍 2010/12/09 13:56 # 답글

    이시하라 도지사의 경우는 최근엔 만화적BL표현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텔런트가 TV에 출연하는거 자체를 부정하는, 단순한 차별발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있더군요. 도쿄 도지사라는 자리에 있는 인물로써 상당히 생각없는 언동. 이건 만화계뿐만 아니라 여러군데에서 까일 예감이 듭니다.
  • FUNA 2010/12/09 15:16 # 답글

    왠지 도서관전쟁이 생각이 나는군요.
  • 카큔 2010/12/09 15:21 # 답글

    힘내라 카도카와~
  • Lenscat 2010/12/09 16:50 # 삭제 답글

    우리나라와는 파워가 다르군요...
  • 알트아이젠 2010/12/09 21:48 # 답글

    앞으로의 전개가 주목되는군요. 한편으로는 저런 힘을 낼 정도라니...부럽습니다.
  • 미니 2010/12/10 11:08 # 답글

    이시하라 도지사는 까일 짓을 너무 많이 벌였으니까요..
  • 풍신 2010/12/11 07:08 # 답글

    나가이 고 선생을 선두로 한 만화가들 레벨의 항의에서 출판사 레벨로 확장 되었군요.

    사실 총몽 휴재, 이적 사건도 다 정부가 말하는 부적절한 표현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발광, 사이코 단어를 자제해! 옛날에 쓴 대사라고 해도 신장판에선 지워.) 18금에 태클 걸었다는 소린 들려오지 않는데, 멀쩡한 작품에 브레이크 걸리게하니 확실히 심하달까요.

    카도카와를 응원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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