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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1992년 일본, 군 위안부 동원 첫 인정
구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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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관방장관, 사죄의 뜻 담은 담화

‘일본군 위안부’란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에 끌려가 장병들의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을 가리킨다. 한국(조선)에서만 20만명 이상이 끌려가 성적 노예와 같은 삶을 강요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 이슈가 된 것은 해방 뒤 45년이 지난 1990년이었다. 그해 5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한국여성단체연합, 서울지역 여대생대표자협의회 등 여성단체들이 일본 정부에 군 위안부 진상 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90년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발족했다. 91년 12월 김학순 할머니 등 군 위안부 출신 여성 3명이 처음으로 도쿄지방법원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일본 정부는 “장병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장소였던 위안소들은 민간 업자들이 운영했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위청(현 방위성)에 보관돼 있던 자료 안에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군 위안부 동원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견됐고, 이듬해인 92년 1월11일 문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1월13일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군의 관여를 공식 인정하며 사죄의 뜻을 담은 담화를 냈다. 평생 아픔을 안고 살아온 할머니들의 투쟁이 첫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어 17일 한국을 방문한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공식 사과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7월6일 “위안소 설치와 경영 및 감독, 위안소 관계자 신분증 발급 등에 군대와 정부가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93년 일부 군 위안부들의 강제연행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발표됐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재작년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를 강제로 끌어갔다는 증거가 없다”며 고노 담화를 뒤집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2007년 미국 의회는 일본의 과거사 부인에 항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인해선 안된다”는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2일 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순악 할머니가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한 할머니는 88명뿐이다. 경술국치 100년,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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