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기쁨 공감의 기억들
‘한국은 자유로운가?’ 자문
〈20년간의 수요일〉
윤미향 글·조혜주 그림/웅진주니어·1만2000원
그들에게 ‘20년간의 수요일’은 한결같았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 낮 12시만 되면 따로 약속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공식 사죄하고 배상하라.” 20년이 흘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회원들과 역사의 피해자들인 할머니들은 그 긴 시간을 그렇게 견뎌왔다. 이 책의 저자인 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보여주고, 할머니들이 보여준 경이로운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은이는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했던 생생한 기억들을 글 속에 녹여내며, 절망과 기쁨의 순간을 고스란히 책 속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삶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야 할 10대 시절, 꽃 같던 소녀들은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피지도 못한 ‘어린 꽃봉오리’들은 “비단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 “캐러멜과 밀크를 준다”는 말에 속아 위안소라는 지옥으로 끌려갔다. 세월이 지나 할머니들이 내놓는 증언은 실로 듣고 있기가 거북할 정도로 처참하다.
“많을 때에는 하루에 40명이나 상대해야 했고, 씻지도 못했기 때문에 고통이 심해졌다.” “칼로 내 몸에 상처를 냈다. 내가 피를 흘리며 우는데도 그는 나를 강간했다. 내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아기 밴 사람, 만삭된 사람, 쪽 뽑아서 한 트럭 싣고 가서는 총살시켰다.” 어느 일본군 군의관의 일지기록은 우리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다. “조선에서 연행되어 온 여성들은 일본 사병들의 성 배설을 위한 위생적인 공중변소였다.”
피폐해진 어린 영혼들은 해방 뒤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들의 과거가 알려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어 결혼을 할 수도 없었고, 어떤 이는 강제 자궁적출로 아기를 가질 수도 없었다. 그들은 가족을 잃었고 사랑을 빼앗겼고 희망을 갈취당했다.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았다. 그늘로 어둠으로 숨어지내다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그러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첫 공개증언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세간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그 뒤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민 할머니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일제의 책임을 규명하려는 활동이 늘어났다. 하지만 정작 가해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지금도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의 관여는 인정하지만 강제성은 없었으므로 법적 책임이 없다는 논리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논란이 커지자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의 형식으로 사건을 덮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책은 ‘수요시위’가 원하는 정답을 얻을 때까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책은 말미에 ‘불편한 진실’을 추가로 알리면서 우리에게 더 큰 숙제를 남겼다. 어느 국제 심포지엄에서 일본계 여성이 했던 말. “한국군도 베트남 전쟁에서 여성들을 강간하지 않았나요? 한국 정부는 그 여성들에게 어떤 책임을 졌나요? 일본 정부와 다를 것이 없는데 왜 일본에게만 책임을 묻는 건가요?” 책임을 지는 것과 책임을 묻는 것. 어떻게 풀어야 할까. 중학생 이상.
고유리 기자 yuri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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