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제정유래] 국기문제가 최초로 거론된 것은 1880년(고종 17) 8월 일본에서 귀국한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이 가져온 주일청국참찬관(駐日淸國參贊官) 황쥰셴(黃遵憲)의 ≪조선책략 朝鮮策略≫에서이다.
중국용기(中國龍旗)를 청나라에 주청(奏請)하여 군기(軍旗)와 국기로 사용하도록 권고한 이 제안에 따라 조선정부에서는 그 해 12월 1일에 입북(入北)한 진하겸동지사은사(進賀兼冬至謝恩使) 일행에 사역원부사직(司譯院副司直) 이용숙(李容肅)을 수행시켜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을 통하여 진전시켰던바, 조선순문(朝鮮詢問) 8조 중 제7조가 그것이다.
그 내용은 황쥰셴의 제안을 듣고 우리 나라의 선박에 사용할 기표(旗標)를 제정함에 있어서 참고로 중국선박에 사용하고 있는 기표와 우리나라의 기표에 사용할 도식과 색상에 관하여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2월 4일 청나라 덕종(德宗)은 조선정부에 회자(回咨)할 것을 명하였고, 이 회자문은 3월 16일 성경예부(盛京禮部)의 자문으로 조선정부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 뒤 조선정부에서 어느 정도 구체화시켰는지는 불명하다.
이 논의에서 마젠충은 황쥰셴이 제안한 중국용기의 사용을 반대 하면서 조선국왕의 복색·문양 및 조야복색 등을 기초로 하여 백저청운홍룡기(白底靑雲紅龍旗)의 도식을 제안하였으며, 다만 용조(龍爪)를 4자로 하여 중국용기와 구별되도록 하였다.
그 뒤 4월 11일 김홍집은 이응준이 제시한 도식의 수정안으로 홍색을 청·백색으로 바꾸어 권자(圈子)하여 일본국기와 혼돈되는 것을 방지하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 때 마젠충은 백저(白底)에 중앙에 반홍반흑(半紅半黑)의 태극도(太極圖)와 그 둘레에 팔도(八道)를 뜻하는 흑색의 팔괘(八卦) 및 홍색의 주연(周緣)이 있는 도식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태극·팔괘도식의 국기제정문제가 조선정부에서 논의 되었다는 것은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 박영효(朴泳孝)가 메이지환(明治丸) 편으로 출항한 다음 영국인 선장과 상의하여 태극기 대·중·소 3본(本)을 만들었다는 것과, 태극도에 반홍반흑을 사용하자는 마젠충의 제안이 반홍반청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다.
박영효는 8월 22일 태극기 소본(小本)과 함께 국기제정사실을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 보고하였으며, 1883년 1월 27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장계에 따라 팔도사도(八道四都)에 행회(行會)함으로써 태극기가 정식으로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현행 태극기를 대한민국 국기로 정식 공포한 것은 1949년 10월 15일이다.
〔구조원리〕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태극도설≫보다 약 400년 전인 628년(신라 진평왕 50) 건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 가운데 이미 태극도형이 새겨져 있었으며, 1144년(인종 22)에 죽은 검교대위(檢校大尉) 허재(許載)의 석관(石棺) 천판(天板)에도 태극문양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태극이나 태극에 내포된 음양사상은 우리 나라 고대의 문화유적이나 생활습속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고구려 고분의 벽화나 민속설화 또는 의학에 있어서 병리·생리 등을 음성·양성으로 분류하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이 그것이다.
고구려 고분내의 사신도(四神圖)라든지, 특히 현무도(玄武圖)는 음양상화(陰陽相和)의 이치를 나타낸 것으로, 우리 나라의 고대 민속에서 액(厄)막이하는 부적(符籍)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태극도형 등이 전래되기 이전부터 우리 나라는 태극도형 또는 그것이 머금고 있는 음양사상을 일찍부터 이해하고 활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① 흰 바탕:바탕이 흰 빛으로 되어 있는 것은 순일무잡(純一無雜)한 한민족의 동질성과 결백성을 상징한 것이며, 평화를 애호하는 정신이 우리 민족의 기질과 이상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 하겠다.
고대 동부의 여러 족속들이 백의(白衣)를 숭상한 것은 공통된 문화적 특징이라 하겠지만, 특히 ≪삼국지≫ 동이전(東夷傳)에 보면 “나라 사람들이 흰 옷을 숭상해 입었다.”고 하였으며, “상중(喪中)에는 남녀 모두가 순백(純白)으로 입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백색을 숭상한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② 일원상의 태극:유교철학에서 태극은 우주만상의 근원이며 인간생명의 원천으로서 진리를 표현한 것이므로 사멸(死滅)이 있을 수 없는 구원(久遠)의 상(相)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황(李滉)은 “태극은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 만물을 명령하는 자리이며, 어떠한 것에도 명령을 받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천상(天上)의 달이 천강(千江)에 비칠 때 강마다 둥근 달이 있는 것처럼 천지로 말하면 천지가 한 태극이라 할 수 있으며, 만물로 말하면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의 원만성을 구비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만유(萬有)가 모두 태극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으나, 그 원리는 인간 주체로부터 인식되는 것이므로, 인도(人道)의 극치가 곧 태극이며, 태극이 다름아닌 인극(人極)인 것이다.
김장생(金長生)은 만물의 태극보다 인심(人心) 중의 태극, 즉 진리의 주체적인 인극을 강조하였다.
인극으로서의 주체는 남을 해(害)하지 않고 자기완성과 타인의 완성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공동주체이다.
여기에 각 개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자유와 평등의 도리(道理)가 성립되며,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된다 하겠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중에서 천·지의 요소를 인간으로 집약하여 인도주의 정신을 고취하여왔다.
단군설화에서 단군(檀君)이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桓雄)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熊女) 사이에서 탄생하였다고 한 것이라든지, “무릇 도는 인간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은 누구나 이방(異邦)이 따로 없다(道不遠人人無異國).”고 한 최치원(崔致遠)의 진감국사(眞鑑國師) 비문, 그리고 천도교의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 등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태극의 진리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하여 더할 나위 없는 것을 일컬은 것이지만, 그러나 이 같은 추상적 원리는 구체적 현실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음양상대(陰陽相對)의 구체적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③ 태극과 음양과의 관계:태극이 곧 음양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음양을 떠나서 태극은 존재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태극기의 도형을 실제로 고찰하면 홍색의 양과 청색의 음이 상하로 상대화합(相對和合)되어 있는 음양의 도상(圖象)만 보일 뿐이지 태극의 원리는 내재한 까닭에 보이지 않는다.
양상음하(陽上陰下)로 배치된 이유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고 따라서 사회와 민족국가가 형성된다.
음양의 순환과 조화 속에서 만물이 성장하고 번영한다.
음과 양은 본래 성질을 달리하여 각립(各立)하면서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머리와 뿌리를 맞댄 대립관계 속에서 상호 의존하여 생성, 발전하는 것이다.
즉, 이원적 부잡성(不雜性.개별성)과 일원적 불리성(不離性.융합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면서 상호 화합성을 구현하고 있거니와, 이를 조종하고 통일하는 것이 곧 태극인 것이다.
불교철학에 있어서 성(聖)과 속(俗)을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고매한 화엄(華嚴)의 도리를 대중 속에 생활화시킨 것이라든지, 원효(元曉)의 〈십문화쟁론 十門和諍論〉에 있어서 공(空)과 유(有)를 원융하여 일승불교(一乘佛敎)를 이룬 것이라든지, 율곡철학(栗谷哲學)에 있어서 이(理)와 기(氣)가 묘합(妙合)하여 일원화한 ‘이기지묘(理氣之妙)’의 사상 등은 모두 음양양의(陰陽兩儀)의 중화작용(中和作用)을 진리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④ 사괘(四卦):건·곤·감·이의 사괘는 태극도형의 음양 양의와 뗄 수 없는 관계에서 배열된 것으로, 음양이 생성, 발전된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의 태극도형은 좌에서 우로 회전하지만, 태극기에서의 도형은 우에서 좌로 회전하고 있다.
건(○)은 태양(太陽)으로서 양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고, 곤(○)은 태음(太陰)으로서 음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감(○)은 소양(少陽)으로 음 속에서 음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이(○)는 소음(少陰)으로 양 속에서 양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즉, 태양인 건에서 소음인 이로 바뀌고, 이에서 태음인 곤으로 성장하며, 또 곤에서 소양인 감으로 바뀌고, 감에서 태양인 건으로 성장하여 무궁한 순환 발전을 수행한다.
건은 천도(天道)로서 지선(至善)·지공(至公)의 정의(正義)를 의미하고, 곤은 지도(地道)로서 후덕(厚德)과 풍요의 공리(共利)를 상징하며, 감은 수성(水性)으로서 지혜와 활력을 나타내고, 이는 화성(火性)으로서 광명과 정열을 뜻하는 것이며, 백색 바탕은 평화의 정신을 상징한다.
정의와 풍요, 광명과 지혜, 이 네 가지는 우리 국기의 사괘가 상징하는 특징이며, 백색의 바탕인 평화의 정신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것은 곧 산업과 도의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며, 정열과 지성을 겸비한 온전한 인간과 사회를 이룩하려는 이상을 포함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업과 도의, 정열과 지성을 원만하게 조화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며,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자유가 보장되는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문화의 창조와 인류의 평화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대한민국이 희구하는 좌표인 동시에 홍익인간의 국시(國是)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제작과 게양〕 (1) 제작방법 깃면은 흰빛으로 하고 길이와 너비는 3과 2의 비례로 한다. 깃면은 태극과 4괘로 구성된다. 태극은 깃면의 두 대각선이 서로 교차하는 점을 중심으로 깃면너비의 2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린 다음, 두 대각선 중 왼쪽 윗모서리에서 오른쪽 아래 모서리로 그어진 대각선상의 원의 지름을 2등분하여 왼쪽 부분에 원의 지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대각선의 아랫부분에 그린다.
그 오른쪽 부분에 원의 지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대각선의 윗부분에 그리고, 반원으로 연결된 원의 윗부분은 빨강색(진홍색)으로, 그 아랫부분은 파랑색(아청색)으로 한다.
그 다음 4괘는 깃면의 왼쪽 윗부분에 건을, 오른쪽 아랫부분에 곤을, 오른쪽 윗부분에 감을, 왼쪽 아랫부분에 이를 각각 배열한다.
괘의 길이는 태극지름의 2분의 1 (깃면너비의 4분의 1)로 하고, 괘의 너비는 태극지름의 3분의 1 (깃면너비의 6분의 1)로 하며, 괘와 태극 사이는 태극지름의 4분의 1 (깃면너비의 8분의 1)을 띄운다.
괘의 길이 중심을 깃면의 두 대각선상에 두되 그 길이는 두 대각선과 각각 직각을 이루도록 한다.
괘의 구성은 효(爻)로 하되, 그 효의 너비는 괘너비의 4분의 1 (깃면의 너비 24분의 1)로 하고, 효와 효 사이 및 끊어진 효의 사이는 효너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8분의 1)로 한다. 괘는 검정색이다.
깃봉은 아랫부분에 꽃받침이 5편(片) 있는 둥근 모양에 가까운 무궁화봉오리 모양으로 하며, 색은 황금색으로 한다.
깃대는 대나무 또는 쇠 등의 견고한 재질로 만들고, 색은 대나무색 또는 이와 유사한 색으로 한다.
(2) 게양방법 국기는 비 또는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의 낮에 게양함을 원칙으로 하며, 하절기(3∼10월)에는 오전 7시에 달고 오후 6시에 내리며,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7시에 달고 오후 5시에 내린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그 행사 때에만 달기도 한다.
경축할 때는 깃봉과 깃 사이를 떼지 않고 단다. 일반 가정의 대문에는 집 밖에서 보아 왼쪽에 곧게 세우며, 건물의 옥상에는 그 중앙에 국기를 게양한다.
국장·국민장 등 조의를 표할 때는 깃봉에서 깃면의 너비만큼 떼어서 단다.
외국기와 같이 달 때는 최우선의 위치에 단다.
태극기와 외국기 하나를 같이 세울 때는 태극기를 왼쪽에 세우고, 서로 엇갈리게 할 때는 태극기의 깃면이 단상을 향하여 왼쪽에 오게 하고 깃대는 밖으로 가게 한다.
세 나라 이상의 외국기와 함께 세울 때는 홀수인 경우에는 태극기를 중앙에 달고 외국기는 국명의 알파벳순에 따라 향해서 왼편이 둘째, 오른편이 셋째순으로 하며, 짝수인 경우에는 태극기를 왼편 첫째로 하고, 외국기는 국명의 알파벳순에 따라 오른쪽으로 차례차례 단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참고문헌≫ 三國遺事 ≪참고문헌≫ 高麗史節要 ≪참고문헌≫ 退溪全書 ≪참고문헌≫ 栗谷全書 ≪참고문헌≫ 龜峰集 ≪참고문헌≫ 近思錄釋疑 ≪참고문헌≫ 周易 ≪참고문헌≫ 三國志 ≪참고문헌≫ 後漢書 ≪참고문헌≫ 大韓民國國旗에 관한 規程 ≪참고문헌≫ 太極旗의 原理와 民族의 理想(柳承國, 韓國思想과 現代, 東方學術硏究院, 1988)
≪참고문헌≫ 우리 국기 제정의 유래와 그 의의(李瑄根, 국사상의 제문제 2, 1959)
≪참고문헌≫ 國旗制定의 由來에 대한 管見(權錫奉, 歷史學報 23, 1964)

19세기 한국의 태극기

몽골의 국기에서의 태극

티벳 국기에서의 태극 티벳에서는 한국과 똑같은 태극 도형을 사용하는데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의 우주 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합니다.
몽골 국기에서 보이는 태극 문양은 남녀를 상징하며, 또한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지혜와 방심하지 않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백제(百濟)
한국의 태극문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부 살펴봅시다.
이것에 관한 특별한 어휘는 전해지지 않지만 단군신화를 보면 천부인(하늘의 징표)에 근접하는 유물입니다.
 마한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물로 고조선계 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 , B.C 300~100 고조선 영역에서만 나오는 거울로 고대의 종교관을 엿볼수있는 유물입니다.
거울은 작은 삼각형이 모여 소용돌이를 이루고 빛의 방향에 따라서 왼쪽으로 돌기도하고 오른쪽으로도 돕니다.
그야말로 조화롭지만 변화무쌍한 우주 만물의 원리를 실시간으로 볼수있게 디자인한 유물입니다.
그러다가 차츰 곡선의 디자인이 나오게 되면서 대략 원시적인 태극 문양이 갖추어 집니다.
마한의 방패유물(신창동 삼한시대 유적)
소용돌이 문양들이 정형화 되는것은 삼국시대입니다.
백제의 태극무늬 기와들입니다. 마한 시절의 소용돌이 무늬에서 태극문양으로 세련되게 만들어집니다.
신라(新羅)
신라에선 한국 전통 문양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3태극 문양이 발견됩니다.
가운데 태극은 시계 방향으로 도는것이 재미있죠.

신라 미추왕릉 보검의 3태극 (三太極) A.D 400~500 중앙아시아 단검형식에 삼태극이 3개 결합한 신기한 보검.

신라 감은사지의 태극 문양 (682年)
팔괘의 유입.
태극기는 그 형태가 팔괘를 참고하고 있어 도교와 관계가 깊지요. 북한의 낙랑유적에선 기원전후 부근 漢나라의 팔괘유물(나침반)이 발견됬다고 하는데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팔괘같은 주역이론이 한반도에 존재했음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도교의 본격적인 도입 시대부터 살펴봅니다.
고구려(高句麗)
고구려 벽화에서 신선이 팔괘(八卦)를 긋는 모습
도교는 고구려때 성행하여 오늘날 고분 벽화를 통해서 잘 볼수있습니다.
또한 연개소문이 정식으로 당나라 도교를 수입하여 장려하려 했습니다.
한국 태극기에서 팔괘는 ? (하늘) , ? (땅) , ? (물) , ? (불) 4가지만 사용하는데 위치로 보면 동서남북 4방위를 뜻합니다.
고구려에선 음양론으로 해(삼족오와)와 달(토끼,두꺼비)를 사용했고 팔괘보다는 사신도를 선호했기 때문에 태극이나 팔괘 유물을 찾기 힘들죠.
고려시대 - 高麗

몽골내습도(고려,몽골 연합군의 일본 침공)에는 고려 병사들의 방패에 삼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진에서 몽골군 깃발은 붉은 바탕에 노란 태양.현무,주작,청룡,백호 사신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팔괘나 태극은 여러 유물에서 발견됩니다.
조선시대 - 朝鮮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券) - 임진왜란에 참가한 명나라 화가 작품
조선 수군 배에 조선군 식별을 위한 태극 깃발이 달려있습니다.
정식 태극기가 사용되기 전에 이런 형태의 태극 깃발들이 많은데 태극무늬는 널리 석조 문양, 서원 대문, 별전, 장신구, 여러곳에 활용됩니다

삼군수군조련도 (三軍水軍調練圖 )
師 깃발을 달고있는 판옥선 꼭대기에 펄럭이는 태극 기발
 조선시대 태극 배갯모 배개에 세겨놓을 만큼 널리 쓰였다.

조선시대 열쇠고리, 수복십이지장 개금패(開金牌) -대전 화폐 박물관
 조선시대의 윷놀이 판에서는 북극성 자리에 태극이 박혀있습니다.
정식으로 조선의 국기가 된 박영효의 태극기
우리나라의 국기 제정은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 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조인식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청(淸)이 자기나라 국기인 용기(龍旗)를 약간 변형하여 사용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 사용해 오던 태극 문양을 흰색 바탕에빨강과 파랑으로 그려 넣은 '태극 도형기'(太極 圖形旗)를 임시 국기로 사용하였다.
그 후 국기 제정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 정부는 종전의 '태극 도형기'에 8괘(卦)를 첨가하여 '태극·8괘 도안'의 기를 만들었다.
1882년 9월 박영효(朴泳孝)는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特命全權大臣) 겸 수신사(修信使)로 이 국기를 지니고 일본으로 가던 중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만을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바로 그 달 25일부터 사용하였다.
10월 3일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자, 고종은 다음해인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하였다
【천안=뉴시스】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28일 영국국립문서보관서(National Archives)에서 확인, 발굴한 최초의 태극기 원형을 공개했다.
독립기념관이 공개한 최초의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제작한 태극기의 원형을 그대로 그린 것으로 크기는 가로 142.41㎝, 세로 115.14㎝, 태극의 지름 81.81㎝이다.
1882年 미해군이 발행해 소개된 세계의 국기들. Bureau of Navigation

1882년 출판 정식 세계의 국기편 영문판.
지금까지는 이게 1등 태극기 였지만 박영호 태극기 원본이 나왔으니 2등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하사한 이 태극기는 데니가 귀국할 때 가져 갔고, 그의 후손인 윌리엄 랜스턴이 한국에 기증했다.
데니 태극기(1890)는 실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

1883년 조선의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하여 태극기를 게양했을 때 9월 27일 뉴욕 타임즈 신문에서는 한국의 태극문형을 '상형문자와 같은 상징'으로 '행복'을 의미한다고 그대로 소개하였다.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나 12살까지 어린시절을 평양에서 보낸 미국인 미스터 핑씨의 태극기 유품
일제 치하 3.1운동때 쓰던 태극기 인쇄용 목판입니다.
-참고-
대청국속 태극기(大淸國屬)는 1886년작 조선의 자립을 막으려던 청나라 짱개 이홍장의 개인저서 通商章程成案彙編 에 수록
편저자(한자) 李鴻章(淸) 編 판본사항 古活字本 간행지 鐵城 책권수 30卷 12冊, 彩色圖
편저자(한글) 이홍장(청) 편 간행연도 [光緖12年(1886) 序] 간행자 廣百宋齋藏 책크기 19.8×12.9cm

한국 태극과 중국 태극의 차이점.
중국의 태극은 11세기에 최초로 그 이론이 정립되어 도형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동심원 형태로 한국이나 티벳에서 유행하던 물결무늬 태극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중국쪽이 상당히 늦은감이 있습니다.
중국의 전통 태극문양은 1070년 제작된 주돈이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태극'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일까?
국내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삼국시대 부터 한민족이 애용해 온 전통적 고유문양이자 음양 사상을 표현한 민족 부호라는 것이다.
김원모 교수는 "서기 1070년 나온 중국의 《태극도설(太極圖說)》보다 388년 앞서 서기 682년에 건립된 신라의 감은사 주춧돌에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고려시대 허재(許載) 석관의 태극무늬(1144)와 충주 예성 신방석 태극무늬(1277), 종묘 정전 나무기둥의 삼태극문양 (1608) 등으로 계승됐다.
모양도 중국과는 다르다.
중국의 태극이 동그라미가 겹쳐 있는 것인 데 비해 한국은 처음부터 좌우 상하로 휘감긴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다.
태극기(太極旗)는 대한민국의 국기로 흰 바탕의 기 위에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곤·감·리 4괘가 네 귀에 둘러싸고 있다.
1882년(고종 19년) 제물포 조약의 사후 처리로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 그들이 편승한 일본 기선 메이지마루(明治丸) 선상(船上)에서 고안하여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왔다.
[1] 국기 문제가 논의된 때는 이보다 앞서 강화도 조약 체결 당시 강화도회담에서이며, 또한 박영효 이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도 쓰였다.
게다가 이미 군주를 상징하는 어기로서 “태극팔괘도”가 규장각에 있었음이 밝혀졌다.[2]
국왕을 상징하는 어기가 아닌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조선책략》에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라는 글과 함께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을 제시해 놓은 데에서 비롯된다.
고종이 임금을 뜻하는 붉은 바탕에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백성을 뜻하는 흰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게 하여 군민일체를 나타내려하였으나[2] 일본 제국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은 “반홍반청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될 것” 이라 하여 이후, 1883년 3월 6일 (고종 20년 음력 1월 27일) ‘조선국기’가 국기로 제정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져 태극기의제작 게양, 취급의 지침이 되고 있다.
2007년 1월 대한민국국기법이 제정되어 국기의 게양 관리법이 나왔고 2007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편집] 태극기의 설명 태극기는 《주역》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 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팔괘도는 복희 선천 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 후천 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2]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원 안의 모양은 음양 양의를 나타나고 4괘는 팔괘(八卦)를 대표하는 사정괘(四正卦)를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그 하효(下爻)와 중효(中爻)로 태양(太陽)·소음(少陰)·소양(少陽)·태음(太陰)이라는 사상(四象)도 나타낸다.
<네 괘가 지닌 뜻> 구분 이름(卦名) 자연(卦象) 계절(季節) 방위(方位) 사덕(四德) 가정(家庭) 오행(五行)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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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乾) | 천(天, 하늘) | 춘(春, 봄) | 동(東) | 인(仁) | 부(父) | 금(金) | 정의 | 리(離) | 일(日, 해) | 추(秋, 가을) | 남(南) | 예(禮) | 중남[子] | 화(火) | 지혜 | 감(坎) | 월(月, 달) | 동(冬, 겨울) | 북(北) | 지(智) | 중녀[女] | 수(水) | 생명력 | 곤(坤) | 지(地, 땅) | 하(夏, 여름) | 서(西) | 의(義) | 모(母) | 토(土) | 풍요 |
사괘는 본래 팔괘 중에서 넷을 선택한 것인데, 팔괘는 중국에서 삼황으로 떠받들고 있는 태호 복희가 만든 것이다.
그는 동이족이라고 사마천의 《사기》에서 서술되고 있으며, 그가 팔괘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고 밝힌 것은 《주역》 계사전이 최초이다.
다만 조선에 복희 선천 팔괘가 아닌 그것을 고쳐서 만든 문왕 후천 팔괘를 따르는 까닭은 복희가 팔괘를 만든 까닭이 우주 생성 원리를 설명하려 함인 반면 문왕은 우주 생성 원리를 인간의 치세 원리에 반영(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이르는 〈자연조화의 체를 인사의 용에 적용〉한다는 사상)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 주장에서는 팔괘에서 “넷을 제하여” 만들었다고 하였으나, 근래에는 “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선천 팔괘와 후천 팔괘의 관계를 밝히어 팔괘 가운데 “넷을 선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2]
태극기 그리는 법
게양하는 날
국경일과 그밖의 지정하는 날에 게양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의 청사, 학교, 공항·호텔 등의 국제적인 교류 장소 등에는 연중 국기를 게양하도록 되어 있다.
국기를 게양하고 내리는 시간 국기는 24 시간 게양할 수 있으며, 야간 게양 시에는 적절한 조명을 해야 한다.
국기를 낮에만 게양하는 경우, 다음 시간에 따른다.
기간 게양 시각 강하시각 3월 - 10월 | 07:00 | 18:00 | 11월 - 다음해 2월 | 07:00 | 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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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태극기의 원형인 「고려국기」. 고려대대학원 도서관 에 소장돼있는 「통상약장유찬」이란 문헌에 실린 태극기 원형

조선왕조 말기 정치인이었던 박정양(1841~1904)이 서장하던 태극기-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

항일독립운동 태극기 이미지

광복군 이름이 새겨진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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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닳도 ..............................록하느님이보 ..................우하사우리나라만세무 ...........궁화삼천리화려강산대한 .........사람대한으로길이보전 ...하세남산위에저소나무철 ...갑을두른듯바람서리불 ......변함은우리기상 .........일세무궁화삼 ........천리화려강산대 ......한사람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가을하늘공활 ...........한데높고구름없이밝...........은 . ←우리땅이다 ...............달은우리가슴일편 .................심일세무궁화삼천 ................리화려강산대한사 ................람대한으로길이보전 ................하세이기상과이맘으로 ...............충성을다하여괴로우 .............나즐거우나나라사랑하 .............세무궁화삼천리화려 ...........강산대한사람대한으 .............로길이보전
...........하세
| | | | 국기에 대한 경례 | | | 제복을 입지 아니한 사람은 오른손을 펴서 왼편 가슴에 대고 국기를 향하여 주목한다.
| | | 제복을 입지 아니한 사람 중 모자를 쓴 사람은 오른손으로 모자를 벗어 왼편 가슴에 대고 국기를 향하여 주목하며, 모자를 벗기 곤란한 경우에는 이를 벗지 아니할 수 있다.
| | 군인·경찰관 등 제복을 입은 사람은 국기를 향하여 거수경례 한다. | | | | | | | 국기에 대한 맹세 | | | | | | | 각종 의식에서 행하는 국민의례 절차를 정식 절차로 할 경우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시경례곡 연주와 함께 위 맹세문을 낭송하여야 한다.
| | | 다만, 약식 절차로 할 경우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시 전주곡이 없는 애국가를 주악하고 맹세문은 낭송을 하지 아니한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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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참조사이트 : www.egov.go.kr (대한민국 전자정부) 

<태극기의 구성> 한 가운데의 태극도형과 4괘, 곧 건(乾), 곤(坤), 감(坎), 이(離)로 이루어진 태극기는 간결하면서도 대자연의 진리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태극기가 지닌 뜻> 1.창조 : | 우주의 근본인 태극이 음과 양 두 가지의 힘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듯이, 우리민족의 창조성을 나타내고 있다. | 2.발전 : | 우리민족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주적인 발전을 한다는 뜻이다. | 3.자유의정신 : | 태극의 이론은 만물이 자연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서로 마주보는 관계에 있는 것은 우리의 평등사상을 말해 주는 것이다. | 4.평등의 정신 : | 태극과 4괘가 전체적으로 음과 양이 균등할 뿐만 아니라, 서로 마주 보는 관계에 있는 것은 우리의 평등사상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 5.무궁한발전 : | 태극 도형의 청, 홍,의 음양 곡선은 끝없는 계속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가 무궁하게 발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 이렇듯 태극기의 도형이 담고 있는 뜻은 창조, 발전, 자유, 평등, 무궁의 뜻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극기의 바탕인 흰색은 깨끗하고 맑은 백의 민족의 모습을 상징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
태극기 다는법 태극기의 원형 심신민고(三神民考)(조자용저)에 실린 둑신기. 저자는 이 둑신기를 안곽의 "황제 전쟁 전설의 벽화"에서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치우천황을 모신 사당, 즉 서울 뚝섬의 둑신사에 그려진 것으로 이 둑신기야 말로 우리 태극기의 원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태극기 의미 제물포조약에 따라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朴泳孝)와 김만식(金晩植) 두 사람이 수신사로 인천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것은 1882년 9월 21일이었다.
당시 일본공사였던 하나부사(花房義質)도 동행했었는데 이 선상에서 국기의 필요성을 절감, 박영효에 의해 태극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일본측 기록에 보면 이미 그 6년 전인 강화조약 때에 국기의 필요성이 화제가 됐었고 하나부사가 자기 나름대로 청백홍(靑白紅)의 삼파(三巴)무늬의 국기 도안을 그려 사용할 것을 종용했다 한다.
선상에서의 박영효의 국기 도안에 하나부사가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말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노블 목사의 후손이 보관해온 태극기를 3년 전에 공개했었는데 그 보관함에 ‘공주 박영효 부인’이라 씌어 있어 태극기의 시작이 박영효라는 설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한데 박영효가 태극기를 처음 만들었다는 그 두 달 전인 1882년 7월에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미 해군성 항해국의 세계국기도감에 태극무늬와 사괘가 그려진 태극기가 실려 있는 사실이 발견·공개됨으로써 태극기는 박영효 이전에 국기 구실을 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박영효가 수신사로 떠나기 넉 달 전에 있었던 한· 미수호조약 조인 때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 조인식 준비과정에서 국기의 필요성이 논의되자 회담을 간섭하기 위해 온 청나라 특사 마건충(馬建忠)이, 당시 청나라 국기인 황룡기(黃龍旗) 도안을 동방색인 청룡기(靑龍旗)로 바꾸되 용 발톱을 네 개로 줄여 속국임을 나타내게 하려 했다.
이를 거부한 김홍집(金弘集)은 임금은 붉은 옷이요 관리는 푸른 옷이며 백성은 흰옷이라 하여 흰 바탕에 홍청의 태극무늬를 제시하자, 마건충은 태극을 붉은 용과 푸른 구름으로 절충하려 했지만 그리기 복잡하다는 이유로 태극에 팔괘를 둘러 정착한 것이다.
한·미수호조약 조인식 두 달 후에 발행된 미국 국기도감에 실렸다면 이 태극 도안의 국기가 조인식에서 국기 구실을 한 것이 되며, 국기로 공식적으로 팔도에 공포한 1883년 3월 6일 이전에 국제적으로는 행세했던 태극기다.
1876. | 1875년 운요호사건으로 비화된 병자수호조약체결후 국기 필요성인식 | 1882까지 | 중국은 마건충을 통해 중국 황룡기를 본받아 그리도록 압력 | 1882. 9. 초 | 수신가 박영효 일행이 일본을 떠나기 전 고종황제가 조선왕국을 표시할 수 있는 국기모형을 창안 | 1882. 9. 25 | 9. 20일 인천항을 떠난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메이지마루호에서 그린 태극기를 고오베 니시무라야 여관 옥상에 첫 게양 | 1882. 10. 2 | 일본 동경에서 발행한 시사신보(時事新報)에 수신사일행이 가져온 조선왕국의 '조선국기'를 보도 | 1883. 3. 6 | 고종황제 '조선국기'를 정식 국기로 선포 | 1884. 11. 18 | 최초로 태극기문양 우표 발행 | 1910 | 한일합방으로 해방되던 1945년까지 조선국기 사용 못하고 탄압을 받음 | 1942. 3. 1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기 이름을 처음으로 '태극기'로 표현함 | 1946. 5. 1 | 해방기념 태극기우표 발행 북한의 김일성도 8.15일 해방기념 태극기우표를 발행 | 1948. 7.12 | 제헌국회에서 태극기 국기 채택 통과 | 1949. 2 | 해방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따른 ;대한민국 국기시정시정위원회'구성. 5가지 시안을 만들어 검토 | 1949.10.15 | 대한민국 국기를 결정하고 '국기제작법'을 문교부고시 제2호 발표 | 1950. 1. 25 | 국기제작법 제정(문교부 고시 제3호) | 1950. 11.20 | 6.25전쟁중 국토통일 태극기도안의 우표 발행 | 1953.9.18 | 태극기를 더럽히거나 손상시킬 경우 엄벌에 처할 규정마련 | 1976. 2. 7 | 국기와 새마을기, 회사기 등 다른기를 함께 게양하는 요령 통일 -(의정 131-151) | 1976. 10. 4 | 전국적으로 국기게양 및 강하식 거행 시행 요령(국무총리훈령 제 136 호) - | 1979. 3. 9 | 국기를 단색으로 표시할 때 태극 상반부를 밝게, 하반부와 4괘는 어둡게 표시(문교부 새마을 1011-164) | 1979. 10. 17 | 국기게양식 및 강하식 시행요령 개정(국무총리훈령 제 151 호) - 국기 강하 시각 등 변경 | 1980. 10. 15 | 국기에 대한 경례시 "국기에 대한 맹세" 병행 실시 (국무총리지시 제 23 호) | 1982. 11. 26 | 올바른 규격의 국기게양(게양대용 국기는 2호기 이상) -국기의 게양 및 관리에 관한 지시(국무총리지시 제 30 호) | 1983. 11. 23 | - 국기와 국가원수에 대한 경의 표시방법 통일 - 국기와 국가원수에 대한 경의 표시방법(의정 131-1160) | 1984. 2. 21 |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대통령령 제 11361 호) - 국기제작법(문교부고시)과 국기게양 방법에 관한 건 (대통령고시)을 통합하여 단일규정 제정 | 1987. 4. 29 | 국기 강하시각 등을 골자로한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 개정(대통령령 제 12148 호) | 1989. 3. 10 |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 개정(대통령령 제 12642 호) - 국기의 실내 게양 방법 및 게양대 규격 등 일부 자율화 | 1996. 3. 12 | 국기강하식·각종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를 연주할 경우 국기에 대한 맹세문 낭송 생략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 개정(대통령령 제 12148 호) - | 1996. 12. 23 | 태극기사랑운동 실천 지침(국무총리훈령 제 341 호) - 국기 24시간 게양, 국기 문양 디자인 활용 등 국기규정 개정 | 1996. 12. 27 | 학교, 군부대를 제외하고 년중 24시간 게양. 태극기 문양을 각종 생활용품 등에 활용, 연중게양 대상 확대, 표준색도 지정 근거 마련, 깃대의 색 다양화 및 벽면 설치 근거 마련, 옥외 게양용 국기의 호수별 표준규격 확대 등 대폭 개정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 개정(대통령령 제 15182 호) - | 1997. 1. 31 | 옥외 게양용 국기천의 소재 및 염색가공기준 공고 (총무처 공고 제 1997-7 호) - 국기 제작용 천의 소재 및 염색·가공 등 품질기준 | 1997. 10. 10 | 국기 게양·관리 및 보급에 관한 지시(국무총리지시 제16호) - 공공건물 및 각종 경기장·공원, 가로, 옥내외 정부행사장의 국기게양대 설치 방법 및 대형 국기게양 등 | 1997. 10. 25 | 태극기의 표준색도 지정·고시 (총무처고시 제1997-61호) - 태극의 빨강·파랑색을 CIE 색좌표 및 Munsell 색표기 지정 | 1998. 12. 28 | 각종 회의나 체육행사 등에서 미승인국가의 국기 게양 사전 협의제도 폐지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 개정(대통령령 제15948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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