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한국판 새역모 사건’으로 불리는 교과서 포럼 파문 이후 여론에 뭇매를 맞은 뉴라이트 재단이 여전히 역사 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안병직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은 지난 6일 MBC ‘뉴스초점’에 출연해 “일제시대에 공공연한 토지수탈은 없었다”, “위안부가 강제동원 됐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없다”는 등의 충격적인 주장을 펼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교과서포럼’에서 5·16 군사쿠데타를 5·16 혁명으로 평가해 다수 여론의 비난 속에 휩싸이자 뉴라이트 진영 내부에서도 ‘역편향’이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뉴라이트 재단의 수장이 ‘대일 관계를 통한 역사관’의 확고한 신념을 펼치며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풀어놓자 한나라당은 물론 다수 보수 진영에서도 당황하고 있는 눈치다. 열린우리당은 안 이사장의 발언 이후 연일 성난 목소리를 내며 “‘역사논쟁’을 빙자해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를 옹호하려는 정치적인 움직임”이라며 “역사왜곡을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자유주의연대’측이 설립한 ‘뉴라이트 재단’의 이사장이며 ‘교과서 포럼’의 고문을 맡고 있는 안병직(70) 서울대 명예교수의 역사 왜곡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안 교수는 지난 8월 18일자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가 경제면에서 시장경제 시스템 도입과 사회자본의 정비와 사유재산의 제도화를 실현했다”며 "식민지 시대를 잘라버리고, 해방 후 한국의 근대화는 설명이 안 된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안 교수는 지난 6일 오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MBC ‘뉴스초점’에 출연해 자신의 확고한 역사관을 다시 한번 실시간으로 들려줬다.

 

위안부 강제동원 아니다
이 자리에서 안 교수는 먼저 종군위안부에 대해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동원 했냐, 안 했냐가 문제”라며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음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국내에도 소위 ‘사창굴’이라는 그게 전부 위안부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런 일이 왜 발생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우선이다. 무조건 강제에 의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면 강제만 없으면 그런 현상이 없어져야 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흥분하기 시작한 사회자가 “그럼 일제 강점기 당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딸을 자발적으로 위안부로 보냈다는 얘기로 받아들여도 되냐”는 질문에 안 교수는 “그것은 객관적, 역사적 사실”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그는 “위안부 영업자 중에서 조선인이 절반을 넘는다”고 주장하며 “조선인이 무슨 권력을 가지고 강제력을 동원했겠냐”고 반문, 자신의 주장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러나 안 교수는 “그러니까 일종의 보편적인 위안부 사태로서 일반성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엔 ‘군 위안부’니까 강제로 동원했을 가능성은 있다”는 한발 물러선 입장도 표시했다.
안 교수는 일제의 ‘토지수탈’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말해 공공연한 토지수탈은 없었다”고 못박았다. 그는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토지조사부’라든지 ‘분쟁지 자료’, ‘지적도’를 10년 간의 걸쳐서 대폭 검토한 결과 공공연한 토지수탈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안 교수는 “분쟁지 중에는 민유지에 대한 분쟁지는 극히 소수고 국유지에 대한 분쟁이 많았다”며 “조선 후기에 궁장토라는 것이 국유지로 일제시대에 편입이 됐는데 그것을 ‘약탈’이라고 하면 약탈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약탈이라기보다 조선후기에 왕실의 소유가 바로 국가의 소유인 것과 다름없다”고 내세웠다.
독도 영유권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안 교수는 “우리가 한일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되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당한 국가를 이끌고 가는 책임 있는 사람들의 자세지 과거에 하나가 뭐가 잘못됐고 뭐가 잘됐고 시시콜콜하게 따져 가지고 현실은 노무현 정권이 하는 식으로 거꾸로 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협력하면 국가가 잘 될 수 있는 방향이 얼마든지 있는데 독도 문제, 야스쿠니 문제 같은 해결될 전망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수년간 내내 싸움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의견을 펼쳤다. 

 

한나라 대선주자 지원 의도
한편 ‘교과서포럼’이 내년 3월 출간을 목표로 준비중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최종 편집본에는 5·16 군사쿠데타를 ‘5·16 혁명’ 또는 ‘5월 혁명’으로 기술해 한바탕 논란이 됐다. 지난달 30일 열린 교과서포럼의 6차 심포지엄에서 4·19 유족회 회원들이 “어떻게 5·16를 살리고 4·19을 죽일 수 있냐”며 단상을 점거해 포럼이 중단됐다.
여론이 ‘한국판 새역모 사건’으로 규정하며 비판의 수위가 거세지자 서둘러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진영은 ‘진일보’한 평가에서 ‘우편향의 역편향’이라며 오히려 비난여론에 가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안 교수는 ‘교과서포럼’의 역사왜곡 파문과 관련해서는 “그건 시안이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라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나 안 교수는 “‘운동은 비하하는 것이고, 혁명은 그걸 갖다 높이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전제 자체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해 최근 논란 부분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은 굳히지 않았다. 
현재 ‘교과서포럼’의 새 교과서에 대해 학계의 반응은 일단 ‘사관의 차이와 학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쿠데타 그 자체까지 미화화는 건 지나치다’는 해석이다.
이런 가운데 정가에서는 최근 뉴라이트 재단의 이같은 ‘역사왜곡’ 행보가 내년 대선에 출마할 박근혜 전 대표 등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을 지원하려는 숨은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이 지난 5일 열린 자유주의연대 창립 2주년 후원의 밤에 참석해 지원을 약속하고 후원을 얻어내는 모습이 이 같은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후원의 밤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를 포함, ‘역사 왜곡’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안병직 서울대 교수도 참석했다.
유은혜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7일 논평을 통해 “‘학문적 연구’라는 미명아래 정치적 목적으로, 총체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뉴라이트의 움직임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나라당은 낡은 이념논쟁과 색깔론의 연장인 뉴라이트의 역사왜곡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가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뉴라이트 재단의 여론을 무시한 급진적 보수주의는 오히려 한나라 대선 주자에겐 독으로 작용될 공산이 크다”며 “한나라 대선 주자들이 뉴라이트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내년 대선 변수”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