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영화를 보게 되는것은 우리 모두가 윌 터너이자 짐 호킨스이기 때문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참신한 해적 영화라고 하지만, 사실 해적 영화의 고전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주연의 관계도인데, 여기서 제목은 내가 저렇게 적었지만 왜 윌 터너가 매력이 없는지를 따져보겠다.
어떤 점이 대체 저런 괴짜스럽다 못해 충격을 준 나머지 역사를 새로 썼다는 영화가 '고전'적인가? 단순히 플라잉 더치맨, 크라켄 같은 오랜 전설의 고향 컨셉트가 아니다.
나는 캐리비안의 해적과 보물섬이 닮았다 말한다. 읭 님ㅋㅋㅋ헐ㅋㅋㅋ 라는 반응을 할 이가 나오겠지만, 확실하다.
롱 존 실버는 잭 스패로우이고 어린 짐 호킨스는 윌 터너이다. 짐에게 있어 실버는, 묘한 매력과 미스테리, 그리고 위험을 지닌 인물로서 마지막까지 소년에게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는 소년에게 해적의, 모험의 세계의 상징이고 짐을 그곳으로 끌어당긴 존재이다. 멘토로 삼고싶지만 너무나 위험한 존재다.
윌터너에게 있어 잭 스패로우는 실버와 같다. 그는 내내 잭에게 속고, 이용당하지만 전형적인 순진한 주인공에서 점점 '해적'다운 것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모델'이 된다. 진지하기 짝이없는 3편의 윌터너가 어딜봐서 개그스러운 잭이 모델이냐고? 그러나 잭은 우리가 보기에 그렇지만, 사실 윌의 입장과 영화상에서의 장치로서 존 실버의 존재감 만큼의 캐릭터인것이다.
해적은 악당이지만 매력을 지니고있다. 그리고 언제나 어린 주인공을 유혹하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의미로는 '멘토'이자 그 어린 주인공에게 있어 '환상'의 존재와 같은, 설사 그 소년이 영화(또는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그 상징의 진실을 알고 환상이 깨어져 해적의 전말과 그의 인간적인 한계를 알게되더라도, 결국 그의 성장과정과 무의식 속에서 '잭스패로우'와 '롱 존 실버'는 영원히 윌터너와 짐 호킨스에게 있어 보물섬과 캐리비안의 해적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가 '잭 스패로우'에 열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보물섬이란 작품은 '롱 존 실버'에게 기대어진다. 마치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고나면 잭 스패로우가 기억에 남듯이. 비록 돈을 훔쳐 절뚝거리며 달아나버리고, 조각배에 타고 흥얼거리며 망망대해를 떠나버려도 어째서인지 그 거대한 바다의 세계관은 그 소인배처럼 떠나버린 두사람의 그늘 아래에 있다. 해적 영화가 망하지 않으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답은 쉽다. '해적'이다. 그것은 배 탄 강도나, 격하게 '아(ㄹ)' 발음을 하는 도둑이 아니다.
그것은 카리스마다. 육지의 지위나 위엄과 상관없는, 우리의 깊숙한 욕망을 자극하는 '해적'이라 이름붙인 카리스마다.
다만 윌터너가 문제인것은, 너무 나이가 많다는거다. 이미 가치관이 확립되고, 잭 스패로우의 장난끼와 표면적인 우스꽝스러움에서 환상을 얻기에 의심이 너무 많다. 그는 정의롭다. 해적이 판을 치는 영화속에서 그가 신선할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심지어 3편에서 '해적다워진' 그마저, '싸웁시다, 도망치기 위해'를 외치는 해적들의 정신 속에 녹아들지 못한다. 짐 호킨스의 어린 소년이 처음 느끼는 무섭고도 흥분되는 '환상'의 입장에서 표현되는 감정과, 윌 터너가 느끼는 올곧은 감정의 차이는 관객에게 어느쪽이 더 즐거울지 안봐도 뻔한것이다.
어쨌거나 캐리비안의 해적은 단순히 스스로 참신한것 뿐만 아니라 '해적'이 보통 사람에게 주는 '매력'의 '코드'가 어떤것인지 확실하게 잡아냈다. 근년간 괜찮은 해적영화가 없었지만, 그건 해적영화가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혼자 4차원스러워서가 아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진정으로 '해적다워서' 그런것이다.
잭 스패로우는 해적이다. 설사 기존의 해적과 너무 다르더라도, 해적이란 것의 기존 테마의 중요성은 그대로 궤뚫고있다. 어둡고 위험한 매력의 존 실버와 다르면서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윌 터너 대신 짐 호킨스 같은 어린 소년이 들어갔다면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해적이 판을 치는 세계관에선 '올곧은' 어른이 되어버린 캐릭터는 제대로 연기하면 매력적이 될 수도 있다. 허나 적어도 '해적끼'가 언뜻언뜻 보이는 연기를 올랜도 블룸이 해줬다면 좋았을것이다. 영화 내내 주위 조연들이 '너는 해적 재능이 있쪄 니네 애비를 닮아서' '잭이 애를 다 버려놧네 너 해적될듯'이라고 하지만, 관객입장에선 전혀 안그래보이는게 문제다. 윌 터너 혼자 해적이 아닌게 문제다. 한마디로 올랜도 블룸의 연기는 '감정이입'이 힘들어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해적끼'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잔뼈 굵은 해적 존 실버와 소년 짐 호킨스. 잭 스패로우와 윌 터너로 이 구도는 이어진다.)
어쨌거나, 해적다운 영화에게서 고전의 재연을 느끼자니 참 반갑다. 방금에서야 깨달은 사실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