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맞서 거센 저항의 불길이 일었던 3.1절 91주년을 맞은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 강제 병합된 ‘경술국치’ 100주년이다. 우리의 아픔을 생생히 증언할 수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하나둘 눈을 감고 있지만, 위안부의 역사와 삶을 기록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6년째 표류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전북 익산에 살고 있던 일본군 위안부 이점례(89) 할머니가 노환과 뇌출혈로 인해 눈을 감았다. 15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가 싱가포르 등을 거치며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죄를 듣지 못한 채 끝내 운명을 달리했다.
지난 1월 김순악(82) 할머니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뜬 데 이어 이 할머니마저 숨지면서 이제 살아남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는 86명으로 줄었다.
지난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증언한 이래 최고 234명까지 확인됐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수가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눈에 띄게 감소한 것.
이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대부분 80세 이상의 고령인 데다 각종 후유증과 병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와 생존자들의 삶을 기록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6년째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하고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역사를 가르치기 위한 공간으로, 서울시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 안 매점부지에 지하1층ㆍ지상3층의 연면적 1,233㎡ 규모로 세워질 예정이다.
지난 2004년 박물관을 세우기 위한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돼 문화재 현상변경 심의와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난해 3월 착공식까지 마쳤지만, 일부 독립유공단체의 반발로 실제 공사는 미뤄지고 있다.
문제는 독립공원 안에 있는 위패 봉안소. 광복회 산하 단체인 ‘순국선열유족회’는 “위패 봉안소가 모셔진 독립공원에 성격이 다른 박물관이 들어서면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전쟁과여성인권센터 김동희 사무국장은 “현재 부지에 있는 매점을 없애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데 멸실허가를 내달라고 요청해도 서울시는 유족들의 반발 때문에 ‘조금만 참아달라’며 계속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에 맞서 독립을 향한 거센 저항의 불길이 일었던 3.1절 91주년을 맞은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 강제 병합된 ‘경술국치’ 100주년이다.
아픈 역사를 누구보다 생생히 증언할 수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박물관 건립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김동희 국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피해 여성의 아픔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에게 민족의 아픔을 알리고 역사의 교훈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올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본군 위안부의 명예와 인권을 위해 박물관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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