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에 사는 박아무개(66·여)씨는 올해 2월 말 동네 슈퍼마켓 직원 이아무개(47)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술에 취한 이씨를 꿀물이나 마시고 가라며 집안에 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박씨는 “그저 잊고 싶다”며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사회복지사 이아무개(32)씨는 “계속 상담을 받으러 가자고 해도 거절하신다”며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폭행을 당하는 60대 이상 여성 노인들이 늘고 있지만, 정부나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를 보면, 61살 이상 여성의 강간 피해 건수는 2003년 96건(1.4%)에서 2006년 217건(1.8%)으로 4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성범죄 신고에 대한 인식과 환경 등이 개선된 까닭도 있지만,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도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그래프). 실제 노인 성폭력 피해 건수는 성범죄 신고율이 낮은 점 등을 고려하면 조사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설마 노인한테 성폭행을 …’ 하는 식의 편견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성 노인은 아동과 장애여성처럼 자기 보호 능력이 낮아 언제라도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은 전 연령의 모든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노인이나 장애여성 등 취약 계층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 노인들은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수치심과 자책감이 강하고, 사건에 따른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다.
|
| » 2003~2006년 노인 및 어린이 성폭행 피해 건수 |
|
|
|
|
지난 4월 성폭행을 당한 최아무개(64)씨는 “주변 사람들이 이 일을 아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며 “20년 넘게 산 동네에서 손가락질 당할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했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이 주로 주변에 사는 가까운 사람인 것도 적극적 대처를 어렵게 한다. 지난해 가을 “평소 동생처럼 아끼던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한 김아무개(64·여)씨는 “늘 얼굴을 맞대야 하는데, ‘내가 할머니를 상대하겠느냐’고 큰소리치는 가해자를 보며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망설였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적절한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노인 성폭력 피해에 대한 통계 자료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예방 대책 마련이나 피해자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다. 심지어 성폭력 상담소의 존재조차 모르는 여성 노인들이 적지 않다. 손애리 여성부 대변인은 “성폭력 피해여성 지원프로그램이 있지만, 특별히 연령을 특화해서 운영하진 않는다”며 “(여성 노인 성폭행에 대해) 아직 특별히 준비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