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독도에 처음으로 태극기 게양
어릴 때부터 바다에서 자란 우리들은 항해중이나 현지에 도착한 후에도 모두 민감하게 행동 하였다.다만 출발하던 날은 혹시 독도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함정과 충돌이나 없을까 하고 염려도 했으나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는 것이 퍽 다행한 일로 여겨졌다.
보급선‘삼사호’선원들은 아침 식사를 급히 하고 즉시 울릉도에 되돌아가 제2진과 남은 보급품을 수송토록 했다.
독도의 서도 한 모퉁이에 비교적 안전한 곳을 택해 야전용 대형 텐트를 설치하고 부관인 황영문과 대원 이상국(李相國)은 나와 함께 독도 지형 순찰을 하기 위해 보트를 타고 섬을 일주하고 나머지 대원들로 하여금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국기게양대를 설치토록 했다.
아득한 그 옛날부터 사람의 발이 그리 자주 닿지 않은 독도의 4월 봄날씨는 바람 한 점 없고 바다는 유난히도 잔잔하였다. 미역, 소라 등 주변을 뒤덮은 각종 바닷말과 갖가지 크고 작은 패류(貝類)들은 여기저기 춤추며 뒹굴고 있고, 문어들은 그들의 보호색과 붉은 색을 번갈아 나타내며 제트 분사식으로 다리를 쭉쭉 뻗고 이곳 저곳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이 신비경(神秘境)은 독도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으로 용궁(龍宮)으로 향하는 수궁 문턱이렸다. 그 뿐이겠는가. 갈매기가 대회나 개최 하듯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모였는지, 동해의 갈매기가 다 모인 것이나 아닌지 할 정도였다. 하늘에서는 계속 똥을 머리, 어깨 할 것 없이 내리 퍼붓고 그들이 지저귀는 울음소리는 교향악단의 연주를 방불케 했다.
동도에 당도하니 울릉도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초가 무성하고 예쁘게 핀 꽃들은 마냥 탐스럽기만 했다. 풀속에 아무렇게나 쏟아 놓은 수많은 알은 모두 해병 작업복 무늬처럼 보호색으로 단장되었고, 그 큼직하고 묵직한 알은 갈매기의 몸집에 비해 크기도 하다고 느껴졌다. 이상국 대원은 삽시간에 양동이 하나로 가득 알을 담았다. 하늘에 갈매기, 물속의 신비에 낮잠 자는 우람한 바다사자의 콧소리가 간간히 들려와 독도의 정취를 더해 주었고,TV에 방영되는‘동물의 왕국’을 실감케 했다. 진정 자연 동식물의 낙원이었다.
필자가 어릴 때는 옆집에서 밤이면 ‘훔치, 훔치’하며 천장쪽으로 앉은 자세로 뛰는‘훔치기교’가 있었다. 거기에서 한 시간 쯤 뛰고 나면 잠시 쉬는 동안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곡을 달아 노래를 부르셨는데 그 가운데 이러한 곡절이 있었다.“간산도로 찾아가세, 간산도로 찾아가서 불로장생하리다.” 그 때는 별 뜻 없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간산도가 바로 독도를 뜻하는 것인 듯하다.
옛날에는 독도를 목적으로 고기잡이를 나간 적이 없었고 풍랑으로 우연히 독도 근처에 밀려간 고깃배에서 여러 날 굶주린 선원들이 유토피아와도 같은 독도의 신비에 도취되어 황홀한 나머지 바다사자가 누워 자고 있는 것을 보자, 몸 전체가 농색이고 몸집이 크므로 사람으로 착각했던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닷가에 무슨 도통한 선비가 있다는 말이겠는가? 필시 그 후 날씨가 고요해져 구사일생으로 귀향하여 그 때 보고 간 독도의 이모저모를 마을 사람들에게 얘기 하였던 것이라 짐작된다. 필자와 비슷한 ‘반풍수’가 초당 방에서 들은 풍월과 뒤적거린 고서를 기억해서 한다는 말이 우산도(于山島)의 우(于)자를‘간(干)으로 잘못 읽어 그 할머니의 노래처럼 우산도가 간산도로 된 것이리라.
어쨌든 독도는 신비의 섬이요 앞으로 ‘만인의 유토피아’로 승화 시킬 수 있는 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 일러주신 동도의 정상에 당도하니 1904년과 1905년에 러일전쟁 때 일본 해군 망루가 설치 된 이곳에서 숯 몇 가마니와 그 외에도 전쟁 잔해들을 발견하니 일본이란 나라는 기회만 있으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고약한 민족 집단이구나 생각되어 얼굴이 상기되고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
서도 지휘본부로 돌아와서 대원들을 한데모아 사상처음 태극기를 독도에 게양, 태극기가 하늘에 휘날리는 가운데 우렁찬 애국가를 봉창하였다. 아마 그 감회는 평생을 두고 되새길 것이다. 지난 날 내 조국땅에 일장기를 달고‘기미가요’란 일본놈의 국가를 우리 민족이 불러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굴욕의 시절......국가 없는 민족의 설움이 그 얼마나 컸을까! 이제 다시는 동족상쟁의 비극도 없어야겠고 국가와 민족이 분리되지 않은 이 강산에서 길이 살아가겠다고 국토 최동단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태극기에 맹세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