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에릭 봉파르 대회에서 김연아는 새로운 시즌의 프로그램을 공개한다. 그동안 언론과 일반인들의 출입제한을 강화하며 철저한 보완 속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연습해 왔다.

최근 탑선수들이 대부분 프로그램을 공개한 가운데 김연아는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들 중 한명이다. 올림픽이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시즌이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서 많은 견제를 받고 있는 김연아의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최근 여성 선수들의 행보를 보면 김연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공개한 선수들은 대부분 강렬하고 파워풀한 음악을 선곡하여 심판들에게 확실한 이미지를 남기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선곡으로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떨어지게 되어 오히려 심판이나 관중들에게 뻔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연아의 선곡은 더욱 획기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김연아는 타 선수들과 다른 노선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김연아의 경쟁상대라고 불리는 선수들이 불안한 출발을 보이며 만만치 않은 시즌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아사다 마오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프리프로그램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단순히 기술적인 실수가 문제가 아닌 프로그램 자체에서 매력을 느낄 수 없었고 현지에서의 반응도 비관적이다.

안도 미키나 나카노 유카리의 프로그램 역시 평소에 익숙한 음악을 사용하였지만 강한 임팩트를 느낄 수 없다. 올 시즌 복귀하는 사샤코헨도 어느 정도 활약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나마 캐나다의 조애니 로쉐트가 지난 시즌 보다 발전한 프로그램을 공개함으로써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신체점제가 도입된 이후 두 번째로 열리는 올림픽으로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신체점제의 장점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유럽과 북미권에 뚜렷한 스타선수가 없는 현재 일본 선수들의 활약과 김연아가 한국인 최초로 메달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ISU에서도 새로운 회장 선거가 얼마 안남은 현재 올림픽에서의 성과가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피겨계의 중심에 김연아가 있다

피겨는 정치적인 스포츠이고 올림픽은 세계선수권과는 차원이 다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피겨계에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소수의 의견일 뿐이고 여전히 고지식하며 자본에 의해 흔들리는 스포츠가 피겨스케이팅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ISU는 개혁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신체점제 도입으로 김연아가 혜택을 본 점도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김연아의 실력이 출중하였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만약 김연아가 모든 기술을 정확하고 깨끗하게 해내지 못했더라면 괜찮은 실력을 갖고 있는 선수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체점제에 완벽하게 적응한 김연아의 성장은 하락세를 걷고 있는 피겨스케이팅을 다시 부흥하게 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될 수 있고 피겨스케이팅 개혁의 발판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김연아는 피겨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단지 뛰어난 선수가 아닌 세계피겨계의 흐름을 바꾸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스스로 무덤에 빠져버린 미국 피겨와 자본의 힘을 과도하게 사용한 일본 피겨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할지 결단을 내릴 시기가 다가왔다. 그들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로 김연아가 최상의 선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김연아의 영향력으로 인해 피겨스케이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며 지원 또한 미미하다.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어떠한 성과를 거둔다면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김연아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미 스스로의 실력에 어느 정도 믿음감이 생긴 김연아 이기 때문에 부담감만 떨쳐낸다면 자신이 바라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 메달이 아니어도 이미 김연아는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제 겨우 20살이 된 소녀가 이룩한 것들을 보면 믿기 놀라울 정도이다.

김연아가 세계피겨 여왕으로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이 여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 사진출처 | SBS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