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일자 : 2001년 04월 25일

형형색색 ‘똥’얘기 동화시장 수놓아

오승훈기자 oshun@munhwa.co.kr

한국 출판시장에서 최근 3∼4년간 가장 큰 신장세를 보인 분야가 유아·어린이도서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듯 하다. 교보문고㈜만 해도 98년 전체매출중 3%에 불과했던 어린이책 부문은 99년 8.4%, 2000년 8.6%로 늘어나 200%에 가까운 신장세를 보였다.일각에선 “시장과열이 아니냐”며 우려할 정도. 하지만 부풀어난 외형에 걸맞게 내실있는 성장이었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외국서적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국내 창작 여건은 빈약했다. 최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국제어린이 도서전에도 국내 출판사 관계자 300여명이 참가, 주요 수상작을 두고 ‘입도선매’경쟁을 벌였다는 후문은 국내 어린이 책 시장의 허약성과 불균형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 작가들의 발굴과 육성보다는 손쉽게 외서번역에 의존하는 출판계의 관성이 어린이도서시장의 자생력을 죽이고, 무국적의 저급한 도서를 양산하는 풍토를 만들고 있음도 따져봐야 한다. 이에 ‘북리뷰’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국내 창작 어린이책의 성장 잠재성과 한계를 되짚어 보는 한편 연령별로 부모들이 골라줄 만한 어린이 책을 엄선했다. 선정과정에선 국내 창작물을 우선 고려했으며, 책의 완성도와 대중성에 동일한 비중을 뒀다. 주요 어린이책 출판사, 대형서점, 평론가들의 의견도 참고했다. ‘똥 열풍’이다. 이는 어린이 출판시장 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상이면서 그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각종 어린이 책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에 올랐던 ‘똥 동화책’을 나열하면 ‘아기코끼리의 똥’(가도노 에이코 지음·지경사·1991), ‘누가 내머리에 똥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지음·사계절·1993), ‘강아지 똥’(권정생 지음·길벗어린이·1996), ‘똥 뿌직’(피토 지음·웅진출판·1998), ‘주먹만한 내똥’(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보리·1999), ‘똥이 어디로 갔을까’(이상권 지음·창작과 비평·2000), ‘똥벼락’(김회경 지음·사계절·2001) 등 족히 10여권에 이른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각 출판사가 ‘똥 시리즈’를 낸 셈이다. 이 열풍을 촉발시킨 ‘누가 내머리에…’는 현재까지 13만여부가 팔렸다.잇따라 다양한 ‘똥창작동화’들이 선보였고, 지난해 5월 출간된 ‘똥이 어디로…’(이상권 지음·유진희 그림)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이 책의 판매는 출간 1년이 되는 다음달까지 6만부를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학습서·실용서를 제외한 순수 동화책으로는 전례없는 판매속도다. 이런 ‘똥열풍’에는 어린이 책시장의 변화가 담겨있다. 우선 어린이 책들이 다뤘던 소재의 ‘금기’를 깨면서 다양성을 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똥은 기초적인 생리현상이면서, 비하의 대상인 양면성을 갖는다. 이런 대상을 과감히 어린이책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교훈성을 강조하고 학습보조 교양서로 인식하던데서 벗어나 아이들의 ‘눈 높이’에 맞춘 관심과 재미가 어린이 책 기획의 주요덕목으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는 것. 만3∼5세의 유아를 대상으로 한 ‘누가 내머리에…’는 두더지가 자기 머리에 떨어진 똥의 주인의 찾아 비둘기, 말 등을 차례로 탐문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글과 그림은 각 동물마다 똥의 모양과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네가 내 머리에 똥쌌지?” “아냐, 내 똥은 이렇게 생겼는걸”이라는 반복적인 이야기 전개구조와 ‘철썩’ ‘쿠당탕’ ‘타타타’ ‘오동당동당’ ‘뿌지직’ ‘쫘르륵’등 다양한 의성어 표현은 읽거나, 읽어주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인. 아이들에게 배변은 냄새가 역겹고 숨기고픈 과정이면서, 쾌락의 과정이라는 점을 책을 놓치지 않고 있다. 두더지가 똥의 주인이 개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의 머리에 곶감 씨만한 똥을 누면서 통쾌하게 복수하는 익살스런 결말도 작은 것이 큰 것에 대항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선악의 이분구도나 갈등의 전개에만 염두를 뒀던 이전 동화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을 보여줬다. 초등학교 저학년용인 ‘똥이 어디로…’는 똥에 얽힌 옛 이야기를 전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똥이 ‘쓸모 있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생태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할머니의 병을 낫게 한 똥술, 뒷간의 똥항아리에 빠져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게 된 아저씨, 야수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려고 똥을 먹는 개의 야생적 습성까지 똥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활용했다. 이렇듯 ‘똥 열풍’은 소재의 다양성을 표방하고 주제의 엄숙성을 벗어버린 어린이책의 경향과 창작동화의 진일보한 풍토를 만드는데 하나의 키워드로 작용한 것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에 눈을 맞춘 기획, 그들의 감성을 드러내려는 글쓰기, 단순한 재미도 책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인식변화를 ‘똥열풍’은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런 붐은 상업성의 부작용을 낳는 원인도 제공했다. 한편에선 짜임새 있는 창작동화의 구조보다는 ‘튀는 이야기거리’를 찾으려는 소재주의가 만연해진 것이다. 특히 똥을 소재로 한 장난감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을 단순히 트렌드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현상이 된 ‘엽기성 문화’와 결부시킨 어른들의 상혼을 드러낸 것으로 볼 것인지는 곰곰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리뷰=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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