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가운데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를 잘 지적했다' '일본은 우리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데 우리는 까막눈이었다'는 식의 찬사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 글은 순식간에 온라인을 타고 복제되며 "미네르바가 참고했다"는 식으로 포장돼 다양한 화제를 낳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글은 신뢰할만한 글일까?

미츠하시 다카아키가 2007년 7월에 펴낸 _실은 위험해 한국경제_ 한국 경제의 부정적인 측면 만을 수집해 놓은 책이다

● 일본 극우파와 극우잡지의 만남

이 평론가가 기고한 '보이스'지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파 월간지다.

마쓰시타(松竹)정경숙과 자매 관계인 PHP연구소가 1980년 창간한 잡지로 매월 3만부를 발행한다. 외교 안보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보수 우익 성향을 소개하는 매체로 유명한데, 지난해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는 "원자바오를 야스쿠니에 데려가자"는 제목으로 표지를 도배했을 정도였다.

중국에 대해 이 정도이니 한국과 북한에 대한 입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채 "일본 잡지에 실린 글이 한국 원화의 폭락을 예고했다"는 자체만으로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글이 전형적인 극우 논리에 입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들을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 없이 집중적으로 나열(일본의존, 재정적자, 고임금, 경쟁력 저하, 외화낭비 등)했으며 그 원인으로 '민족성'이나 '국민성'을 언급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글이 제시하는 해법이 현실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카아키 씨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일본 경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도 (분수에 맞지 않게) 고임금을 추구한데서 찾고 있다.

그는 해결책으로 "생활수준을 보다 내려 궁핍한 삶으로 되돌아가라"면서 "수술제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키고 동시에 외화낭비의 최대 원인인 해외여행과 해외유학을 제한하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킨 다카아키의 한국경제 비판. 일본의 극우 매체인 보이스지 최신호에 실린 내용이다

● 황당한 저작물로 경제평론가 대열에?

다카아키 씨가 한국 누리꾼들로부터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가 지난 해 7월 '실은 위험해! 한국경제'라는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붕괴직전-머지않아 IMF같은 통화위기가 다시 온다'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이 책은 2개월 만에 3쇄를 인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일본의 몇몇 방송사에서 저자를 초청해 아시아경제 분석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한국 누리꾼들은 그가 꽤 신뢰할만한 경제분석가이며 실제 한국에 경제 위기가 왔으므로 결과적으로 그의 예측이 들어맞은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나면 정반대다. 그가 한국에서 발간된 각종 통계지표와 언론자료를 토대로 써내려갔다는 이 책은 '경제분석서'라기보다 한국 경제의 그늘만을 모아놓은 스크랩북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진단사라는 타이틀을 지닌 미츠하시 다카아키. 경제학자라고 볼 수 없는 이력을 지녔다

그는 한국을 비난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 중 '탈남자(脫南者)'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에 탈북자가 1만 명 정도 되지만 남한을 떠나는 탈남자(해외이민자+조기유학자)는 매년 8만 명이 넘는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바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그는 외국계 자본에 의한 지배 확산, 전교조 교육의 경제적 피해까지 진단했다. 심지어 "좌파정권 10년 동안 북한에 퍼다 준 액수가 무려 50~60조에 달한다"면서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국민들은 그들의 경제가 침몰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등 한국 극우파의 주장을 그대로 차용한다. 말미에 이르러서는 "좌파정권이 한국에서 5년 더 유지되면 한국 경제는 파탄에 이를 것이다"이라는 결론을 내세웠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실은 위험해! 중국 경제'라는 중국 경제 폄하서적까지 출간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 또한 중국경제의 그늘에 해당하는 사례만 수집한 책으로 결국 '일본 경제가 최고'라는 주장으로 모아진다.

다카아키 씨는 도쿄도립대학(구 수도대학)을 졸업한 뒤 IT업계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고 2005년에 '중소기업진단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했다지만 경제에 관련한 학위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대책없는 비관론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 경제 회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성론도 함께 제기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미네르바가 참고했다고?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누리꾼들이 일본 극우파의 한국경제 진단을 미네르바의 비관론과 비슷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한번 시작된 비관적인 관점이 일본 우익의 글에까지 관심을 갖도록 한 셈이다.

이에 대해 경제에 밝은 일부 누리꾼들은 "미네르바의 분석은 한국 경제의 위기 타개 방안이 문제가 있다는 애정 있는 비판이지만 일본 극우파들은 한국 경제가 일본에 종속됐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는 식의 대책 없는 염세론에 불과하다"고 미네르바와의 연관성을 차단하고 나섰다.

한편 미국 백악관 수석경제 보좌관 출신인 손성원(64) 캘리포니아 주립대 석좌교수는 26일 굿모닝신한증권 주최 포럼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현 경제상황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쁘지 않다고 본다"며 낙관론을 펼쳐 주목을 끌었다.

손 교수는 "미국 내 실업률 상승과 잇단 은행들의 부도가 대공황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대공황 시기 미국의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고, 은행의 40%가 문을 닫았다"면서 대공황을 논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외 대다수 전문가들이 "지금은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라는 데 공감을 표하고 있다. 낙관적이지 않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대책 없는 자기 비하는 위기를 타개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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