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사람들>

 

우리의 정신이 살아있는

도검 제작 장인

홍석현 씨

 

 

사진 위쪽/홍석현 씨가 만든 한국도.대도와 중도가 세트로 구성된다.

 

사진 오른쪽/그는 공예부문의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한 만능 박사다. 칼날과 칼자루 사이의 장식에 문양을 만들어 넣고 있다.

 

 

홍석현 씨는 칼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칼은 생활용으로 쓰이거나 일반인들이 다룰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칼은 아니다. 그가 만드는 칼은 ‘진짜 칼’이다. 갑옷입고 말달리며 휘둘렀던 진검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삼십이 조금 넘었을 때부터였다. 원래 그가 하던 일은 나전칠기였는데, 열네살부터 시작하여 나이 삼십에 이르기까지 나전칠기를 계속해 왔다. 그러던 그가 그동안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 도검제작으로 방향을 돌린 이유는 뭘까. 그는 ‘홀렸다’는 말로 그 일과 자신과의 사이를 숙명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가 그 칼을 보기 전까지는 그저 장래가 촉망되는 부지런한 나전칠기 장인이었고, 오로지 나전칠기 밖에는 다른 일에는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금속공예의 대가였던 유적선 선생이 만든 사인검을 보게 된다.

 

그의 인생을 바꾼 사인검과의 만남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 칼에 대한 온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우리 칼을 제대로 만들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유적선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칼에는 평생 금속공예의 길을 걸은 노장인의 열정이 묻어났을 것이다. 어쨌든 그 칼을 보는 순간 홍석현 씨는 자신의 길을 바꿔 버렸다. 20여년을 갈고 닦은 나전칠기의 길에서 갑자기 도검장인으로 변신하고 만 것이다.

“그 칼을 보니 나도 그런 칼을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장인의 욕심같은 것인데, 칼을 잘 살펴보니 그 안에 벼라별 예술이 다 들어가 있어요. 종합예술의 경지가 보이더군요.”그도 그럴 것이 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칼이지만 전통공예의 거의 모든 부분이 망라된 것이 도검제작이다. 우선 칼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쇠는 전통 단조와 열처리 기법이 필요한 부분이고, 칼의 금속부분을 마무리하는데는 금속공예가 빠질 수 없다. 또 칼집 부분의 나무는 목공예로, 칼집의 표피는 옻칠기술이나 나전칠기 기술이, 칼의 손잡이 부분은 역시 목공예와 매듭 기술, 그리고 칼의 각 부위마다 필요한 장식들은 모두 금속이나 가죽공예 등 이만저만한 기술같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칼은 한창 일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젊은 장인 홍석현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한국 최고의 칼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자료를 모으고 전통 도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배워 나갔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도검기술은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도검 장인들이 거의 일본으로 끌려가 버렸기 때문에 문서로 남아있는 자료는 아예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건 박물관에 남아있는 옛 칼을 보고 재현하는 것과 나이 많은 도검장인들에게 귀동냥한 내용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료들이 그의 칼에 대한 지적욕구를 만족시켜 줄리는 만무했다. 알면 알수록 답답해지는 그런 마음, 그는 답답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뭘 알아야 하지요. 자료라고는 한 장도 남은 게 없고, 그저 박물관 가서 칼 모양만 보고 오는데 겉만 베낀다고 속까지 같아지지는 않잖아요. 괴롭고 우울한 날들이 많았어요.”그래도 그 기간중에 그는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전통 도검제작법을 익혀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고 복원한 도검들로 각종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순신장군이 전투에 나가기전 제사를 올렸다는 197.5센티미터자리 대도를 그가 복원하기도 했다.

 

사진 설명/열처리를 위해 칼날을 달구고 있다. 달궈진 날은 두드려 단조한 다음 물이나 기름에 담궈 열처리를 한다. 이작업을 계속 반복한다.

 

사진 설명/전통적인 방법으로 칼날을 단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 이렇게 만들면 칼 한자루 만들기가 큰 일이 되고 결국 생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자신이 만든 사인검의 날을 살펴보고 있다.

 

 

 

 

먹고 사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의 사이

그동안 그가 만든 칼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수많은 애호가들의 애장품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욕구는 아직 충족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술'하느라 생활은 밥굶기 딱 좋은 형편이었다. 워낙에 수요도 없는데다 작품이라고 만들어 놓으면 제 값을 못받기 일쑤였다. 그러다 검도 동호인이 늘어나면서 도검의 수요가 늘자 하나 둘 도검제작회사가 생기게 되었고, 그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도검제작회사들을 하나 둘 거칠 수밖에 없었다.

5공 시절부터 대통령이 장성진급자들에게 주던 삼정도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올해도 삼정도는 그가 만들어 납품하게 되었다. ‘예술'만 해가지고는 먹고 살길이 막연했기 때문에 그도 결국은 도검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현재 한국전통도검이라는 회사의 대표다. 여기서는 검도인들의 진검 수련을 위한 스포츠용 도검을 만들고 있다. 또한 삼정도와 그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주문 도검을 제작하고 있다.

“이런 칼을 만들다 보면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그러나 어쩝니까. 먹고 살아야 예술도 있는 거지. 그래서 지금은 먹고 살길부터 만들어 놓고 제대로 된 칼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전통도검은 구로동의 공단에 자리잡고 있다. 스포츠용 도검을 만들기는 이 곳이 일하기 좋은 까닭이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기반만 잡히면 지방 변두리로 이전할 계힉이다. 그 이유는 두가지다. 본격적인 도검제작회사로 키워 나가기 위한 것과 전통 도검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현해내기 위한 것이다.

원래 우리의 전통 도검제작기술은 세계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일본인들이 도자기와 함께 도검기술자들을 무차별로 잡아간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 도검제작 방법은 완전히 맥이 끊어진 상태이다.

“일본에는 우리가 썼던 정통 기술이 그대로 전수되어 지금도 좋은 칼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가끔 한일교류 검도대회에 나가보면 베기시범에서는 우리 칼이 훨씬 더 잘 베어져요. 성능은 우수하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우리 칼을 칼로 쳐주지도 않아요."

전통과 원형을 찾아 나서는 길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도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칼날이다. 그리고 그 칼날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열처리와 단조(두드려서 강도를 높이고 성형하는 작업)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본칼은 바로 이 기술을 우리에게서 훔쳐가 전승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기술을 잃어버리고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본칼이 전통적인 수작업에 의해 만들어지고 한번 만들어진 칼은 족보까지 얻어 보물로 받들어지는 반면, 우리 칼은 누구나 아무렇게나 사서 다룰 수 있는 스포츠용 운동기구 취급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그가 원통해 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그는 빠른 시간안에 일본의 도검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장인의 후예임에 틀림없을 일본 최고의 도검장인에게 이미 부탁을 넣은 상태다. 그도 홍석현 씨의 배움을 허락했다니 곧 우리 칼의 원형을 찾아가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워낙 많은 칼들이 아무렇게나 깔려버렸고 칼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역시 그 정도밖에는 되지 않고 있다. 옛날에는 칼에다 제사를 지냈을 정도로 칼을 우러렀다. 칼은 그 칼을 소유한 사람의 몸을 지켜주는 동시에 정신을 곧고 바르게 수련시켜주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칼을 매일 손질하면서 그 칼의 기운을 받고 마음을 가다듬곤 한 것이다. 그는 그런 칼을 만들고 싶다. 정기가 살아있는 칼, 칼을 보며 마음을 곧추세울 수 있는 그런 칼. 그렇게 서슬퍼렇게 칼날을 벼르고 자신을 갈아 내고 있다. 언젠가 자신의 칼로 세상의 썩은 정신들을 ‘일도양단'내고 싶은 것이다.

글·사진/이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