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선의 역사】「이승만 리인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 전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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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1707654|작성자 ochimusha|작성시간 2008-07-24 10:08:18 |

*이것은 이하의 관련 스레입니다.「타케시마」는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조선 어민의 원한의 상징?」
일(http://bbs.enjoykorea.jp/tbbs/read.php?board_id=thistory&nid=1960806)
한국(http://bbs.enjoyjapan.naver.com/tbbs/read.php?board_id=thistory&nid=1960806)【타케시마 지도 요강】「한국의 고언, 긁어 부스럼에」?일(http://bbs.enjoykorea.jp/tbbs/read.php?board_id=thistory&nid=1960127) 한국(http://bbs.enjoyjapan.naver.com/tbbs/read.php?board_id=thistory&nid=1960127)【이익선의 역사】「한국 어업은 일제의 산물」?일(http://bbs.enjoykorea.jp/tbbs/read.php?board_id=thistory&nid=1960510) 한국(http://bbs.enjoyjapan.naver.com/tbbs/read.php?board_id=thistory&nid=1960510) 【Wikipedia】이승만 리인이란?
- 1952년(쇼와 27년)1월 18일, 대한민국(한국) 대통령·이승만의해양 주권 선언에 근거해 한국측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군사 경계선.한국에서는 「평화선」이라고 선언되었다.
- 해양 자원의 보호 때문에, 한국 부근의 공해에서의 어업을 한국적 이외의 어선으로 실시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지만, 진짜 목적은 한국에서 독도(일본의 한자에서는 「독도」)로 불리고 있는 타케시마와 대마도의 영유를 주장하기 때문에 있다고 하는 설도 있다.
- 「대한민국은 미국의 설정한 막카서라인을 계승한 것만으로 있다」라고 하는 것이 한국측의 말이지만,러스크 서간(1951년)을 봐도 미국 정부는 「(그것은)명확하게 일본과의 평화 조약 이후에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해 「한국 정부는 평화 조약 제9조의 규정(일본은 희망하는 연합국과 신속하게 어업 협정의 교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의 이익을 받을 수 있다」이니까, 전후의 일본·한국간의 어업 활동 구역에 대해서는 막카서·라인에 거무사히, 2국간에 협의해 새롭게 협정을 체결해야 할, 로 되어 있는 것만으로 있다.
【Wikipedia】막카서·라인이란?
- 제이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을 점령 통치하고 있던연합국군최고 사령관 총사령부(GHQ)의 문서SCAPIN(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Instruction Note) 제1033호 「일본의 어업 및 포경업에 인가된 구역에 관한 각서」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던 일본 어선의 활동 가능 영역이다.
- 최종적인 조치가 아니고 GHQ에 의한 통치의 형편상 설치된 것으로 GHQ의 최고 사령관 더글라스·막카서(Douglas MacArthur) 명으로 발 다투어진 SCAPIN에 의해 결정되었으므로, 이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 그 선긋기는구일본군의 군관할구역을 답습하고 있다.
1945년 9월 27일 일본의 어획 수역을 지정( 북위 45도 동경 145도로부터 북위 45도 30부동경 145도, 하보마이제도를 피해 동경 150도, 북위 26도 동경 150도, 북위 26도 동경 123도, 북위 32도 동경 125도, 대마도를 거쳐 북위 40도 동경 135도, 북위 45도 동경 140도를 묶는 선내). 1946년 3월 22일 일본 정부의 행정구역을 대마도, 타네가시마, 이즈제도까지 한정한다( 난세이제도와 오가사와라제도의 분리). 1949년 9월 21일 일본의 어획역을 동쪽에 확장( 북위 40도 동경 165도, 북위 40도 동경 180도, 북위 24도 동경 180도, 북위 24도 동경 165도의 선내). 1950년 5월 12일 일본의 어획 수역을 남쪽에 확대( 북위 24도 동경 123도, 적도의 동경 135도, 적도의 동경 180도, 북위 24도 동경 180도를 묶는 선내). 1951년 1월 한국이 해양 주권 선언. 1952년 4월 25일 막카서·라인을 폐지. *최초로 GHQ측이 설정했을 때에 「한국 어업 보호」라고 하는 의식은 따뜻한 산 불명하지만, 결과적으로몹시 유용했던것으로 한국 정부는기득권이익으로 하는일로 해,게다가 거기서 포획 한 어민을을 인질에게 일본 통치 시대의 항만 시설에의 투하자본의 회수를 단념하게 했다. 동아일보2006-01-18 03:04 1952년에 있어서의 이승만의 「평화선선언」이란무엇이었는가?한국(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601180130)

- 1952년에 들어가면 일본의 어민등은,4월 28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 1951년 9월 8일에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이 연합국측과 제이차 세계대전 종결을 위해 체결한 강화 조약이 그 날에 발효하기 때문이었다.
- 모든 원인은, 일본을 점령한 미국의 더글라스·막카서 장군이, 한민족 보호를 위해서 일본의 어민등이 본토 주변이 정해진 선을 넘어 조업할 수 없게 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그리고 「막카서·라인」이라고 명명된 이 선은, 강화 조약 발효와 동시에 폐지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 1952년 1월 18일.100일 후에는 일본해는 일본 어민등의 밭이 되는 곳(중)이었다고 하는 날에 바다의 저 편의, 전화에 싸인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 부산으로부터, 청천의 벽력과 같은 뉴스가 뛰어들어 왔다.
-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확정한 국제적 선례에 근거해, 국가의 복지와 방어를 영원히 보장해야 하는 요구에 의해서」해안으로부터 50100마일의 해상에 선을 그어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을 행했던 것이다.
- 일본측은 아연하게 망연이 되어, 그것을 「이승만 리인」이라고 불러 집요하게 철폐를 요구해 왔다.우방인 미국이나 중화 민국도 비난 했지만, 이승만은 「확정 끝난 국제적 선례는 흔들리지 않는다」의 1점 의욕으로 밀고 나갔다.
- 오히려 한일간의 평화 유지를 위한 것으로 해 「평화선」이라고 불러, 일본 정부가 어민등에 「이승만 리인」을 무시하도록(듯이) 말하면 한국 정부는 그것을 넘는 일본 어선을 「평화를 어지럽히는 범죄자」라고 결정해 군함까지 동원해를 가차 없이 잡아 그 과정에서일본의 어민 1명이 죽거나 했다. 1961년까지 나포된 일본 어선은300척을 넘어 억류된 일본인은4000명에게 가까웠다.
- 실제로는 「평화선」은 국제적 정의 실현을 위해 설치되었다고 하는 것보다, 임박한 어업 보호의 필요가 낳은 산물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
- 당시의 한국의 어선 전체의 총 톤수는10만 톤, 그것마저도대부분이 무동력선이었다.그에 대한 일본측은총 톤수 200 만 톤으로, 그 중 상당한 수가한국 경찰선보다 빠른 신예선이었다고 오고 있다.이 격차를 시정해 한국 어업을 보호해 온 것이 막카서·라인이며, 이 획득 끝난 기득권이익을 「확정한 국제적 선례」라고 해 치지 않으면 이 시점에서 그 역사를 끝낼 수 밖에 없다고 할 곳까지 당시의 한국 어업은 추적할 수 있고 있었던 것이다.
* 「세계가 그런 불법을 허락할 리가 없다」라고 하는 생각개소화 「평화선」을 낳았다고 하는 일을 한국인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그런데 무엇으로 그러한 사태가 되었어?
- 엑카트는 「일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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