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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좋은 차를 타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산다. 하지만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좋은 차를 기어이 만들고야 말겠다는 꿈을 품고 평생을 달려온 사람이 있다. ‘2인승 미드십 스포츠카’가 그의 꿈이었다.

이제 그 꿈은 이루어졌다. ‘스피라’다. 최초의 국산 미드십 정통 스포츠카로 만들어진 것. 사실, 새로울 건 없다. 스피라는 오래전부터 ‘출시 임박’을 알리며 양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스피라의 출시를 알리는 기사를 썼었다. 당시에 쓴 기사는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고 말았다. 이 차를 학수고대하던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얘기했고, 이런 저런 루머와 의혹도 나돌았다. 스피라는 그렇게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듯 했다.

그 스피라가 이제 완성된 모습으로 다시 세상 속으로 질주해 들어왔다. ‘Drive Your Soul!'이라는 멋진 캐치플레이즈를 내걸고 환상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스피라를 붙들고 온 힘을 쏟았던 프로토자동차를 어울림모터스가 인수하며 스피라가 기사회생한 것이다. 9회말 투 아웃에 등장한 구원투수 어울림이 스피라를 살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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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라를 강원도 문막 서킷에서 만났다. 2인승 미드십 스포츠카다. 한국 자동차 역사상 이런 차는 없었다. 종합완성차 메이커라는 현대자동차도 제대로된 스포츠카가 없다. 종합 완성차 메이커도 아직 시도하지 못하는 차라는 사실만으로도 스피라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차다. 시승차로 준비된 모델은 두 대. 터보차처를 얹은 스피라 터보와 수퍼차저를 장착한 스피라 S다.

엔진이 없는 보닛은 쐐기처럼 날카롭다. 엔진룸이 자리한 뒷부분은 보닛과 반대로 두텁고 볼륨감 있다. 절제됐다기엔 선이 살아있고, 화려하다기엔 잘 정돈된 모습. 정면에서 보면 헤드램프와 솟구친 사이드 미러에 눈길이 머문다.
로 앤 와이드. 스피라는 넓고 낮다. 도로에 바짝 달라붙은 모습이다. 너비가 1924mm. 국산 대형세단보다도 훨씬 넓은 차 폭이다. 높이는 1,216mm, 최저지상고는 138mm다. 전형적인 와이드 앤 로의 형상으로 스포츠카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피라의  수호신은 백두산 호랑이다. 보닛과 휠, 스티어링 휠, 엔진커버에 새겨진 스피라의 엠블램은 백두산 호랑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멋은 둘째치고 담겨진 첫 국산 스포츠카라는 의미와 맞닿는 앰블램이다.

가죽으로 마무리한 인테리어는 고급스럽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다. 센터페시아도 단순하다. 조작 스위치들이 많지 않다. 윈도 XP로 돌아가는 카PC가 센터페시아에 마련됐다. 훨씬 편하게 조작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MP3, 무선인터넷 와이브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차는 기계식이지만 안에서는 컴퓨터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실내에는 빨간 선을 둘러 포인트를 주면서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스피라의 보디는 카본파이버로 만들었다. 스페이스 프레임에 카본 파이버 보디를 적용해 무게를 줄였고, 강성은 높였다. 스피라 S가 400마력에 1080kg, 스피라 터보가 500마력에 1,130kg이다. 마력당 무게비를 따져볼 필요가 없다. 제로백이 4.8초와 3.8초. 한국산 슈퍼카의 탄생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성능이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은  멋진 차를 만날 때마다 도지는 고질병이다. 이 차의 전신으로, 미처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사라진 PS2를 탔을 때도 그랬다. 엔진룸과의 격벽 사이로 스며드는 배기가스 냄새를 맡으며 PS2를 시승했던 기억이 난다. 엉성한 느낌도 있었지만 코너링 하나는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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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라의 안전띠는 5점식이다. 손에 딱 들어오는 스티어링 휠의 감각이 좋다. 가속, 브레이크, 클러치 3개 페달의 간격이 좁고 클러치 페달의 반발력도 세다. 고성능 스포츠카, 혹은 슈퍼카의 특징이다.
엔진 소리는 거칠다. 다듬어졌다기보다는 야생에 가깝다. 심장과 머리를 울리는 소리는 매우 자극적이다. 특히 스피라 터보는 터보가 작동하면서 마치 거친 숨을 몰아쉬듯 한번씩 ‘슉’하는 날카로운 배기음을 토해내 듣는 이들을 자극한다. 최고 매력 포인트중 하나다.

따지고 보면 스피라는 전체적으로 거칠다. 의도적인 면도 있다. 전자장치들이 빠진 채 완전 기계식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자식주행안정장치가 이 차엔 없다. 자동차가 알아서 구동력을 조절하고, 좌우 바퀴의 회전차를 센서가 감지한 뒤 차의 거동을 좋게 하기 위해 개입하는 등의 기능이 없다는 말이다. 오로지 운전자의 감각과 기술로 차를 컨트롤하며 즐겨야 한다. 차를 조종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미끄러트리고, 드리프트를 구사하며 카운터 스티어링을 즐길 수 있다. 바로 정직한 기계식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코너가 이어지는 구간에서 이같은 특성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가속페달을 밟음과 동시에 스티어링을 살짝 틀면 쉽게 뒤가 돌아나간다. 미끄러지는 것인데 전혀 불안하지 않다. 균형을 잃으면서 미끄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차는 미끄러지지만 운전자는 차를 컨트롤하고 있는 것이다. 미드십 엔진에 리어 드라이브의 진수다. 마치 차의 중심부에 막대기를 꽂아 고정한 채로 코너를 돌아나가는 것 처럼 안정적이다.
가속성능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직선로에서 스피라는 총알이다. 가속페달을 밟는 건,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다름없다. 안정된 자세로 빨려 들어갈 듯 달리는 맛은 압권이다. 직선로가 짧은 서킷이어서 최고 속도를 마음껏 느껴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가속감은 아쉬울 게 없다. 
V6 2.7엔진은 현대자동차의 투스카니 엘리사에 올라가는 그 엔진이다. 167마력을 내는 그 엔진으로 최고 500마력까지 뽑아낸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계기판은 아직 정리가 덜됐다. rpm 게이지도 정확치 않고 속도계나 각종 경고등 작동도 마무리가 덜 됐다. 시승행사를 준비하느라 서두른 티가 났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오늘 시승기에는 부족함을 말하는 단도직입이 없다. 스피라 제작은 현재 진행형이어서다. 완전히 마무리가 끝나 시판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시판까지는 거쳐야할 단계가 아직 남았다. 판매를 위한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 이를 위해 몇 차례의 충돌테스트도 해야 한다. 연말엔 소비자들 손에 차를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어울림측은 설명했다. 단도직입 시승은 그때 다시 하기로 남겨둔다.

연간 300대. 휴일을 빼면 하루 한 대씩 만들어 팔겠다는 것이다. 주문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과 의견을 받아 그 사람에 딱 맞는 차를 맞춤제작한다는 게 어울림의 전략이다.

 ‘2인승 미드십 스포츠카’를 만드는 꿈은 이제 이뤄졌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스피라를 타는 꿈을 꿀 차례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꿈을 실현할 차례이기도 하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 그 꿈을 쏘아올리는 일이 남았다. 때마침 시승 현장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바이어가 스피라를 꼼꼼하게 살펴보며 상담을 하고 있었다. 좋은 징조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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