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한 학생이 이 불상에 접근하여 아무렇게나 만지는 바람에 손가락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손가락을 수거하여 정밀조사한 결과 이 불상의 재질이 적송임이 밝혀진다. 당시 일본에서 자생하는 나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 역사학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명색이 일본의 국보 제1호가 일본인이 만든 작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충격은 실로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추적 결과 여기에 사용된 적송은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 일대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자 일본의 학자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차츰 세월이 흐르자 완성품을 신라에서 들여왔다는 추정이 가능한 ‘일본서기’의 쇼토쿠태자(聖德太子)에 관한 기록을 부정하고 일본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 시작했다. 온갖 과학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일본인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데 일생을 바친 학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의 논지는 재질 자체는 한반도 것일지라도 분명히 만든 사람은 일본인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인들이 얼마나 자존심을 상했는지는 이들의 집요한 노력에서도 느껴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고류지와 호류지(法隆寺) 답사를 위해 교토에 머물고 있는 동안 한국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방화로 인해 남대문이 불탔다는 것이다. 우리의 국보 제1호가 불탔다는 뉴스는 일본인들에게도 중요한 뉴스였다. 일본 매스컴은 연일 톱뉴스로 보도했다. 동행한 일본인과 여행 중에 만난 일본인들은 나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둘러보는 내내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고 그들의 위로와 격려가 오히려 가시처럼 가슴을 찔러오는 기분이 들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문화재를 저토록 소중하게 보존하고 그 가치를 찬탄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비해, 우리는 불이 난 것도 아니고 우리 손으로 불을 질렀다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지 머리가 멍해져 올 뿐이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이룩해 놓은 문화유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은 대단하며 외부의 침입이 없었던 섬나라라는 특수성에 힘입어 수많은 문화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를 사는 일본인들은 이렇게 많은 자신들의 고대문화유산에서 한국문화의 영향력을 최소한으로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데 온 정열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그들의 문화재를 대할 때마다 그런 느낌은 더 강하게 다가온다. 고류지의 정면에 있는 석판의 각자도 한반도로부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전래되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구절은 글자를 알아볼 수 없도록 지워버렸다. 석판 자체를 바꾸기는 곤란했던 모양이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자신들이 만든 창의적인 유산이라는 자긍심이 거꾸로 한국문화의 영향을 지우거나 왜곡하려는 노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한국문화가 중국문화의 ‘종속’이거나 ‘아류’라는 중국인들의 주장에 분노를 느끼듯이 일본인 역시 자신들의 고대문화가 한반도의 영향이라는 주장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심정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고대문화에서 한반도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사실 자체마저 부정하려 드는 것은 일본인들의 지나친 소아병적 반응이라 여겨진다.

임일규 / 日 히로시마한국교육원 원장